천년 역사 간직한 고성에서 해질녘 '성벽 위의 산책' 어때요?

입력 2016-02-15 07:10   수정 2016-02-15 10:11

눈과 입이 즐거운 핑야오

유네스코 등재된 황톳빛 고성
내부엔 명·청시대 거리 그대로
국수 요리 본산…100가지 넘어

스케일이 다른 ?산

사찰 88개·전각 2000개…
높이 110m 사원 대라궁 '압권'



중국 산시성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중국 성벽과 옛날 거리가 가장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는 곳. 산시성(山西省) 핑야오(平遙)현의 오래된 유적인 핑야오 고성(古城)은 중국에 남아 있는 많은 고성 중에서도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꼽힌다. 핑야오 고성이 어딘지 낯설다면 요즘 흥행 중인 영화 ‘쿵푸팬더’ 시리즈를 보면 된다. 영화 속 중국 마을의 실제 배경이 바로 핑야오 고성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중국 관광지의 모습이 식상하다면 전통이 살아 숨쉬는 ‘천년 역사의 고성마을’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가성비’ 높은 고성 여행지 핑야오

자금성과 만리장성을 봤다고 중국 여행이 끝난 것은 아니다. 중국 문명의 위대한 흔적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14세기 명나라 때 세워진 핑야오 고성은 윈난성의 리장(麗江) 고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중국의 양대 고성이다. 리장이 소수 민족인 나시족의 고성마을인 데 비해 핑야오는 전형적인 한족의 고성마을이다.

최근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리장이 등장하면서 한국에서도 고성이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리장 대신 핑야오를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비용이다. 한국에서 리장까지 비행 거리는 약 2770㎞지만 핑야오까지는 약 1300㎞로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가깝기 때문에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 아직 여행자들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았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핑야오에 처음 성이 만들어진 것은 약 2800년 전이다. 기원전 800년경 서주(西周)시대 성곽이 현재 핑야오 고성의 원형이다. 그 후 조금씩 규모가 커지다가 명나라 홍무제 때인 1320년 지금처럼 견고하게 세워졌다. 성에는 6개의 문과 72개의 보루가 있는데 독특한 것은 일반적인 고성과 달리 동서남북의 성문이 비대칭이라는 점이다. 보통은 남북과 동서의 성문이 마주보며 하나의 길로 이어지지만 핑야오 고성은 각각의 성문이 서로 엇갈려 길도 지그재그로 나 있다. 겨울이면 불어오는 거센 황토 바람을 피하기 위해 이런 모습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처음 마주한 핑야오 고성의 성벽은 놀랍도록 견고하고 거대하다. 소설이나 영화 속 ‘삼국지’에 나오는 철옹성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성 안으로 들어가 좁은 뒷길에 들어서면 흙과 돌로 지은 오래된 집들이 홍등을 내걸고 있다. 잠깐 흙먼지가 날렸다 가라앉는 사이, 거짓말처럼 시간이 거꾸로 흘렀다.

핑야오 '쿵푸팬더' 고향서 국수 후루룩~

옛 중국의 진풍경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핑야오 고성은 성벽 둘레가 6㎞에 높이는 약 12m에 이른다. 내부에 번화한 거리와 시장, 민가와 오래된 문화 유적들, 현대적인 분위기의 카페가 뒤섞여 있다. 생각보다 넓기 때문에 꼼꼼히 둘러보려면 하루가 모자란다. 고성 구경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150위안(약 2만7000원)에 파는 통합 입장권을 사는 것. 고성에 들어가는 것은 무료지만 안에 있는 문화 유적지를 관람하려면 별도의 입장권이 필요하다. 통합 입장권을 사면 3일 동안 고성 내 22곳의 문화 유적지를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어서 필수다.

입장권을 끊고 먼저 간 곳은 중국에서 가장 잘 보존된 명·청대 관청인 핑야오 셴야(縣衙)다. 지금으로 치면 시청과 같은 곳인데 마치 축소한 자금성 같이 생겼다. 사무 공간들은 앞쪽에, 현령의 주거 공간과 손님을 맞이하는 정원은 뒤쪽에 있다. 건물마다 재무, 법무 등 맡은 역할을 명확히 구분했는데 청나라 때 지방 관뼈?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됐는지 짐작케 한다.

셴야에서 건물 구경보다 흥미로운 것은 짤막한 연극 공연이다. 핑야오 현청의 판관이 도난 사건에 연루된 두 명의 용의자 중 진범을 가려내는 내용인데, 판관의 카리스마가 포청천을 능가한다. 용의자들의 능청스러운 항변도 제법이다. 짧은 콩트가 끝나자 관객석에서 유쾌한 웃음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공연은 매일 오전 9시30분과 11시에 셴야 내에서 한다. 셴야를 나오기 전 팅위루(聽雨樓)에 오르는 것도 잊지 말자. 높이 5m 남짓의 아담한 누각이지만 핑야오에서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건물 중 성벽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곳이다. 이곳에선 고성의 거리와 가옥이 생생하게 내려다보여서 사진촬영 명소로도 유명하다.

중국 최초의 사설 은행인 르셩창 표호(日升昌 票號)도 만날 수 있다. 표호는 명나라 말, 청나라 초에 유행하기 시작한 중국의 사설 은행으로 산시성에서도 핑야오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표호들이 전국에 지점을 둘 정도로 번창하면서 핑야오는 17세기 청나라의 금융 중심지로 떠올랐다. 핑야오 고성의 활기찬 분위기는 상업도시였던 역사와도 맞물린다.

르셩창 표호는 핑야오 표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다고 한다. 황제와도 거래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108년간 청나라의 금융업을 장악했다. 100년 기업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엄격한 경영 원칙이었다. 르셩창 표호는 소유권과 경영권이 분리돼 있었으며, 직원들을 상벌로 엄격하게 관리해 고객으로부터 높은 신용을 얻었다.

표호는 1930년대 서양식 은행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르셩창 표호 건물은 현재 중국표호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르셩창 표호의 설립자로 ‘중국 금융의 아버지’라 불리는 레이루타이(雷履泰) 생가도 가볼 만하다. 400가구가 넘는 고성의 민가 중에서 유일하게 일반인에게 개방한 곳으로 당시 부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핑야오 고성에서는 해지는 시간을 잘 확인해야 한다. 노을 진 하늘과 나란히 걷는 ‘성벽 위의 산책’은 핑야오에서 절대 놓쳐선 안 될 경험이다. 해질녘이면 이 작고 아늑한 도시 전체가 붉은 노을빛에 휩싸인다. 성벽에 올라 그 모습을 굽어보며 한 바퀴 천천히 걸어보자. 시간을 걸을 수 있다면 아마 이런 기분일 것이다. 이 귀중한 사색의 시간은 그 어떤 사치보다 값지다.

면 요리의 총본산에서 고양이귀 국수를

중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핑야오에서 가장 흔한 음식은 바로 국수(麵) 요리다. 핑야오 국수는 중국 제일로 꼽힌다. ‘중국 국수의 본고장은 산시성이고, 산시성 제일의 국수는 핑야오에 있다’고 할 정도다.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한 국수는 신장자치구를 거쳐 중국 북방 지역에 전해졌는데 이 과정에서 산시성의 요리사들이 국수 요리를 집대성했다.

핑야오는 산시성의 중추 도시로 송나라 때부터 중국의 상업과 물류 중심지로 성장했다. 중국 각지의 상인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자, 요리사끼리 손님 유치 경쟁도 치열해졌다. 그들은 동서남북의 조리법을 받아들여 다양한 소스를 만들었으며, 국수가루에 많게는 36가지 잡곡을 사용했다. 잡곡의 배합과 면을 써는 방식을 달리해 100≠?이상의 국수 요리가 탄생한 것이다. 산시성 사람들은 ‘한 가지 국수를 100가지 모양으로 만들고, 이를 100가지 방법으로 먹는다’고 말한다. 국수가루의 성분은 같아도 굵기와 모양은 천차만별이고, 그 국수를 어떤 고명, 어떤 국물과 함께 먹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음식이 된다.

핑야오에서는 중국의 모든 국수를 다 만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동네에서는 평범한 가정주부도 기본 30가지 이상의 국수를 만들 줄 안다.

그러니 핑야오 고성 안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원하는 국수 메뉴를 찾을 수 있다. 펜네 파스타처럼 짤막하고 두꺼운 젠다오?(剪刀麵), 칼국수와 비슷한 다오샤오?(刀削麵), 얇은 소면인 룽쉬?(龍須麵), 중국식 수제비인 주피?(片) 등 산시성에서 처음 시작된 국수들은 이름만 들어도 어지럽다. 그중에서도 먀오얼둬(猫耳)는 꼭 한번 먹어봐야 한다. 면의 모양이 ‘고양이귀’를 닮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먀오얼둬는 핑야오 옆에 위치한 제슈(介休)시에서 주로 먹는데, 결혼할 때 장모가 사위에게 ‘말 잘 듣는 신랑이 되라’며 대접하는 요리다. 표고버섯, 배추, 토마토 등을 넣고 시원하게 우린 국물과 끝이 살짝 말린 쫄깃한 면이 한국인의 입맛에도 딱 맞다.

소고기와 식초(醋)도 유명하다. 황사가 많이 부는 지역 특성 때문에 기관지에 좋은 식초가 발달했고, 소고기는 명·청대부터 이미 핑야오의 유명 특산물이었다. 고관대작들이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핑야오산 소고기는 빠질 수 없는 메뉴였다. 엄청난 미식가였던 서태후도 핑傷으?방문했을 때 소고기 맛에 반해 황실 진상품으로 바치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 핑야오 소고기는 일반 식당에서 대부분 편육 형태로 판매한다. 기념품점에는 낱개 포장한 육포도 있어 선물용으로 좋다.

?산, 보기만 해도 아찔~ 절벽에 붙은 300m 하늘다리

신화와 전설의 땅으로

핑야오를 3박4일이나 4박5일 일정으로 여행한다면 ?산(綿山)은 꼭 가봐야 할 곳이다. 핑야오에서 버스로 1시간 남짓 떨어진 제슈시에 있는데, 중국적인 스케일의 웅장한 자연 경관, 독특한 도교 전설을 만날 수 있다.

?산풍경구는 매우 넓어서 그 안에 총 88개의 사찰, 2000개의 전각, 열몇개의 폭포와 동굴이 있다. 이런 관광지가 모두 해발 1000m가 넘는 첩첩산중에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산 입구에서 셔틀버스를 타고도 한참 동안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갔다. 버스 바퀴 아래로는 아찔한 협곡이 펼쳐지고 눈앞에는 기암절벽이 숨었다가 나타나길 반복한다. 버스도 없고 길도 없던 그 옛날 대체 누가 이런 곳에 왔을까. 가장 유명한 이는 기원전 600년경 여기서 살다가 생을 마감한 춘추시대의 은사 개자추(介子推)다.

개자추는 춘추 오패 중 한 명인 진나라 문공의 신하로 19년 동안 그를 보필했다. 하지만 왕이 된 문공이 자신을 등용하지 않자, 속세를 버리고 ?산에 은거한다. 후에 문공이 잘못을 뉘우치고 개자추를 다시 불렀으나 그는 산에서 나오지 않았다. 문공은 그를 나오게 하려고 산에 불까지 질렀는데,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죽음을 맞이했다. 차가운 슬컥?먹는 한식은 바로 ?산에서 죽은 개자추를 기리는 풍속이다.

버스를 타고 처음 내린 곳은 대라궁(大羅宮)이다. 개자추가 이곳을 보고 도교의 선계 중 최상층인 대라천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깎아지른 듯한 사자산 절벽 위에 세워진 대라궁은 13층, 110m의 높이를 자랑한다. 면적이 1만㎡에 달해 중국에서 가장 큰 도교 사원으로 꼽힌다. 건물은 최근에 지은 것으로 명·청대 도교 사원의 풍격을 현대 건축 기술로 재현했다. 중국 사람들은 ?산 대라궁이 티베트의 포탈라 궁에 필적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극찬한다.

대라궁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천교(天橋) 역시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진다. 절벽의 굴곡을 따라 300m 길이로 만든 구름다리가 마치 용이 지나가는 것 같다. 그 꿈틀대는 듯한 모습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해 가슴이 철렁하다. 천교는 5호16국시대 후조(後趙) 시조였던 석륵(石勒)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석륵은 흉노족 추장의 아들로 태어나 노예로 팔려갔으나 후에 군도의 수령이 됐다. 그는 요새와도 같은 ?산의 지형을 이용해 진나라 군대에 승리했고 결국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왕이 된 그는 승전을 기념해 ?산에 천교와 도교 사원을 세웠다. ?산은 이후 영험한 도교 성지로 추앙받았다. 당 태종은 태상노군(노자)을 섬기는 신전을 세웠고, 제갈량은 천교 밑 동굴에서 수행하기도 했다. 명나라 때는 역병이 발생하거나 가뭄이 들었을 때 지방 현령이 이곳에 와 빌면 태상노군이 나타나 치료하고 비를 내려줬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이것만은 꼭!

핑야오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은 스좌장(石家庄)이다. 제주항공이 주 2회(월·금요일) 취항하고 있다. 스좌장역에서 핑야오고성역(平遙古城站)까지는 고속기차로 2시간30분이 걸린다.

핑야오고성역에서 핑야오 고성 안까지 들어가려면 현지 사설 택시인 바오처(包車)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대중교통을 포함해 일반 차량은 고성 출입을 전면 통제하는데, 바오처는 대부분 고성 내 주민들 차량이라 들어갈 수 있다.

핑야오에서 ?산까지 가려면 기차나 버스로 제슈까지 이동한 뒤 제슈시 버스터미널에서 ?산으로 가는 지역 버스를 타면 된다. 소요시간은 총 1시간30분 정도. 핑야오~제슈 간 기차·버스는 1시간에 한 대꼴, 제슈~?산 버스는 30분에 한 대꼴로 다닌다.

핑야오(산시성)=도선미 여행작가 dosunm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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