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치개혁 없이 노동개혁 없다

입력 2016-03-06 19:03  

"총선 앞두고 또 밀려난 노동법안
렌치 이탈리아 총리 정치·노동 개혁 참고
여야·정부 합심, 고용시장 바꿔야"

조준모 <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 >



19대 국회에서 노동개혁법안 통과가 어렵게 됐다. 4월 총선이 임박해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관리에 몰입하는 상황에서 선거구획정법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등과 관련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로 국회일정이 또다시 지연됐다. 이런 정치풍토에서 노동개혁을 한다는 자체에 근본적인 의구심이 든다.

‘정치개혁 없이 노동개혁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국가 중 하나로 이탈리아를 꼽을 수 있다. 이탈리아는 정치개혁과 노동개혁을 동시에 추진한 경우다. 정치와 노사관계 배경을 살펴보면 이탈리아와 한국은 비슷한 점이 많다.

이탈리아 정치권은 무능하고 부패해 경제사회의 위기 극복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었다. 노동조합을 보면 이탈리아노동총연맹(CGIL)처럼 강경투쟁을 지향하는 노조단체를 필두로 복수의 전국단위 노조가 있고, 사업장마다 노조가 난립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유럽의 노사관계는 노르웨이와 스웨덴 중심의 ‘노딕 유형’, 독일의 산별 노사관계 중심인 ‘라인 ??rsquo;, 그리고 노사관계가 대립적이고 파편화된 ‘라틴 유형’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탈리아는 맨 마지막 유형에 해당한다. 한국도 전국단위 노조가 양분돼 있고 노사관계도 대립 양상이어서 이탈리아와 비슷하다고 평가하는 학자가 많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 직전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와 마리오 몬티 전 총리 땐 이탈리아 내 정치권과 노동계가 실핏줄처럼 얽히고설켰다. 정치권이 노동계의 이익에 반하는 개혁에 제동을 걸거나, 이런저런 핑계로 개혁입법을 지연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이런 열악한 정치구조 속에서 개혁에 성공한 렌치 총리는 이전 총리들과 개혁 전략에서 몇 가지 차이를 보인다.

첫째, 정치와 노동개혁을 동시에 추진해 국민의 지지를 얻는 동시에 정치권의 노동개혁 반대 동력을 약화시켰다. 상원의원 의석수를 최근 315석에서 100석으로 줄이고, 해고제도의 개선과 정규직 채용에 대한 재정지원 제도를 중심으로 한 노동개혁 입법을 통과시켰다. 렌치 총리는 “개혁이 안 되면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할 정도로 배수진을 쳤다.

둘째, 개혁의 목표를 청년일자리 창출로 선명하게 설정했다. 노동개혁 입법을 신규 채용자부터 적용토록 하고, 기존 노조의 단체협약들이 이를 수용하도록 하는 유연 전략을 구사했다. 이로써 전국 단위 3대 노조 중 CGIL을 제외한 주요 노조가 소극적 동의 또는 침묵으로 돌아서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탈리아 개혁 사례는 한국에 여러 시사점을 준다. 정치개혁 없는 노동개혁은 사실상 어렵다는 점이다. 국회선진화법 아래선 여당이 국회의원 300석 중 179석(59.7%)을 얻어도 상임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이 입법의 길목을 지키면 통과가 불가능하다. 설사 상임위를 통과해도 2차 관문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반대하면 법안이 또다시 좌초된다. 이런 ‘개혁입법 불능’의 함정에 빠지기는 지금의 야당이 정권을 잡아도 마찬가지로 벌어지게 된다. 여당 입법안에 야당이 반대하고, 야당안에 여당이 반대한다면 노동개혁 입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구조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치권이 노력한다는 건 교언영색(巧言令色)에 불과하다.

여야가 대승적으로 법안을 단계별로 타협해가는 선진국 방식 협력의 정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도 “야당이 주장하는 노동개혁 3대 입법은 안 되고, 여당이 주장하는 5대 입법 혹은 4대 입법이어야만 된다”는 경직적인 태도여선 안 된다. 국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개혁 입법이 ‘국회 후진화입법’과 후진적 정치권의 태도로 발목이 잡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조준모 <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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