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글기자 코너] 너무 많은 정보가 판단력 흐린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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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4-01 16:35   수정 2016-04-01 16:44

[생글기자 코너] 너무 많은 정보가 판단력 흐린다 등

너무 많은 정보가 판단력 흐린다

“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그렇게 많은 정보는 필요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쏟아지는 뉴스와 루머, SNS 같은 것에 눈이 멀어 판단력이 흐려진다.”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최근 출간된 이 자전 에세이의 저자는 바로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의 자산운용 부서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애널리스트 신순규 씨다. 그는 바로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공인재무분석사(CFA)’ ‘미 월가 20년 경력의 베테랑 애널리스트’와 같은 수식어의 주인공이다.

그는 9세에 녹내장과 망막박리로 인해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서울맹학교에 다니면서 한때
피아니스트의 꿈을 꿨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학업으로 방향을 바꿨다. 하버드대에서 심리학을, 매사추세츠공대 박사 과정에서는 조직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 최초로 CFA 자격증을 따고 JP모간에서 첫 직장을 얻었다. 이런 화려한 스펙을 놓고 대부분의 사람은 엄청난 양의 그래프와 수치 자료를 빠르게 분석해내는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예상과 달리 그는 핵심 정보만으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고, 장기간 투자한다. 왜냐하면 그는 금리가 오르거나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팔아야 할 주식이라면 사지 않는 게 낫다는 지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를 다 볼 수 없기에 꼭 필요한 자료만 가지고 검토하는 능력을 쌓아야 했다’고 말한다.

우리도 홍수처럼 넘쳐나는 정보에서 헤어나지 못해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 같다. 이런 정보들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거나 감정을 상하기도 한다. 많은 정보보다 우리의 직관이 더 나을 때가 많다. 음식메뉴에 적혀 있는 많은 정보보다 매니저를 불러 오늘 뭐가 맛있느냐고 묻는 것이 훨씬 나을 때가 많다. 눈을 뜨고 있지만 우리는 진짜 봐야 할 것을 못 보고 있는지 모른다.

김나희 생글기자 nahee010426@naver.com

역사 속에 묻힌 여성 독립투사들

3·1절은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한 날이다. 지도자들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렸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투쟁했던 독립 운동가들의 얼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다. 그들은 일본 경찰에게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상상하기도 어려운 고문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인물들은 거의 남자지만, 남성들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존재가 최근 들어 알려지고 있다. 훈포상을 받은 여성 독립 운동가는 270명, 전체(1만4262명)의 약 2%다. 최근 알려진 바에 의하면 여성독립 운동가에 포함돼야 할 사람이 상당수 빠져 있다고 한다. 그동안 묻혀 있었던 그들의 삶은 어땠을까.

여성 독립 운동가는 여러 방萱막?독립운동에 공을 세웠다. 조선의용대(조선의용군)에는 부녀대도 있어 여자들도 전투했다고 한다. 소금이 귀해 돌을 갈아 넣고 산에서 뜯은 나물을 비빈 전투식량을 만드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

일본군에 체포돼 형무소로 들어간 이들은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한 독립운동가의 말에 따르면 형무소에서 집행되는 고문에는 1~5단계가 있다고 한다. 1단계가 사람 뼈마디가 부러지게 쇠몽둥이로 때리는 것이고, 2단계는 불로 달군 쇠를 손톱과 발톱 사이에 넣어 뜯어내는 것이었다. 3단계 이상은 너무 참혹해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특히 여성들은 나체인 상태에서 고통과 성적 수치심을 동시에 받는 고문도 받았다고 한다.

몇 달 전에는 여성 독립 운동가를 주인공으로 영화가 개봉해 그 인지도가 높아지기도 했었다. 영화 속 인물의 모델은 독립운동가 남자현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내내 항일투쟁을 한 거의 유일한 여성이라고 한다. 한국인을 포함해 중국인까지도 독립군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존경했던 인물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존재 자체가 잊혀졌다. 그 밖에도 일제에 총살당한 한국 최초 사회주의 정당 ‘한인사회당’ 중앙위원 김알렉산드라 투사,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한 조마리아 투사 등이 있다. 이들 모두가 조국을 위해 희생했다. 그들의 희생을 지금부터라도 알고 감사해하자.

김나영 생글기자 kkim9272@naver.com

정보통신 발달과 공유경제

‘무엇을 얼마나 많이 소비하느냐’를 중시하던 시대가 갔다. 대신 ‘어떻게 얼마나 잘 소비하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왔다. 이에 서로의 것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공유경제가 주목받는다. 공유경제란 한번 생산된 제품을 여럿이 공유해 쓰는 협력소비의 경제를 말한다. 카 셰어링, 바이크 셰어링, 경매, 물물교환시장, 공간의 공유, 여행경험의 공유, 지식의 공유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비엔비히어로’라는 단체는 개인여행 플랫폼이다. 빈 방 수요자와 공급자를 인터넷으로 연결한다. 2012년 여수 엑스포 당시 지역주민들이 168개의 방을 대여했다. 이는 국내외 방문자의

숙소 문제를 해결했다. ‘원더렌드’는 렌털 중개 서비스다. 개인이 유휴물품을 인터넷에 올리면 필요한 사람이 대여한다. 정해진 사람끼리 대여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처럼 공유경제는 대여자에게는 유휴 자원의 수입원이 되고, 이용자에게는 비용 절약을 가져온다. 사회 전체로는 자원의 절약과 환경문제 해소를 위한 대책이 된다. 기존의 기업은 수익활동과 사회기여의 영역이 분리돼 운영된다. 반면 공유기업은 기업의 수익이 사회기여와 연결된다. 이처럼 이는 많은 긍정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공유경제의 기반인 시민의식과 신뢰프로세스의 미흡으로 안정된 서비스 공급과 확대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기존 산업을 위협해 실물경제를 위축시킬 수도 있다. 영업권, 소유권, 이용권의 혼재로 과세 등 법과 질서의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우리는 이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수준과 정보통신 기술을 가지고 있다. 분명 유리한 조건이다. 이제 개개인들이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낮은 상호 신뢰 수준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연구해야 하며, 정부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공유경제는 충분히 긍정적이고 효율적인 새로운 경제의 패러다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성호 생글기자 shkong98@naver.com

4·13 총선…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동물이다. 교육을 통해 청소년은 사회화 과정을 거치고, 여기서 끝이 아니라 성인이 돼서도 사회의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재사회화를 거친다. 인간은 고독의 동물이지만 혼자가 아니기에, 이 고독을 나만 갖는 것이 아니기에 상대적으로 외롭지 않다. 하지만 개인과 사회의 관계는 이와 다르지 않을까? 여기서 사회는 기득권층이라 봐도 무관하다. 인간이 이들로부터 자유, 평등권을 보장받은지는 채 얼마 되지도 않았다. 나는 얼마 전 아마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이라는 책을 읽었다. 아시아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도 학자인데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치적 자유가 자연스레 사회,

경제의 발전을 이끈다는 것이 주제였다. 이 책은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에서 불평등을 발전에 필요한 요소로 본 새로운 관점과 상충되기도 했다.

개인과 사회는 필요성에 의해 계약을 맺은 것이 국가 탄생의 시초다. 국민이 국가에 권한을 위임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그 위임자들이 잘하고 있는지 혹은 못하고 있는지 바라볼 수 있는 냉또?렌즈로 눈을 가꿔야 한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말만 하며 살 수 없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듯이 쓴소리도 일종의 사랑이다. 나는 4·13 총선을 앞둔 요즘 많은 친구의 정치적 무관심에 실망했다. 세계 2차대전 도중 한 독일 청년이 노인에게 “저는 아무 일도 안 했는데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그 노인의 대답이 오버랩됐다. 대한민국은 세계사에서 기록 없는 경제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불균형 성장이라는 숙제도 안았다.

선거 때만 개인과 사회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당은 ‘야당심판론’, 야당은 ‘정권심판론’을 내놓으며 자신들이 심판인 양 행동하고 있다. 300명의 국회의원은 5000만 국민의 선수들이다. 정말 한국 사회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민의식의 성장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가까운 듯, 먼 듯한 개인과 사회의 관계고, 그 관계가 우리에게 달려 있는 이유다.

조유상 생글기자 choyus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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