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이후] EU 분열 기름 부은 '제노포비아'…새 질서 출범도 가시밭길

입력 2016-06-27 17:23   수정 2016-06-28 02:53

EU 어디로 가나 (3)

브렉시트 부른'反이민 정서'
일자리 뺏고 복지혜택 가져가…영국인들 이민자에 적대감
극우파 패라지 독립당 당수, 난민 포스터까지 만들어 자극
난민 100만 받아들인 독일 메르켈, 지지율 하락…리더십 시험대



[ 이정선 기자 ]
영국 런던 서쪽의 해머스미스 거리. 폴란드인이 모여 사는 이곳에 26일(현지시간) “더 이상 폴란드 기생충(vermin)은 필요 없다”는 내용의 전단이 뿌려졌다. 뉴캐슬에서는 일부 시민이 ‘이민자를 그만 받고, 본국으로 송환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에 나섰다. 영국인들이 유럽연합(EU) 탈퇴를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민자 문제는 수그러들기는커녕 더 기승을 부리는 분위기다.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 이후 프랑스, 덴마크 등에서도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 혐오)’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반(反)이민 정서는 두고두고 EU 체제를 흔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反) 이민 정서가 브렉시트 원인

이민자·난민 이슈는 23일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영국의 보수 진영에서 적극 활용했다.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뺏고 영국인들이 누리는 국민건강서비스(NHS) 등 각종 복지 혜택의 과실을 따간다는 논리를 폈다. 국민투표 막바지엔 터키의 EU 가입 문제를 공략했다. 인구 7600만명의 이슬람국가인 터키가 EU에 가입하면 영국이 이민자로 넘쳐날 것이라고 호소했다. 극우파 영국 독립당의 나이절 패라지 대표는 유럽으로 몰려드는 난민의 행렬을 포스터로 제작해 배포했다. 나치식 프로파간다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대중의 귓속을 파고드는 데 주효했다. BBC는 “독립당이 이민자와 난민 문제를 이슈화하는 도널드 트럼프식 전략을 성공적으로 펼쳤다”고 보도했다.

옥스퍼드대에 따르면 지난해 새로 들어온 이민자만 33만명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영국 거주 외국인 이민자가 낳은 출생인구도 1993년 380만명에서 2014년엔 830만명으로 급증했다. 현재 영국에 거주하는 이민자 중 폴란드(15.1%)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단순 기술직에 주로 종사하는 이들을 조롱하는 ‘폴란드 배관공’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EU 국민은 영국에서 석 달만 일하면 영국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 일정 수준의 임금을 받지 못하는 이주자들도 자녀 보조금과 노동보조금, 집세 보조금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사회보장 시스템에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 영국인이 대거 EU 탈퇴에 표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극우세력 확산 … EU 분열 가속화

반이민 정서는 영국만의 일이 아니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에서는 영국의 독립당과 성향이 비슷한 극우정당들이 세를 불리고 있다. 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은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면 프렉시트(Frexit: 프랑스의 EU 탈퇴)를 통해 이민자를 차단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시리아 등에서 100만명에 가까운 난민을 받아들인 독일에선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이 떨어진 반면 이를 반대해온 극우정당 AfD가 지난 3월 지방선거에서 제3당으로 부상했다. 난민들의 집단 성폭행 사건 등으로 시민의 인식이 바뀌고 있어서다. 극우정당들이 득세하면 EU 지역 내 이동의 자유를 보장한 솅겐조약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아 EU의 근간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세계은행의 2013년 ‘글로벌 소득분포’ 보고서는 이민자에 대한 선진국 시민의 반감을 자유무역정책 확대와 이로 인한 소득불평등에서 찾는다.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 중하층의 소득은 20년간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1998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중국 등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과 자유무역 확대로 값싼 물품이 대거 유입됐고, 국경 간 노동력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선진국 중하층의 소득 증가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도 브렉시트 이후 “저성장과 더불어 이민문제로 비롯된 혼란에 직면하면서 전통적인 자유경제에 대한 확신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브렉시트는 세계화와 주류 정치를 반대하고 자유무역에 의심을 품는 포퓰리스트들의 반동”이라며 “2009년 유로존 위기에 이어 난민 위기가 몰아치면서 EU가 쓰라리게 분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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