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사건은 어떻게 롯데그룹을 뒤흔들었나

입력 2016-07-03 14:34  



(이수빈 생활경제부 기자) “중국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미국에 허리케인이 온다.” 나비효과라고 한다. 작은 사건이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때 많이 쓰는 표현이다. 통일전 동독 관료의 평범한 발언을 확대 해석한 이탈리아 기자의 보도 때문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선 2014년 12월 땅콩회항도 비슷한 케이스다. 마카다미아를 메뉴얼에 따라 서비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리를 지르며 시작된 사건이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다. 결국 당사자인 한진그룹의 장녀 조현아는 옥살이까지 해야했다.

롯데 사건도 마찬가지다. 한 중소기업 대표의 원정도박에서 시작된 사건이 재계 순위 5위 롯데그룹을 뿌리채 뒤흔들고 있다. 사건의 전개과정을 일지와 함께 정리했다.

◆도박에서 시작된 롯데그룹 사태

두 사람이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돈 문제다. 지난 4월12일 서울구치소 접견실 복도 CCTV에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접견실 밖으로 나온 최유정 변호사를 다시 데리고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고성이 오갔다. 정 대표는 수임료를 돌려달라고 했다. 약속했던 판결을 얻어내지 못했으니 환불해 달라는 것이었다. 최씨는 “돌려줄 이유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 대표는 화가 나 최씨의 손목을 붙잡았다. 최씨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의자에 고꾸라졌다. 욕설과 함께 5분간 폭언이 이어졌다. 최씨는 손목 관절에 전치 3주 부상을 입었다.

당초 정 대표는 보석 또는 집행유예를 조건으로 수임료 50억원을 줬다. 그가 거액의 수임료를 준 이유는 네이처리퍼블릭 상장때문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회사 대표가 감옥에 있는 상태에서 상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현업에 복귀하고 싶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징역 8개월로 감형을 받긴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정 대표가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한 이유다. 최 변호사는 성공보수 30억원은 돌려줬다. 하지만 20억원은 착수금이라 줄 수 없다고 버텼다. 두 사람의 갈등은 몸싸움까지 번졌다.

◆‘변호사 폭행사건’에서 롯데그룹 존망 위기로

당시만 해도 이 사건이 재계 5위 롯데그룹을 창사이래 최대 위기로 내몰 것이라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네이처리퍼블릭과 최유정 변호사, 롯데그룹의 관계는 무관해보였다. 그러나 구치소 접견실에서 일어난 싸움은 태풍을 일으킨 나비효과가 됐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두 달 뒤인 6월13일 검찰은 롯데그룹을 정조준한 비리수사에 들어갔다. 신동빈 롯데 회장의 최측근인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구속됐고,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과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은 출국금지 당했다.

검찰은 롯데그룹이 계열사 간 거래과정에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횡령·배임 규모가 3000억원 가량 되는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이 신동빈 회장의 자택과 신격호 총괄회장의 집무실이 있는 롯데호텔 34층까지 압수수색한 이유도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해서라고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검찰이 기업 총수의 자택을 수색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240명의 수사관을 동원, 24시간 넘게 수색을 했다는 것은 구체적인 범죄 혐의없이 수색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위기는 항상 그렇듯 내부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외부의 조건에 의해 느닷없이 닥치기도 한다. 롯데가 어느 경우인지는 검찰 수사결과가 말해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세상에 공개된 ‘정운호 리스트’ 8인

사태가 커지기 시작한 것은 최유정 변호사가 지난 4월15일 정운호 대표를 폭행죄로 고소하면서부터다. 정 대표와 최 변호사 간 말싸움의 내용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최 변호사가 받은 50억원의 수임료가 부각됐다.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도박사건을 변호하면서 이 정도 수임료를 받는 것은 유례가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최 변호사는 자신에게 날아온 화살을 돌려야 했다. 그가 정운호 대표의 로비활동을 도운 인물 8명의 명단을 공개한 것도 이 시점이다. 그는 명단을 공개하면서 “정운호 대표가 재판장으로부터 질책당하자 ‘더 이상 로비를 하지 말라’며 쪽지에 로비스트 명단을 적어 한 변호인에게 건냈다”고 했다. 명단에는 법조브로커 이민희씨, 김모 부장판사, 사업가 한모씨, 언론인 박모씨,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 등이 포함돼 있었다.

사건조사가 진행되면서 최 변호사의 남편 행세를 하던 이동찬씨가 정·관계 브로커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숨투자자문의 이사였던 그는 정운호 대표의 지인인 송♠?전 이숨투자자문 대표에게 최유정 변호사를 소개한 인물이기도 하다. 최 변호사는 송 대표의 유사수신 사건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아냈다. 이후 송 대표가 “유능한 변호사”라며 정운호 대표에게 최 변호사를 소개한 것. 최 변호사는 정운호 대표와 접견하면서 대화를 녹취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했다. 8인의 명단도 그 중 하나였다.

◆“곤란한 일 해결해주면 화끈하게 돈 쓴다더라”

업계에서 정 대표는 ‘통 큰’ 인물로 통했다. 곤란한 일을 해결해주면 현금 뭉치를 턱턱 내민다는 소문이 퍼졌다. 브로커들이 그의 주변에 모인 것도 정씨의 화끈한 씀씀이 때문이라는 얘기가 많다. 정운호 리스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최 변호사의 폭로 이후 정운호 리스트에 거론된 인물들의 로비내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법조계, 군 간부, 대기업 등이 관련돼 있었다. ‘변호사 폭행사건’은 ‘정운호 게이트’를 불러왔다.

법조브로커인 이민희씨는 서울메트로에 네이처리퍼블릭 입점을 로비하고 정 대표에게 수수료 9억원 가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자신의 고등학교 동문인 홍만표 변호사를 정 대표에게 소개했다. 그는 홍 변호사를 소개해주는 알선비로만 1000만원을 챙겼다. 홍 변호사는 검사장 시절 인맥을 이용해 정 대표의 도박사건 무혐의 처분을 받아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2011년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로부터 2억원을 받는 등 총 5억원을 부당수임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무혐의 처분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 김병문 검사가 조기룡 형사3부장의 지휘 아래 사건을 맡았다. 1차장은 신유철 현 수원지검장이었고 서울중앙지검장은 김수남 검찰총장이었다. 현재 홍 변호사는 탈세 혐의로 수감 중이다.

◆네이처리퍼블릭과 롯데의 연결고리 ‘한영철’

‘정운호 게이트’가 전관예우 문제로 비화되고 있던 타이밍에 롯데는 예고없이 등장했다. 브로커 한영철씨의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그는 군 간부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의 친분을 내세워 군과 롯데면세점에 입점을 청탁한 뒤 네이처리퍼블릭으로부터 부당 수수료를 챙긴 혐의를 받았다. 그런데 한씨는 다른 브로커들과 달랐다. “억울하다”며 감정적 호소를 했다. 그는 자신이 신 이사장의 연인이었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두 사람은 2007년 한 봉사활동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한씨는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봉사활동 직후 신 이사장과 급격히 친해져 연인관계로 발전했다고 했다. 신씨와의 친분을 내세워 네이처리퍼블릭의 브로커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라는 것이다. 그는 신 이사장에게 정운호 대표를 소개했다. 세 사람은 2012년 10월 마카오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서 세 사람은 네이처 리퍼블릭 매장을 좋은 자리로 옮겨주는 대신 수수료를 받기로 했다고 한씨는 말했다.

한씨는 이 여행 직후 정운호대표와 체결한 계약서를 A주간지에 공개했다. 계약서에는 소공동 롯데면세점에 있는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매출의 3%를 한씨가 지급받기로 돼있다. 2013년 1월에는 약속대로 롯데면세점 소공동 본점 구석에 있던 네이처리퍼블릭 매장이 입지가 좋은 위치로 이동했다.

◆법인 목적에 ‘면세점 컨설팅 사업’ 추가한 비엔에프통상

그러나 2014?7월 네이처리퍼블릭은 갑자기 한씨와의 계약을 파기한다. 한씨는 “정 대표가 ‘사장님의 뜻’이라며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며 “억울한 심정을 신 이사장에게 얘기했으나 오히려 호통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네이처리퍼블릭이 신 이사장의 아들 장재영씨가 운영하는 비엔에프통상과 계약을 체결해 장씨에게 수수료를 지급했다고 증언했다. 원래 패션 유통업체였던 비엔에프통상은 2014년7월 법인 목적에 면세점 컨설팅 사업을 추가했다. 그리고 같은 달 네이처리퍼블릭과 면세점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신 이사장 측은 “한씨와 아는 사이는 맞지만 해당 내용은 모르는 일”이라며 일축했다.

로비 정황이 속속 드러나자 검찰은 수사관 100명을 동원해 2일 롯데호텔 면세점사업부와 신영자 이사장 자택, 비엔에프통상, 유니엘,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을 압수수색했다. 비엔에프통상과 유니엘은 모두 장재영씨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다.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은 신영자 이사장과 두 딸이 지분을 나눠갖고 있다.

◆검찰의 칼 롯데그룹으로

신 이사장과 그 자녀들만 조사하던 검찰이 6월10일 240명의 수사관을 동원해 롯데그룹을 압수수색했다. 신 이사장을 조사하다보니 그룹의 치부가 드러났다는 얘기도 있고 롯데일가의 비리정황을 검찰이 사전에 알고 있었기에 시기의 문제일 뿐이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7월1일 신 이사장은 검찰의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청으로 들어갔다. 신동빈 회장도 조사를 받을 수 밖에 없는 분위기다. 신동빈 회장의 입지가 흔들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의 최측근인 이인원, 황각규, 소진세 3인방이 검찰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또 다른 측근인 노병용 롯데마트 대표마저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구속됐다. 그의 형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은 경영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공격한 틈을 엿보고 있다.

국민감정도 좋지 않다. 롯데를 국부 유출에 앞장선 일본기업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인지 롯데를 동정하는 여론은 좀처럼 형성되지 않는다. 롯데그룹이 사상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5분간 벌어진 정운호 대표와 최유정 변호사의 승강이가 불러온 한 사건은 거대한 폭풍이 돼 롯데그룹에 휘몰아치고 있다.

<사건 일지>

2007년 브로커 한영철씨 봉사활동 모임에서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만남
2012년 3월~2014년 10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해외 원정도박
2012년 10월 한영철, 정운호, 신영자 마카오 여행
2012년 10월29일 한씨, 정운호 대표와 면세점 컨설팅 계약서 체결
2013년 1월 롯데면세점 소공동 본점,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위치 변경
2014년 7월 비엔에프통상, 법인 목적에 면세점 컨설팅 사업 추가
2014년 7월 네이처리퍼블릭, 비엔에프통상과 면세점 컨설팅 계약
2014년 7월 경찰, 정운호 도박 무혐의 처분
2015년 2월 검찰, 정운호 도박 또다시 무혐의 처분
2015년 10월21일 검찰, 정운호 상습도박혐의 구속기소
2015년 12월1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부상준 부장판사 1심 정운호 1년 선고
2016년 4월9일 2심 정운호에 8개월 선고
2016년 4월12일 정운호 서울구치소에서 최유정 폭행
2016년 4월15일 최유정, 정운호 고소·정운호 로비관련 명단 8명 공개(의사, 언론인, 부동산 개발업자 등)
2016년 4월26일 서울변호사회, 진상조사 착수
2016년 5월2일 대한변호사협회, 정운호리스트 등 12명 검찰에 고발
2016년 5월3일 검찰, 한영철씨 정 대표에게서 10억원가량 받은 혐의 등 관련 체포
2016년 5월5일 A주간지, 한씨가 2012년10월29일 신영자 롯데재단 사장과 체결한 계약서 공개
2016년 5월21일 한씨 특정범죄가중법상 알선수재 혐의 구속
2016년 6월2일 검찰, 롯데호텔 면세점사업부, 신영자 자택, 유니엘, 비엔에프통상,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 압수수색. 홍만표 변호사 구속
2016년 6월3일 검찰, 롯데호텔 증거인멸 포착
2016년 6월5일 정운호, 해외도박혐의 석방 당일 횡령혐의로 다시 구속수감
2016년 6월7일 비엔에프통상 임원 등 검찰 소환 불응
2016년 6월8일 이효욱 비엔에프통상 대표 체포
2016년 6월10일 검찰, 롯데그룹 정책본부·계열사 7곳·신동빈 회장 자택·롯데호텔 등 17곳 압수수색.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 구속, 이인원 롯데쇼핑 정책본부장·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 출국금지
2016년 6월13일 최유정 재판

(끝)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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