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외교관 망명

입력 2016-08-17 17:32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그는 공항에서 외교관 여권 대신 일반 여권을 내밀었다. 주재국 정보망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비행기는 북한과 거의 교류가 없는 국가의 저가 항공을 골랐다. 그렇게 2개국 이상을 경유하고 제3국으로 이동한 뒤 망명을 신청했다. 연결 항공의 공항 내 체류시간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짐을 부치고 찾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휴대물품만 챙겼다.

지난해 유럽주재 한 북한 외교관의 망명 과정이다. 다른 지역의 외교관들도 비슷한 방식을 활용했다. 며칠 전 망명을 신청한 태영호 영국 주재 공사는 10년 이상 현지에서 생활한 유럽 전문가여서 이런 루트를 활용하는 데 더 익숙했을 것이다.

북한 외교관들의 망명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예전엔 아프리카 지역이 많았다. 1991년 주콩고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 고영환 씨와 1996년 잠비아 주재 현성일 서기관 등이 대표적이다. 1997년 장승길 주이집트 북한 대사와 2013년 주에티오피아 무역대표부 소속 외교관에 이어 최근엔 러시아 주재 외교관들도 탈북에 가세했다. 이집트와 프랑스에서 각각 일하던 형제 외교관은 미국으로 망명했다.

요즘은 김정은의 공포정치와 핵개발에 대한 국제 제재 등이 겹친 상황에서 엘리트층의 Ъ?탈북이 일상화되고 있다. 외화벌이 등 상납 압박이 심해진 데다 숙청 공포감까지 커졌다. 얼마 전 탈북한 북한군 장성급 인사와 외교관들은 김정은의 동남아 비자금을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탈출이 줄을 잇는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한다. 먼저 바깥세상 물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북한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은밀한 탈출 루트를 일반 탈북자보다 쉽게 확보할 수 있고 곧바로 실행할 수도 있다. 자녀교육 또한 문제다. 국제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북한의 폐쇄적인 교육 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는 점은 신세대 외교관들의 또 다른 고민이다.

냉전시대에는 강대국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수많은 외교관이 망명을 꾀하거나 역제의하곤 했다. 유엔 주재 소련 외교관이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군의 생물학적 무기 개발 비밀 정보를 넘기기도 했다. 망명 외교관의 후손으로 국제적인 명사가 된 인물도 많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망명한 체코 외교관의 딸이다. 베스트셀러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쓴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 태생으로 소련 침공 이후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망명한 뒤 세계적인 작가가 됐다. 탈북 외교관 중에는 어떤 인물들이 나올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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