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사 '콕 찌르기'] (31) 올림픽 출전을 위해서라면…

입력 2016-08-26 16:29  

장원재 박사의'그것이 알고 싶지?'

올림픽 출전하기 위해 국적을 바꾼 이들 국적 바꾸려면 원국적 나라가 동의해야



일본 코미디언이 캄보디아 대표로 리우에서 마라톤을 완주했다. 올림픽에 출전하겠다는 열망이 국적 변경이라는 모험을 감행하도록 만들었다. 캄보디아는 마라톤이 약하니 아마추어 수준에서라도 열심히 연습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고 계산한 것이다. 참고로 일본 국적법은 자국민이 일단 다른 나라 국적을 획득하면 다시는 일본 국적을 취득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자 탁구 경기에서는 유럽과 아시아의 8강 진출국 가운데 많은 나라가 중국 태생 귀화 선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중국은 탁구 선수층이 두껍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나 그 나라 대표선수가 되는 것이 국제 대회에 출전 확률을 높이는 길이다.

캄보디아 대표로 뛴 일본 코미디언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는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 깃발을 달고 ‘빅토르 안’이 돼 그의 새 조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국적은 바꿀 수 있다. 개인의 의지로 얼마든지. 자기가 낳고 자라고 친구들이 있는 곳을 떠나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떠나서 얻는 이득과 미래 전망이 남아서 누리는 혜택보다 월등히 클 때, 사람들은 국적을 바꾼다. 복거일 선생은 이를 두고 ‘발로 하는 투표’라고 표현했다. 안현수는 더 이상 대한민국 국가 대표로 뽑히고 올림픽이나 기타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정이 ‘국적 변경’의 이유였다. 발로 하는 투표를 통해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정체성을 지킨 것이다. 그렇다면 스포츠 선수들은 어떤 경우에 국적을 바꾸는가?

스포츠 역사상 아마도 가장 유명한 국적 변경 사례가 있다. 나임 슐레이마놀루(터키)의 처음 이름은 나임 슐레이마노프다. 불가리아 산간 마을에서 광부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155㎝의 단신이었지만 152㎝인 아버지와 141㎝인 어머니에 비하면 그는 가족 중 최장신이었다.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였던 슐레이마놀루는 14세 때 이미 합계 중량 성인 세계신기록을 깨버린 괴물이었다, 불과 2.5㎏의 근소한 차이이기는 하지만. 그는 15세 때 용상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이듬해 자기 몸무게의 세 배를 들어 올린 사상 두 번째의 인간이 됐다.

불가리아 정부는 1984년부터 ‘슐레이마노프’에게 매달 연금을 지급하고 아파트도 제공했다. 일종의 파격이자 엄청난 특혜였다. 문제는 같은 해에 터진 터키계 불가리아 인들의 시위다. 불가리아 정부는 소수 민족을 탄압했다. 반터키 캠페인이 일어나고 모스크가 폐쇄됐으며 이슬람 축제 및 이슬람식 장례식 금지, 터키어 사용 금지, 터키 민족 의상 착용 금지 등의 조치가 잇따랐다. 시위 참여자들은 체포돼 실형 선고를 받았다. 나임 슐레이마놀루는 휴가를 받아 집으로 돌아온 12월 이 모든 상황을 현장에서 지켜보았다.

올림픽 규정과 망명

1985년 호주 멜버른의 전지훈련, 슐레이마 놀루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불가리아에서 터키로 국적을 바꾼 남성이었다. 그는 슐레이마놀루의 망명을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18세의 세계기록 보유자 소년은 마음이 흔들렸지만, 일단은 망명 제의를 거절하면서 이렇게 답했다. ‘불가리아 정부가 내 터키식 이름을 불가리아식으로 바꾸라고 강요한다면, 그때는 망명을 고려해보겠습니다’라고. 귀국 후 불가리아 정부는 나임 슐레이마놀루의 여권을 회수했다. 그리고 불가리아식 이름인 ‘나음 슐레이마노프’ 명의의 새 여권을 발급했다. 얼마 후 슐레이마놀루는 그가 ‘진정한 불가리아식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인터뷰 기사를 발견한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애초에 인터뷰 자체를 한 사실이 없었지만, 터키계 불가리아 사람들은 소년에게 ‘영혼을 팔았다’며 그를 야유하고 비난했다. 1986년 12월, 이미 세계선수권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위대한 역사(力士)는 멜버른에서 생애 세 번째의 세계선수권대회를 치르고 있었다. 대회가 끝나고 선수단 회식이 열리던 식당에서 챔피언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는 자기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4일간의 ‘실종’ 후 소년은 멜버른 주재 터키 영사를 찾아가 망명을 요청했다. 비행기 편으로 런던으로 날아간 슐레이마놀루 앞에 터키 수상이 보낸 그만을 위한 전용기 한 대가 모습을 보였다. 비행기에서 내리美뗌?터키 땅에 엎드려 키스하는 모습은 터키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는 곧바로 나라를 대표하는 영웅이 됐다.

문제는 올림픽 규정이었다. 운동 선수가 국적을 바꾸면 원국적 국가가 동의서를 써주지 않는 한 국적 변경 후 3 년 이내에는 대회 출전이 불가능하다. 1988년 초 터키 정부는 불가리아 정부에게 100만달러를 건넸다. 명목은 지금까지 슐레이마놀루에게 들어간 ‘훈련비, 연금, 아파트 제공비의 정산’이었다. 불가리아는 그가 ‘공개 석상에서 불가리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동의서를 발급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 경기장. 슐레이마놀루는 인상, 용상, 합계 세계신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며 시상대의 맨 위에 선다. 인상에서는 두 번째 시도에서 이미 세계기록을 경신했고, 세 번째 시도에서 자신의 세계기록을 ‘역사상 가장 짧게 존속한 신기록’으로 만든다. 공교롭게도, 은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불가리아의 스테판 토프로프다(합계 312.5㎏). 슐레이마놀루의 합계기록 342.5㎏은 윗체급인 라이트급 우승자 요아킴 쿤츠(동독)의 340.0㎏보다 오히려 더 많았다.

터키 정부는 이번에도 서울까지 전용기를 보내 영웅의 귀환을 축하했다. 100만명의 환영 인파 앞에서, TV로 생중계되는 화면 앞에서 슐레이마놀루는 ‘이 메달은 나의 메달이 아니다. 터키 국민의 메달이다!’라고 포효했다. 20년 만의 금메달에 환호하던 터키 국민들은 갓 스물 청년의 이 한 마디에 모두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불가리아 정부와 터키 정부 사이의 약속은 지켜졌지만, 세계 여론이 움직였다. 불가리아 내 소수 민족 박해 문제가 슐레이마놀루로 인해 국제적인 이슈로 떠으?것이다. 90만명에 달했던 불가리아 내 터키인들의 30%가 터키로 ‘이민’ 가기를 원했고, 불가리아 정부는 이들의 의사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동유럽 몰락 전이라, 공산권 국가 국민들의 해외 여행이 거의 불가능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작은 헤라클레스의 국적

서울 대회 때 바벨에 키스하며 은퇴를 선언했던 이 역사(力士)는 터키 정부의 간곡한 요청으로 복귀와 은퇴를 반복했지만 부상을 무릅쓰고 출전한 1992년 바르셀로나,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서도 우승하며 조국에 세 개의 금메달을 안긴다. 러시아 출생으로 그리스로 귀화한 발레리오스 레오니디스와 펼친 박빙의 승부, 합계 중량 불과 2.5㎏, 두 사람 모두 용상 공동 세계신기록을 세운 1996년 올림픽 역도, 앙숙인 그리스와 터키의 관중들이 두 선수 모두를 열정적으로 함께 응원하고 경기 종료 후 기립 박수로 영웅들을 기리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자.

터키 정부는 세 개의 금메달에 30㎏의 황금(10㎏씩 세 번)과 22채의 집으로 슐레이마놀루에게 화답했다. 어느 식당에 가든 주인이 돈을 받지 않고 과속을 해도 경찰이 에스코트를 해주며 길을 터주던 이 소년, 단신인 탓에 포켓 헤라클레스라 불리던 전설적인 역사는 2014년 터키의 TV광고에 배불뚝이 아저씨가 된 모습으로 출연해 전 세계 팬들과 다시 만났다. 역시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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