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내각제 시행…집권 민주당 내분 격화, 10개월 동안 데모 2000여건…혼란과 무질서

입력 2016-10-14 16:32  

펭귄쌤이 전해주는 대한민국 이야기 (37)


1960년 내각제로 헌법개정

4·19혁명의 거센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1960년 6월, 국회는 헌법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정부 형태를 대통령제에서 내각책임제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내각책임제에서 내각은 국회의 여당으로 조직됩니다. 그 내각이 행정부의 핵심을 이루고 국회가 국정 운영의 중심에 서는 정부 형태이지요. 이승만 정부 때 야당이던 민주당은 이런 정부 형태를 오랫동안 주장해왔습니다.

또 새로 바뀐 내용 중 하나는 국회를 참의원과 민의원의 양원으로 나눴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하원에 해당하는 민의원은 전국 233개 소선거구에서 한 명씩 뽑힌 국회의원이지요. 예산 심의, 법률 제정, 국무원 불신임의 권한을 가졌습니다.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은 서울특별시와 각 도를 선거구로 총 58명을 뽑았습니다. 참의원들은 민의원에서 올라온 법안을 심의하고 대법관, 검찰총장, 대사 등 법률로 정한 공무원 임명에 대한 인준권을 가졌습니다.

제2공화국 때 대통령은 국회의 양원 합동회의에서 선출했습니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로서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이었지요. 하지만 국가 행정의 실무 책임자는 국무총리였습니다.

1960년 7월 새로 바뀐 헌법에 의해 민의원과 참의원 선거가 시행됐습니다. 총 291명을 뽑는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206석을 차지했습니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의원이 69명이었는데 이들도 곧 민주당에 흡수됐습니다. 민주당이 90%가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정국을 완전히 손에 넣게 되었지요. 새로 선출된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국무총리 두 사람 다 민주당 사람들이었습니다.

윤보선 대통령-장면 총리 대립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선거도 마쳤습니다. 하지만 한번 흐트러진 사회는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했습니다. 1961년 5월16일, 5·16군사정변이 일어날 때까지 10개월 동안 유지된 장면 총리의 정부는 혼돈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1년도 채 안 되는 그 기간에 개각을 세 차례나 했지요. 장관 등 국무위원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2개월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정부가 안정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 사이의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민주당 안에서도 윤보선 대통령은 구파, 장면 총리는 신파에 속했는데 그 두 파 사이에 갈등이 심해진 것입니다. 결국 구파는 민주당에서 갈라져 나가 신민당이라는 새로운 당을 만들었지요. 헌법에는 대통령이 정당에 속할 수 없다고 돼 있는데 윤보선 대통령은 모든 일에서 구파와 신민당의 편만 들었습니다.

장면 정부는 경제개발계획을 발표하고 국?재건을 위해 힘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싸움에 발목이 잡혀 실천을 거의 못했습니다. 또 4·19혁명으로 민주주의를 되찾았다는 해방감에 사회는 혼란과 무질서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선 수없이 많은 시위와 데모가 벌어졌습니다. 민주당 정부 10개월 동안 길거리 데모에 나선 사람은 100만명, 데모 건수는 2000건에 달했습니다. 데모로 해가 뜨고 데모로 해가 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데모를 했습니다. 선생님 전근 가지 않게 해달라는 데모, 어른들 데모 그만하라는 데모도 있었습니다.

시위대 의사당 난입

국회도 예외 없이 데모의 물결에 휩쓸렸죠. 1960년 10월 4·19 시위대에 총을 쏜 책임자들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유족 등 시민 1000여명이 민의원 회의장에 들이닥쳤습니다. 의사당에 난입한 사람들은 민의원에 강압적인 요구를 해 네 가지 특별법을 제정하게 했습니다. 부정 선거 관련자와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사람에 대한 처벌 등을 담은 법이었습니다.

시위대가 의사당에 들이닥친 것이나 국회의원에게 강압적으로 법안을 만들게 한 것 모두 민주 시민이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이 특별법들이 소급 입법으로 제정됐다는 점입니다. 소급이란 거슬러 올라간다는 말로, 소급 입법은 그 법이 정해지기 전에 어긴 것까지 새로 정해진 법에 의해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은 원칙적으로 소급 입법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소급 입법을 하면 법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익상 정말 중요한 이유가 아니라면 소급 입법을 하지 않도록 한 것이죠. 그런데 국회의원이 시위대 요구에 떠밀려 소급 입법까지 했다는 것은 4·19혁명 이후의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글=황인희 / 사진=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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