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시간도 쉬어 가는…천국과 가장 가까운 섬

입력 2016-10-23 17:04   수정 2016-10-23 17:07

박 기자의 '좌충우돌' 시칠리아 렌터카 여행

시칠리아 '해변의 갑' 체팔루
'천공의 성' 닮은 에리체 "이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

석회암 절벽 끝에서 '돌침대 일광욕'
에메랄드빛 바다-하늘 '5 대 5'로 보이네




시칠리아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반응은 대개 두 가지다. 열에 아홉은 이렇게 말한다. “마피아 안 무서워?” 영화 ‘대부’가 미친 영향이 실로 크다. 나머지 하나는 ‘어떻게 이동할 거냐’는 다소 날카로운 질문이다. 제주도의 14배에 달하는 큰 섬이지만 대중교통은 꽤 번거롭다. 더구나 20㎏이 넘는 캐리어와 한몸인 상태 아닌가. 그렇다면 대안은 하나, 렌터카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 “매력적인 장소는 보통 언어의 영역에서 우리의 능력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고 썼다. 이 말이 맞다면 시칠리아는 ‘성찰의 섬’이다. 차를 타고 이 환상적인 섬을 돌았던 1주일, 표현력의 한계를 여실히 깨달았다. 체팔루, 에리체, 마르살라, 아그리젠토…시(詩)의 ?구절처럼 아름다운 도시들을 소개한다.

시칠리아=박병준 기자 real@hankyung.com

체팔루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체팔루(Cefalu)는 시칠리아의 12시 방향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메시나에서 차로 2시간 정도 걸린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코발트색 페인트를 쏟아 부은 것 같은 바다가 펼쳐진다. 시칠리아엔 빼어난 해변들이 차고 넘치지만 그중의 백미는 체팔루다. 지중해의 진수를 보여주는 파도는 빛깔부터가 달랐다. 그 뒤로는 아랍풍의 집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아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어도 엽서가 될 법한 풍경이었다.

백사장은 꽤 길게 이어져 있어 일광욕을 하며 책을 읽거나 수영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긴 낚싯대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현지인도 눈에 띄었다. 모두가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아무도 서두르거나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체팔루의 중력은 다른 도시들보다 강한 걸까. 마치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해변을 빠져나와 중앙광장으로 가면 대성당이 보인다. 12세기에 지어진 노르만 양식의 건물이다. 이슬람의 영향을 받아 성당 내부엔 아랍 문양과 아라비아 문자가 새겨져 있다. 체력이 남아 있다면 체팔루의 모든 것이 내려다보이는 ‘로카 디 체팔루(Rocca di Cefalu)’란 바위산에 올라보자. 30여분 정도 계단을 올라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하지만 정상에 닿았을 때 마주하게 되는 비현실적 풍경은 그 값어치를 한다. 붉은색 지붕으로 가득한 건물들과 푸른 바다의 조화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크로아티아를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약간의 기시감이 들 수 있다. 두브로브니크 성벽 위에서 봤던 그 풍경이다.

‘천공의 도시’ 에리체

시칠리아 주도인 팔레르모에서 1박을 한 뒤 아침 일찍 에리체(Erice)로 향했다. 1시간40분 정도 달렸을까. 해발 750m의 거대한 바위산이 눈앞에 보였다. 저 위에 도시가 형성돼 있다니, 직접 가보지 않고선 믿을 수가 없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한 장면 같았으니 말이다. 올라가는 길은 레이싱 코스라고 해도 될 정도로 커브가 심했다.(실제로 이곳에서 자동차 경주를 한다고 한다. 에리체 골목 곳곳엔 대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S자로 휘어진 도로를 따라 오르길 20여분. 전날 과음을 안 한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곡예운전 하듯 올라간 정상엔 소박하고 고요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성벽과 멀리 보이는 지중해, ‘소금의 도시’ 트라파니까지. 눈은 바쁘게 돌아갔다. 특히 바닥이 인상적이었다. 회색빛 돌로 포장된 바닥은 길이 휘어지는 것까지 표현할 정도로 정교하게 디자인돼 있었다. 골목 대로변엔 카페와 식당, 기념품 가게가 몰려 있어 왁자지껄했지만 조금만 빠져나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감을 선사한다. 발길 닿는 대로 천천히 걷기 좋다.

지금은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 숱한 침략을 받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과거 시칠리아는 군사적 요충지란 이유로 그리스, 로마, 스페인 등 주변 국가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다. 에리체는 바다에서 건너오는 적을 관찰하는 망루 같은 도시였던 것이다.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가 많은 동네다. 하루 묵으면서 충분히 여유와 사색을 즐길 만하다.

‘신의 항구’ 마르살라에서 신의 물방울을

시칠리아는 화산토로 이뤄진 섬이다. 포도 재배에서는 ‘신의 축복’이라고 부를 정도로 비옥한 토지를 선물 받은 셈이다. 화산토에 뿌리 내린 포도나무는 ‘비교 불가능한’ 열매를 자라게 했고 시칠리아만의 포도주를 탄생하게 했다. 시칠리아 서쪽에 자리한 마르살라(Marsala) 역시 그 유산을 물려받은 도시 중 하나다. 마르살라는 아랍인이 이곳을 지배했을 때 붙인 이름이다. 아랍어 마르사 알라(Marsa Allah)에서 따왔다고 한다. 신의 항구라는 뜻이다. 이 도시에는 플로리오(FLORIO)라고 하는 시칠리아 최대 규모의 와이너리가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손꼽히는 포도주 브랜드로 유명하다.

와이너리 투어를 하기 위해 미리 예약했다. 투어 인원이 정해져 있어 당일 예약은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은 1인당 13유로(약 1만6000원). 투어는 영어로 진행된다. 가이드가 가장 먼저 데려간 곳은 ‘4D 체험관’이었다. 20분가량의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와이너리의 역사, 포도주 생산 과정을 4D 영상으로 보여준다. 중간중간 바람이 불고 물이 튀어 실제 포도숲에 와 있는 듯했다. 180년 전통의 와이너리지만 차별화된 투어를 위해 첨단기술을 도입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상영이 끝나면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된다. 거대한 와인저장고에 들어가니 숙성되고 있는 시큼한 포도의 향이 가득했다. 투어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시음회는 마지막 코스였다. 긴 원테이블엔 네 잔의 와인이 준비돼 있었다. 마르살라는 ‘주정강화 와인’으로 유명한데 이 와인은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제조과정에서 설탕을 넣은 게 특징이다. 달콤하면서도 도수가 높아 조금만 마셔도 취기가 돌았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라 차례로 와인을 마시니 만화 ‘신의 물방울’의 한 장면이 오버랩됐다. 투어가 끝나면 와인숍에서 다양한 마르살라 와인을 구입할 수 있다. 기념품용으로 좋다. 술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투어는 꼭 권하고 싶은 이유다.

‘터키인의 계단’ 스칼라 데이 투르키

시칠리아를 여행하다 보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순 없다’는 확신이 쉽게 깨지곤 한다. “여기가 인생뷰”라고 외쳤다가 다음 여행지에서 말문이 막히는 풍경을 보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스칼라 데이 투르키’가 그랬다.

아그리젠토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린다. 이미 시칠리아의 여러 해변을 거치며 눈높이가 높아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특별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하얀 석회암 절벽 때문이다. 다른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지형이라 더욱 기억에 남을 장소다.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오를 수 있다. 스칼라 데이 투르키(Scala Dei Turchi)란 이름부터 ‘터키인의 계단’이란 뜻이다. 과거 터키의 침입이 잦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해안가 인근 주차장에 차를 대면 모래사장을 따라 20분 정도 걸어야 도착한다. 계단을 오를 땐 바람이 많이 불어 조심할 필요가 있다. 신발을 벗고 걸으면 발바닥이 하얗게 변해 있다. 석회가루가 묻은 탓이다.

절벽 끝에는 일광욕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특이한 것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누워보니 파란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정확히 5 대 5 비율로 눈에 들어온다. 햇살은 따뜻하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시원하다. 시칠리아의 하늘, 바다, 바람, 햇살을 가장 편안한 자세로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여행의 화룡점정을 찍기에 더 없이 훌륭한 곳이다. 그렇다고 확신은 금물이다. 시칠리아 어딘가 여기보다 더 환상적인 곳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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