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권력구조 아니라 권력 그 자체가 문제다

입력 2016-10-24 17:34  

우리사회 정치갈등과 사회분열엔
차별적 청구권 도배질한 지상천국 헌법도 한몫

자유를 복지로 치환한 87체제 못바꾸면
경제적 번영과 사회발전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우리 헌법은 만인의 이권투쟁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것은 사실이다. 사회가 이토록 시끄러운 것도 그 때문이다. 이권투쟁의 현실은 권리 쟁취라는 미사여구 속에 숨어 있다. 그것이 갈등, 분열, 부패의 원인이다. 정치가 저토록 치고받고, 물고뜯는 것은, 헌법이 장려하는 허다한 권리투쟁의 예상되는 결과다. 정치 혼란의 한 가지 근본 원인을 찾기로 한다면 헌법이 정하고 있는 지상천국 신화의 한 궁벽한 주술에 모아질 수밖에 없다. 만일 우리가 높다란 벽에 무언가를 그럴싸하게 써놓기만 하면, 그리고 주술처럼 그것이 실현된다면 한국은 이미 지상천국이 됐거나 근접하고 있어야 마땅하다.

다음의 단어군을 떠올려보라. △경제력 남용방지 △자연자원 보호 △국토의 균형발전 △토지소유권 제한 △경자유전 △농·어업 보호 △중소기업 보호 △소비자 보호 △대외무역 조정 △과학기술 발전 △국가표준 육성 △환경권 등의 아름다운 단어들 말이다. 우리 亮萱?이 모든 조항을 국가의 의무로 정하고 있다. 이런 헌법은 대한민국밖에 없다. 미국 일본은 물론이고 프랑스 헌법조차 이들 중 단 한 개 항목도 헌법에 포함하고 있지 않다. 독일 헌법이 △자연자원 보호 △토지소유권 규제를 정하고 있을 뿐이고, 구소련 구동독 중국 심지어 북한 헌법에 가서야 이들 항목 중 몇 개씩을 헌법적 보호항목에 포함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헌법은 그런 독재자의 백화점식 헌법이다.

우리 헌법은 대기업을 규제하고 부자를 벌주며 대도시를 저주하도록 헌법 제119조 제2항과 헌법 제123조 제2항에서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가난한 사람을 지원하며, 지역을 육성하고, 농어촌을 원호하며, 수출산업을 장려할 것을 국가 의무로 선언하고도 있다. 헌법이 온 국민을 구체적 범주로 나누고 그들을 보호하도록 요구하는 차별적 헌법은 다른 나라에는 없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 분열책동은 그런 면에서 불행히도 합헌적이다.

정치권은 개헌을 권력구조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됐건, 내각제가 됐건, 아니면 이원집정제가 됐건 권력구조를 바꾸면 정치가 질서정연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의 형성이 민주적 절차를 거치기만 하면 그것에 의해 조직되는 정치는 자동적으로 나라의 번영을 담보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아니었다. 인민주의적 성향이 강한 소위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를 그대로 두고는 어떤 사회발전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논란의 포인트다. 문제는 권력구조가 아니라 권력 그 자체다.

어떻게 권력을 구성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권력이며 국가권력을 어떻게 통제하는가의 문제로 질문을 옮겨야 한다. 지금의 정치풍토라면 4년 중임제 첫 임기 4년은 포퓰리즘으로, 2차 4년은 레임덕으로 끝나게 된다. 내각제는 국회선진화법을 구조화하는 결과와 정확하게 꼭같다. 선진화법은 이미 충분히 국가를 의사무능력자로 만든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나. 우리는 거듭되는 총선거로 날밤을 지새울 것이다. 이원집정제는 또 사실상 2개 정부의 대립이라는 갈등 구조를 낳을 것이다. 바보들은 이런 토론에 온통 정신을 빼앗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우리 헌법이 국가의 무한정한 봉사를 규정한 끝에 크고 작은 권리목록을 전부 국가에 대한 청구권으로 변질시킨 사실상 ‘구걸자의 헌법’이요, 헌법개정 때마다 그럴싸해 보이는 조항을 무더기로 덧댄 ‘누더기 헌법’이기 때문이다. 자유의 헌정이 아닌 청구권자의 헌정이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 종복(從僕)이나 어린아이를 양육하는 헌법이다. 그러나 어떤 권력도 헌법의 청구권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다. 청구권들은 이해충돌적이어서 공존이 불가능하다. 헌법이 권리를 보장할수록 모든 자의 불평불만이 더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은 87체제라는 단어로 5년 단임제를 비판했다. 그러나 87체제의 본질은 그 인민주의적 속성에 있다. 발전의 논리는 87체제로 끝나고 말았다. 노사분규와 함께 만인의 투쟁 상태로 전환되면서 사회는 난마처럼 엉켜들었다. 그게 헌법 문제의 본질이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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