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설마"했던 '최순실 게이트'의 시그널들(3)

입력 2016-10-31 09:19   수정 2016-10-31 15:37



(손성태 정치부 기자) 2015년 10월 27일 ‘미르’란 이름의 재단법인 하나가 출현했다.이름에서부터 음습함을 풍기는 재단은 문화체육부의 설립인가에서부터 법원 등기절차까지 48시간만에 ‘번갯불에 콩구워먹듯이’ 탄생했다.(미르란 이름은 박근혜 대통령이 용띠인 것을 착안했다는 설과 고(故) 최태민목사의 미륵사상인 ‘미르+ㄱ’을 분리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을 만들었을 것이란 설이 항간에 떠돌고 있다)

미르는 출범과정및 자금모집,재단 운영까지 최소한의 프로세스마저 작동하지 않은 정부시스템 부재와 자기통제력을 상실한 최순실의 안하무인식 권력농단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미르 설립은 그해 10월25일 통상적인 서류절차를 무시하고 세종시에 있는 문체부 담당부서에 이메일을 보내면서 시작됐다.설립과정은 모든게 의혹 투성이다. 문체부 소관부서 주무관이 10월 26일 서울 미르사무소를 방문해 설립신청서를 출장 접수한 것이나 문체부 결제시스템에 올라온 신청서를 업무시간이 끝난 밤 8시 27분께 담당 사무관이 기다렸다는 듯이 결재를 한 것은 통상적인 업무프로세스로 이해하기 힘들다.

이 뿐만이 아니다. 10월 27일 오전에 문체부 장관결재가 이뤄지고 설립 허가 통보에 앞서 법원에 등기신청이 접수됐고, 등기절차가 끝나기도 전에 미르는 재단법인 현판식을을 거행한 것이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졌다.

정상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무시하고 이렇게 서둘러 재단을 출번시킨 배경은 뭘까.일각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월 26일을 재단 출범일로 정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왔다.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최순실이 기존 체계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힘을 과시하고 싶은 ‘뒤틀린 권력욕’이 배경이 됐을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 향후 재단운영을 위해 지속적인 협조를 구해야 하는 문체부의 공무원들에게 ‘으름장’을 놓는 효과도 기대했을 것이다.

황교안 총리는 2016년 9월 국정감사에서 야당이 미르재단의 졸속 허가문제를 따지자 “2~3일만에 설립인가를 받은 사례가 있었고,미르재단 인가는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거짓말이다.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한 국익목적의 재단이 3일만에 재인가를 받았을 뿐 신생재단이 이틀만에 허가된 사례는 없었다.야당의 한 의원은 “서슬퍼?던 군사정권 시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도 3년여에 걸쳐 자금을 모으는 등 용의주도함을 갖췄다"며 혀를 내둘렀다. 486억원에 달하는 기업들의 출연금 징수도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듯이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최순실은 미르재단 출범에 앞서 2015년 7월께 독일에 ‘비덱스포츠’란 법인을 세웠다. 사업목적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와 비슷한 이 해외법인은 자금세탁및 재단자금 유용을 위한 ‘페이퍼 컴퍼니’란 의혹이 제기됐고, 실제로 여러 증거들이 포착되고 있다.

2015년 10월과 11월에는 재계에 미르재단이 대기업들을 상대로 藪П鳧?강제 모금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울며 겨자먹기’로 출연을 강요받은 기업관계자들이 하소연 했지만 세상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2016년 1월 13일에는 설립과정및 이사진과 사무실 집기까지 똑같은 ‘쌍둥이재단' K스포츠가 탄생했다. K스포츠보다 하루 앞선 1월12일에는 최순실의 개인 비밀회사인 ’더블루 K‘가 법인 등록을 마쳤다.

2016년 3월에는 승마판정 진상조사로 3년전 대통령에게 찍혀 경질됐던 노태강 전 체육국장과 진재수 전 체육정책 과장이 다시 등장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유관기관에 파견근무중이던 둘을 지목하면서 “이 사람들 아직도 있어요"라고 문체부 국장을 질타했다. 둘은 문체부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2016년 7월 명예퇴직을 택했다. 최순실이란 비선실세 눈밖에 나면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도 별수 없다는 경고장을 공무원 사회 전체에 던진 것이다.2명 실무급 공무원에 대한 대통령과 최순실의 3년여에 걸친 응징과 집착은 ‘공포물 영화'한편을 보는 것 같다.

청와대 공직사정비서관을 지냈던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9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우병우 민정수석과 윤전추 행정관의 발탁은 최순실과의 인연이 직접적으로 작용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하지만, 최순실의 컴퓨터에 저장된 44개 청와대 파일이 공개되기 전에는 아무도 조 의원의 경고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1년 4개월의 임기를 남겨둔 박 대통령은 이미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했다. 여야를 가릴 것없이 정치권은 박 대통령이 권한을 내려놓고 거국내각을 구성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는 거대한 ‘블랙홀’로 작용해 대통령이 전격 제안한 개헌론을 비롯해 400조원에 달하는 내년 예산 심사, 해운 조선산업 구조조정 등 시급한 현안을 모두 집어삼키고 있다, 과거 ‘최순실 게이트’를 경계하는 그 수 많은 ‘시그널'을 무시했던 댓가이다.(끝) / mrhand@hankyung.com

<’최순실 게이트'를 경계했던 시그널들>

▷2013년 4월, 한국마사회컵 승마대회 판정시비

▷2013년 5월, 청와대 노태강 전 체육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에 진상조사 지시

▷2013년 8월, 박 대통령 유진룡 문체부 장관을 청와대 집무실로 불러 노국장과 진 과장을 지목하면서 “아주 노 나쁜사람이라고 하더라”고 경질 지시

▷2013년 9월, 노국장과 진과장 경질

▷2014년 3월, 정윤회,박대통령 동생 박지만 EG회장 미행했다는 의혹 보도

▷2014년 9월20일, 정유라 인천아시안게임 승마 단체전에서 금메달.

▷2014년 10월, 정유라 이화여대 특례입학

▷2014년 7월 국회운영위원회의, 이재만 총무비서관 퇴근때 서류보따리 들고 외출한다는 의혹 제기(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

▷2014년 12월 정윤회 비선실세 의혹

▷2014년 12월, 청와대 내부문건 유출혐의 박관천 행정관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2위는 정윤회,3위가 박근혜 대통령이다"고 발언

▷2015년 7월 최순실,독일에 ’비덱스포츠‘설립

▷2015년 10월 27일, 미르재단 출범

▷2015년 11월, 재계에 미르재단 강제출연 소문 파다

▷2016년 1?12일, 최순실 비밀회사 더블루 K설립

▷2016년 1월 13일, K스포츠 재단 출범

▷2016년 3월, 박대통령 노 전국장 등을 지목하면서 ”이 사람들 아직도 있어요"라고 질타

▷2016년 7월,노 전국장과 진 전 과장 명예퇴직

▷2016년 9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우병우 민정수석과 윤전추 행정관 발탁은 최순실과 인연이 작용했다"의혹 제기(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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