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경제부 김용준 기자)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 시대착오로 변역된다. 미술 분야에서는 쓰임새가 좀 독특하다. 프랑스 미술사가 다니엘 아라스는 "미술사가들이 연구하는 대상은 그림이나 조각처럼 아주 구체적이고 물질적이다. 연구 대상 그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라고 말했다. 작품이 탄생한 시기의 눈으로 볼수 없고, 지금의 눈으로 봐야 한다는 면에서 미술작품 자체가 아나크로니즘을 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보티첼리가 대표적 예다. 그의 그림은 부드럽고 여성적으로 느껴진다. 미술사가들도 그렇게 평가한다. 하지만 보티첼리가 살던 15세기 사람들은 달리 생각했다. 당시 보티첼리를 규정한 것은 남성적 특징이었다. 보티첼리를 재발견한 것은 상징주의와 라파엘 전파 화가들이었다. 우리가 머리에 담고 있는 보티첼리는 상징주의와 라파엘 전파 화가들이 다시 살려낸 보티첼리다. 그 사이에는 4세기라는 망각된 시간이 있었다.
◆이건희 사재출연과 최순실의 강탈이 똑같은 일?
아나크로니즘은 미술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현재 다시 부각되고 있는 과거의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호사가들의 입에 올랐던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재출연이 대표적 사례다.
2006년 삼성은 위기에 몰렸다. 삼성의 오만한 태도에 삼성공화국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회장의 자녀인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이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지분을 받는 과정에서 증여세를 내지 않고, 편법으로 배정 받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불법 대선자금, 삼성X파일 사건도 겹쳤다. 위기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삼성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것만으로 부족했는지 이 회장 일가는 사재 8000억원을 사회를 위해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사재출연이었다.
사재출연. 한국에서 이 단어의 함의는 편법과 탈법의 경계다. 막강한 자금력으로 법의 헛점을 파고들어 법정에서는 무죄를 받았지만, 여론의 법정에서는 유죄라는 의심을 계속 받을때 이 단어가 튀어 나온다. 법과 도덕의 충돌지점이기도 하다. 주로 재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이는 한국사회가 고안해 낸 타협의 산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김경재 등은 이런 정황을 생략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돈을 강탈했다고 주장했다. 앞서 말한 당시의 시대적 정황을 모두 팽개쳐 버리고, 노무현 정부가 기업을 협박했다고 했다. 상황에 대한 의도적 왜곡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정략적 의도를 갖고 대중을 선동하는 포퓰리즘의 전형이자, 죽은 자에 대한 인격살인을 저지른 셈이다.
노무현 정부때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등은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명예훼손 소송을 하겠다고 밝히자 김경재는 다음날 곧장 사과했다. 지난주 박사모 등이 주축이 된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서 왜곡된 사실을 가지고 선동하는데 성공한 후 곧장 꼬리를 내린 셈이다.
◆악질적 포퓰리즘
미술에서 아나크로니즘은 생각의 지평을 넓혀 준다. 미술작품에 담겨 있는 세가지 시간대가 합쳐 側? 각기 다른 시공간의 사고가 그 작품에 대한 해석을 통해 감상자들에게 흘러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에서 아나크로니즘은 다르다. 대부분 정파적이고, 정략적이고, 현실을 왜곡해, 대중을 선동하는 악질적 포퓰리즘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케이스에도 나타난다. 삼성이 자발적으로 낸 돈을,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개인을 위해 기업인으로부터 뜯어낸 돈과 비슷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전형적이다.
이건희 일가가 출연한 돈은 이건희삼성장학재단의 기초가 됐다. 지금은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재단은 장학사업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돈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고 있다. 반면 미르재단은 박근혜 최순실을 위한 재단이었다. 그 방식도 강탈에 가까웠다. 물론 선의라고 박 대통령은 주장했다. 그 얘기에 대한 대부분의 반응은 분노이거나, 비웃음이었다. 이 두재단이 똑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악질적 포퓰리즘의 대표적 사례로 기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재용은 범죄자 일까
또 하나의 시대착오로 한국사회가 논란을 벌이고 있다. 작년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사건에 대한 논란이다.
이 과정에서 의심을 살 만한 일들이 꽤 있었다.
우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이재용을 만난 일이 일단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재용은 삼성그룹의 대주주이지만 당시 삼성물산의 CEO도 제일모직의 CEO도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이재용을 만나고 난 뒤 삼성 편을 들어줬다. 이재용은 이 거래로 이익을 보는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였다는 점 때문에 더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만남이 정상적이었는지, 글로벌 스탠다드와 가까운 것인지는 해외사례를 더 뒤져봐야 할 것 같다.
또 다른 쟁점은 국민연금이 적정한 절차를 거쳐 삼성의 편을 들어줬는가 하는 점이다. 우선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의결권 행사에 대한 가이드를 해주는 국제기구의 지침에 따르지 않고,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의결권 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최순실, 미르재단을 지원한 시기와 국민연금의 찬성표결 시기가 맞아 떨어진다는 점이다. 삼성은 최순실을 도와주기로 하고, 그 대가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했다는 논리다. 단순함은 항상 복잡함을 이긴다. 이 논리는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결국 검찰은 삼성 미래전략실과 국민연금을 압수수색하는데 이르렀다.
이런 문제에 대한 의혹은 당사자들이 충분히 설명하고 혐의를 벗어야 한다. 하지만 한가지 빠져 있는 게 있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였다. 2015년 한국사회는 이 문제를 놓고 논란이 뜨거웠다. 삼성이 외국 자본에 휘둘리게 내버려둬서는 안된다며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지원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민의 미래를 담보로 삼성을 지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당시 논쟁은 팽팽했던 것 같다. 경제개혁연구소 설문조사에서도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사익을 위한 것이므로 합병에 반대해야 한다’는 응답은 44.3%였고, ‘국익을 위해 합병에 찬성해야 한다’는 답은 42.5%였다. 1.8%포인트 차이로 오차범위 안에서 엇갈렸다.
1년4개월이라는 망각된 챨@?있었던 것일까. 다시 벌어진 논란은 이런 당시 분위기에 대한 고려는 모두 생략된 채 진행되고 있다.
삼성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필사적으로 오너를 위해, 경영권 안정을 위한 무슨 짓이라도 했을 삼성이다. 정유라를 불법적으로 지원한 것은 비난과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정유라 최순실 지원과 국민연금 찬성표를 맞바꿨다고 주장하는 것은 선뜻 찬성하기 어렵다. 시대착오의 느낌이 들기도 하고, 한국의 대표기업이 아무리 실세라도, 교주의 딸인 최순실에게 로비를 했다는 것은 뭔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예술 작품이 주는 아나크로니즘의 희열을 다른 분야에서 느끼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끝)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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