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 뷰] '판도라' 김남길, 한국형 히어로의 새 얼굴

입력 2016-12-13 09:19  

원전 재난 블록버스터 '판도라' 개봉
재혁 役 김남길 "도망치고 싶은 순간도…"




한때 김남길(35)은 안방극장 여심을 훔치는 '심(心) 스틸러'였다. 순수와 섹시가 공존하는 '선덕여왕'의 비담이었다가, 세상 가장 '나쁜 남자'이기도 했다.

그가 최근 개봉한 새 영화 '판도라'를 통해 한국형 히어로로 돌아왔다. 재난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 홀로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히어로다.

4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이 영화는 첫 주에만 146만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의 관객을 들이며 흥행 시동을 걸었다. 김남길은 그러나 단순한 관객 수보다 '판도라'가 우리 사회에 던진 가치에 집중했다.

“언젠가부터 1000만 관객을 잘 된 영화 기준으로 잡고 있습니다. 대작들이 각광받고 저예산 영화는 더욱 제작이 힘들어졌죠. 관객 수에 포커스가 맞춰지니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단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김남길은 ‘판도라’가 그런 영화라고 확신했다. 작품은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고 가족을 지키려는 마을 사람의 생존에 대해 그렸다. 소시민의 처절한 사투와 무능한 정부의 대처를 교대로 그리면서 2016년의 오늘과 가장 닮은 작품이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시국이나 정치 상황 때문에 사람들에게 화도 많고 피로감이 있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이 영화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고, 희망을 이야기 하며 힘을 돋우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극 중 김남길은 원자력 발전소 하청업체 직원 재혁 역을 맡았다. 재혁은 겉보기에 철없어 보여도 홀어머니 석 여사(김영애)와 형수 정혜(문정희), 조카 민재, 여자친구 연주(김주현)를 위해 원전 폭발이라는 사상 최악의 재난과 마주한다.

가족들은 멀리 대피하라고 하면서도, 이들을 지킬 사람은 나뿐이라는 생각에 무너진 판도라 상자 속으로 홀로 걸어간다. 이처럼 ‘판도라’는 진부한 가족애를 담고 있다. 장점이자, 단점이다.

“세상에 아쉽지 않은 영화가 어디 있겠어요. 박정우 감독님과 집이 가까워서 시나리오 쓸 때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지진, 원자력을 소재로 하지만 가족애에서 파생된 인간애를 담겠다고 하셨어요. ‘너 같으면 재난이 일어나 가족에게 사고가 닥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겠냐’라고 말하셨습니다. 결국 설득당했죠.”

재혁은 지금까지 김남길이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고민스러운 인물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촬영 들어가기 전 스태프들이 ‘네가 잘하면 성공하는 거고, 잘 안 하면 그저 그런 영화가 되는 거야’라고 말한 적 있어요. 당시에는 자신만만하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촬영을 할수록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와, 제작비 150억이고 뭐고 내팽겨 치고 싶었죠.”

어머니 석 여사와 재혁의 서사는 김남길 몫이었다. 편안한 농촌 총각 이미지를 위해 살을 찌웠다가 마지막 장면을 찍느라 이틀을 꼬박 굶었다. 밥이 넘어가지 않아 술도 마셔봤다.

“의연하게 갔다면 할리우드 액션 히어로물 같이 봤을 텐데, 죽음의 기로에 선 한 인간의 공포가 사실적으로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보면서도 울었던 부분인데, 영화를 보면서 같이 울었습니다.”

김남길은 2003년 MBC 31기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입문한 후 드라마 '선덕여왕'(2009), '나쁜남자'(2010), '상어'(2013),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 '무뢰한'(2014) 등에서 활약했다. 수많은 작품 가운데 ‘판도라’ 재혁은 그의 필모그래피에 획을 그을 ‘인생 캐릭터’로 꼽힌다.

“인생작이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 걸요. 그만큼 잘 봤다는 의미라면 고맙습니다. 저는 아직 배가 고파요, 이제 시작입니다. 차기작 ‘살인자의 기억법’ 나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 주세요. 아직은 싸울 때입니다.”

13년의 배우 인생에서 김남길은 지금이 가장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만 몰입하길 원했다.

“예전에는 야망이 있었어요. 연기가 ‘일’이라고 생각하고 욕심을 부렸던 것 같습니다. ‘판도라’ 개봉을 기다리면서 '조바심'이라는 게 생겼어요. 지금은 배우로서 계획을 묻는다면 ‘없다’고 합니다. 내가 마음 먹은 대로 안되는게 세상이더라고요. 연기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행복합니다. 편안한 인생이죠?”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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