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TPP에 속타는 국내 패션섬유업체

입력 2016-12-18 18:49   수정 2016-12-19 14:23

미국 무관세 수출 노리고 베트남에 2000억 투자했는데…

트럼프 "TPP 탈퇴" 선언에 베트남 생산기지 매력 떨어져
갑작스런 공장 이전 어려워



[ 이수빈 기자 ] 한세실업은 최근 베트남에 7개 공장을 추가로 지었다. 면방업체인 동일방직은 지난 4월 충남 서천에 있는 생산공장 문을 닫았다. 생산기지를 모두 베트남으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또 다른 면방업체 일신방직은 베트남 하노이 부근에 1억7000만달러(약 2004억1300만원)를 투자해 새 공장을 지었다.

◆투자 늘린 한국 섬유업체들

베트남에 투자를 늘리고 있는 국내 섬유업체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들이 투자를 확대한 가장 큰 이유인 환태평양자유무역협정(TPP)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TPP가 발효되면 베트남에서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 가는 제품에 관세가 붙지 않는다는 점을 노렸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TPP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베트남에 투자한 한 섬유업체 관계자는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수출할 때 붙는 17%의 관세를 계속 물면 수출이 예상만큼 늘지 않을 것”이라며 “새로 세운 공장의 가동률이 떨어질 게 확실해 답답하다”고 말했다.

베트남에 투자한 회사는 대부분 비슷한 처지다. 효성, 백산, 팬코 등도 베트남 공장을 증설했다. 효성은 연간 5만t을 생산하던 베트남 스판덱스 공장을 증설해 생산 규모를 8만t까지 늘렸다. 이 공장은 올해 가동을 시작했다. 7월에는 베트남 동나이성 산업단지에 나일론 원사 공장을 신설했다. 팬코는 1억달러(약 1140억원)를 들여 베트남 중부 꽝남성에 새 공장을 지었다. 유니클로 등 패션업체에서 생산을 늘려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만업체들 “미국으로 가겠다”

베트남 투자를 중단한 업체도 있다. 한 여성 정장 제조업체는 올해 계획했던 베트남 투자를 전면 취소했다. 미국 신발 브랜드에 납품하는 한 업체는 주문량이 10%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공장 자동화 생산설비를 갖췄지만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KOTRA 호찌민 무역관 관계자는 “외국 업체들도 베트남 투자를 줄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베트남의 11월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약 176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7% 감소했다.

대만 업체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베트남에 있는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겠다고 잇따라 발표했다. 대만 최대 의류업체인 에끌라텍스타일, 신발 제조업체인 포우첸과 팽타이엔터프라이즈 등이다. 대만 업체들은 기술력이 뛰어나고 가격 경쟁력이 있어 중국 업체 못지않게 국내 의류산업에 위협적인 존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 지역 등으로 판로 모색

업체들은 수출 지역 다각화와 미국 공장 건설 등을 통해 TPP 무산에 대비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투자를 늘려놔 갑자기 방향을 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영원무역 등 규모가 큰 업체는 미국에 공장을 짓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베트남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는 한 니트 제조업체 관계자는 “베트남·유럽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유럽으로의 수출이 관세 수혜가 있을 것 같아 유럽 지역 판로를 늘리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TPP는 당초 2017년 하반기 발효 예정이었다. 무관세 혜택을 보면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베트남 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공장에서 제품을 조달받으려는 패션업체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업체들은 기대했다.

또 누적원산지 규정으로 베트남산 섬유 원자재 수요도 증가할 것이라고 봤다. 누적원산지 규정이 적용되면 합성섬유로 만든 유아 의류와 브래지어를 제외한 의류 생산 전 공정에서 TPP 역내 원재료를 제품의 90% 이상 사용해야 최종 생산국 원산지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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