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러시아 충돌] 초강경 '통상전쟁 사령탑' 세운 트럼프…"한국, 방어논리라도 있는지"

입력 2016-12-23 18:44  

현장에서

무역대표부·상무부·노동부 통솔하는 '수퍼파워'
일자리에 초점 두고 통상·고용·제조업정책 마련
85만명 철강노조연합 "환영한다" 이례적 지지

이심기 뉴욕특파원



[ 뉴욕=이심기 기자 ] “무역정책 초점을 제조업 기반 강화와 양질의 일자리 확보에 두겠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변화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철강노조연합(USW)이 발표한 성명서 내용 중 일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백악관 직속의 국가무역위원회(NTC) 신설을 발표한 직후 나왔다. USW는 미국 내 85만명에 달하는 철강산업 관련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한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지지기반인 노동자단체가 공화당 소속 대통령 당선자의 정책을 환영하는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무역정책 초점, 일자리 지키기로

미국에서는 정부가 바뀌더라도 정부 조직을 뜯어고치거나 부처 명칭을 바꾸는 일이 극히 드물다. 백악관 직속으로 기존 국가안보위원회(NSC) 외에 같은 위상의 기구를 신설했으니 ‘빅 뉴스’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의 주요 교역국도 NTC의 조직 구성과 향후 역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워싱턴DC 주재 한국대사관은 물론 뉴욕 등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관련 정보를 수집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USW가 NTC 출범에 즉각 지지를 밝힌 이유는 명확하다. USW 성명서는 “지금까지 무역정책이 국내 생산과 일자리 창출을 촉진하기보다는 국가안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제조업은 희생되고, 생산기반은 파괴됐다”고 지적했다. “NTC가 이 같은 정책에 변화를 일으켜 국내 생산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기대했다. 인수위도 “NTC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동시에 해외로 일자리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KOTRA 관계자는 “제조업 경쟁력과 고용, 통상을 하나의 틀에서 묶어 세계화의 영향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들여다보겠다는 의도”라며 “한마디로 무역으로 인해 일자리가 파괴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기존 정부와 차별화한 구상

인수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통상과 제조업, 일자리정책을 연계하는 컨트롤타워를 백악관에 둔다는 발상에 대해 “기존 정부와 차별화하는 트럼프 당선자의 대담한 구상”이라고 평가했다.

NTC 신설에 따라 기존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현행 무역협정의 효과를 재검토하고, 상무부는 산업기반을 보호할 보복관세 등 구제조치를 결정하며, 노동부는 기존 무역정책으로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의 재교육을 맡게 될 전망이다.

이들 부처를 산하에 두는 NTC를 이끌 ‘대(對)중국 강경파’ 피터 나바로 위원장 내정자를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우선주의)’ 전략을 지휘할 ‘차르(황제)’라고 비유한 이유다. NTC와 나바로는 그만큼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는 의미다. 나바로의 지휘를 받는 ‘현장반장’ USTR 대표로는 철강회사 뉴코어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댄 디미코가 거론된다. 그는 누구보다 중국 철강회사의 불공정행위를 잘 알고 있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USW와 같은 강력한 정치적 영향을 미치는 노조단체 지지까지 받아 NTC는 더욱 힘을 받게 됐다. 통상 전문가 사이에서는 NTC가 중국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고율의 보복관세와 긴급수입제한조치까지 발동할 수 있는 ‘슈퍼 301조’를 부활시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국 통상대처 능력 시험대에

미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 관계자들은 한국 정부가 NTC의 파상공세에 제대로 대처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불안감을 보인다. A사 관계자는 “미국이 내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한국도 그냥 봐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B사 관계자는 “대통령 탄핵 결의 이후 관심이 차기 대선에 쏠린 상태에서 정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가 통상 관련 기능을 산업통상자원부로 몰아넣었지만 1차관이 무역정책 기능을, 2차관이 통상교섭 기능을 맡는 기형적인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를 한곳으로 모아 시너지효과를 내는 게 바람직하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쪼개 비효율적인 조직으로 만들어놨다는 것이다.

다음달 20일 트럼프 정부가 공식 출범하면 한국에 무역흑자 축소와 방위비 분담액 확대 등의 요구를 동시다발적으로 제기할 수 있다. 한 종합상사 관계자는 “대응할 조직 구성은 둘째 문제로 치더라도 제대로 된 방어논리를 준비 중인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트럼프 정부의 인프라(사회간접자본) 투자 확대에 대비한 시장조사를 산업부와 국토교통부가 제각각 하면서 부처 간 손발이 안 맞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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