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뷰] '암벽여제' 김자인 "'발레리나' 별명 더 좋아요"

입력 2017-01-04 09:11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김자인 인터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클라이밍 월드컵 25회 우승, 세계 여성 최초 리드-볼더링 부문 동시 석권, 한국 최초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 아시아선수권 대회 11연패.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김자인(30)의 긴 이력 중 일부다. 최고와 최초의 영광은 그에게 '암벽 여제'라는 멋진 별명을 만들어줬다. 하지만 언제나 그만큼을 기대하게 만드는 부담도 얹어줬다.

김 선수는 '여제'보다 '암벽 위의 발레리나'로 불리고 싶어한다. 최근 서울 압구정동 더자스클라이밍짐에서 김 선수를 만났다.

"'여제'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대신 '발레리나'는 제 등반 스타일만을 말하는 별명이죠. 성적이 아닌 저의 클라이밍 그대로를 조명하는 말이라서 더 좋아요."

'발레리나'는 김 선수의 노력을 함축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춤추는 듯한 움직임과 하이 스텝(다리를 위아래로 찢는 동작)은 그가 단신(153cm)이라는 불리함을 넘어서기 위한 방법이었다.

"키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죠. 그런데 오히려 한계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등반 실력이 늘었어요. 물론 지금도 힘든 부분은 많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해요."

이 같은 노력은 김 선수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는 클라이밍과 인생이 비슷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르는 것은 어려워도 내려오긴 쉽다.

"항상 1등을 할 수는 없어요. 1등을 하기 위해 클라이밍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성적에 연연하기보단 재미있게 즐기려고 노력해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요."

스포츠클라이밍은 2020년 열리는 도쿄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스포츠계에선 벌써부터 그의 메달을 염두에 두고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모든 대회가 그렇듯 당연한 메달은 없다. 그는 '챔피언'이 아닌 '김자인'으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주변에선 금메달을 쉽게 말하지만 사실 제 목표는 올림픽 출전권을 따는 것 그뿐이에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영광스러운 일이거든요. 메달을 못 땄다고 누군가 비난한다면 상처 받지 않을 자신은 없지만 부담은 갖지 않으려 해요."

3년 뒤면 33살, 선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다. 김 선수는 일단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는 선수 생활에 집중할 계획이다. 임신과 출산 문제도 선수 생활을 마친 이후에 고민하기로 결혼할 때부터 정해뒀다.

"은퇴 후엔 지도자가 돼 후배들을 육성하고 싶어요. 클라이밍 저변이 아직 좁지만 분명히 넓어지고 있고 올림픽을 기점으로 더 나아질 거라고 봐요. 그때 제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클라이밍을 알리는 것도 한국 대표주자인 그의 몫이다. 서울과 부산에선 도심 한복판 초고층 건물을 맨손으로 오르는 빌더링(Buildering·클라이밍 종목인 볼더링과 빌딩의 합성어)을 하기도 했다. 두 건물 높이를 합치면 214m에 달한다.

"클라이밍 홍보와 기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행사였어요. 10m에 100만원씩 기부금이 쌓였죠. 앞으로도 좋은 취지의 자리와 기회가 생긴다면 얼마든지 할 생각이에요. 특히 대중적 관심도 모을 수 있다면요."

어디든 기꺼이 오르겠다는 그가 겁이 없는건 아니다. 추락 직전의 순간은 여전히 무서워 한다. 17년간 산전수전을 겪어 속이 바위처럼 단단할 것 같지만 사실 매달린 채 어쩌지 못하고 운 적도 많을 만큼 여리다.

그럼에도 세계적으로 등반할 수 있는 클라이머가 드문 난이도 5.14a·b·c급의 자연바위들을 완등했다. '클라이머들의 꿈'인 5.14d(9a)급도 노리고 있다.

어쩌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올라야 하는 건 김 선수의 운명었는지도 모른다. 산악회에서 만나 결혼한 그의 부모는 두 아들에게 산을 가르쳐줬고, 막내딸에겐 '자인'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등반용 밧줄을 뜻하는 '자일'과 한국 클라이밍의 메카 북한산 '인수봉'의 앞글자를 딴 이름이다.

글=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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