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창파에 우리 배 없는 해운조선 강국(1)

입력 2017-01-04 15:54  



(편집자주-해운업계 원로 정남돈 선생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신청 이후 본지 기자에 보내온 글입니다. 정남돈 선생은 1990년 조양상선이 국내 최초로 세계일주항로를 개척할 때 개발팀장을 맡아 활약했고, 이후 세양선박 대표 등을 지냈습니다. 모바일한경은 앞으로 정 선생이 보내온 해운업 관련 기고를 연재할 계획입니다.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만경창파(萬頃蒼波)에 우리 배 없는 해운조선 강국(우리 배 띄워 뱃노래 부르자 해놓고)

1. 서언

왜구의 조선 침탈은 거의 500년을 고생시켰다. 아마도 이즈하라 흑수선, 밀수선의 노략질까지 합치면, 거의 1970년대 까지 정말 긴 세월을 한반도는 외세에 시달렸다. 이때 백성의 삶은 무기력한 왕국이 포기한 무정부가 맞을 것 같다. 그러나 외세의 침탈계산은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전투 무기분야 독립을 이룰 때까지 강국들의 해코지는 어연중 이어갈 것이다.

그 침탈의 무기, 바다 상선 배를 우리는 운전부터 늦게 배워 삼면의 바닷물이 우리를 고립시켜도 그 길을 이용할 줄 몰랐다. 외세가 막무가내 들어 와도, 약탈해도 우리는 쫓아 낼 힘이 없고 그럴 줄도 몰랐다. 결국 우리가 탈출해야 하고 숨어야 하고 우리가 피해를 당했다. 유일한 생존창구는 바다뿐인데 조정 관료는 죽어라고 내륙만 쳐다봤다. 바다에 나갈 자신도 없는 인문관료가 배 운전하는 기술을 터득할리 없지. 이씨 조선 왕조는 중국으로부터 성리학을 배워 왕권 강화와 백성의 예절에만 몰두했다. 미국에 사절로 간 조선 사관들이 미국 외교수장에게 왕을 대하듯 문 입구에서 큰절로 예절을 올렸다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무기 공학은 하는 듯 마는 듯. 제도 확립도 변변찮은 속에서 그나마 재래무기로 겨우 임진왜란 사태를 넘겼지만 충무공의 일인 다중 플레이로 이루었으니. 임은 전장에서 쓸쓸히 애쓰다 가셨다. 포르투갈 조총이 무역품목으로 동방에 섞여 왔다. 그 조총을 발전시킨 왜구가 우리 동학의병· 농민군 60만을 몰살시켜 버렸다.

힘없는 왕국이 그들을 불러들여 진압의 당부를 넘어, 국권을 유린·찬탈하게 둔 것이다. 그런 마당에 식민지를 만들지 않고 물러설 왜구가 아니지. 힘 있는 장정들은 논바닥에서 의병이란 이름으로 다 사살되고, 공동화된 한반도 땅은 연해주를 잃은 이후 바로 식민지로 전환됐다. 남은 백성은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 조선왕조는 허깨비 같은 국가 상징성에 국민은 죽도록 복종만으로 500년 왕조를 민초가 지키다 정작 백성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또 난리에 서로 흩어져야 하는 굴욕의 복종으로 망국의 왕조가 되어버렸다. 한 나라에 이렇게 노비가 많다니.

2. 육지 길 따라 북으로, 북으로

잃어버린 옥토, 아니 빼앗긴 토지, 김제 만경의 그 넓은 농토의 주인들은 일제에 농장을 다 뺏기고, 거둬들인 쌀은 북태산 같이 군산 앞바다 부두에 쌓여 줄줄이 늘어선 왜구 뱃길로 일본으로 수탈됐다. 봇짐으로 어린 자식과 식구를 데리고, 종자 주머니 챙겨 두만강을 넘어 도착한 곳. 살 수 있을까 아니면 몰살될지 백척간두로 몰린 농민들. 그곳은 우리 땅 옛 동간도 지금의 연변이었다. 먼저 서부 한반도, 왜구에 일찍이 수탈된 그 전라도 농민들이 연변에 우선 자리 잡았다. 그 다음 왜구가 경상도와 영동지역으로 수탈을 확대할 때 좀 늦게 북쪽으로 이동한 농민은, 북간도의 더 안쪽 헤이룽장성(흑룡강성) 쪽으로 더 들어가 자리 잡았다. 옛 고구려 땅이다. 그곳에 가 보면 연변(길림성)은 초기 전라도에서 이사 온 동포들, 하얼빈(흑룡강 성)은 경상도에서 온 분들이 많다고 한다. 가련한 민족의 디아스포라다.

이렇듯 북쪽으로 가보았지만 그곳에서 우리민족에 적합한 생활의 미래를 발견할 비전이 없었다. 땅 밑 수백만 톤의 석탄을 제외하고는. 영하 40~50도를 넘나드는 혹한의 땅이었다. 움막을 짓고 목숨 걸고 살아야했다. 은둔의 내륙 농토지였다. 그래도 약탈이나 조정의 세금쟁이 없이 살 수 있는 동네였다. 왜구 군인들이 추위에 얼어붙어 못가는 동네. 하얼빈, 그리고 연해주 영토는 광활해도 춥고 기온의 변덕이 심해 우리가 바라는 알곡식이 경작하기에는 어려운 땅 이었다. 그러나 한민족은 기어코 쌀농사를 개척했다.

그런데 요사이 중·러의 정치 및 경제의 변화와 함께 날씨도 풀려 점점 이곳이 상업중심지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 볼 때 동북지역과 서부 신장지역은 오지다. 알다시피 지난날 중앙아시아에서 연해주 한민족은 러시아에게 금수처럼 버린 취급을 받았는데, 또다시 연해주에서 그들과 미래를 같이 설계한다? 이는 적과의 동침과도 같다. 가난한 지금의 러시아 경제 질곡에 말려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오직 그들이 가진 에너지, 군사무기 개발과 빅딜 하는 것뿐이다. 그들이 우주 로켓 기술을 공유할 배짱을 가진 것도 아니다.

결국 그들은 원자재를 놓고 지금 흘러넘치는 천연가스 산업을 확대시켜 장기적인 고정고객을 만들겠다는 심산인데, 이 상황에서 누가 그런 이권을 넘겨주고 받으며 그 리스크를 짊어질 국가나 기업이나 개인이 있겠는가? 국가 간 상호 컨트롤 타워도 확립되지 않았는데 그들과 빅딜 할 게 에너지 외에는 수산물 정도밖에 없어 보인다. 지금은 넘치는 미국 가스마저 한국으로 수출돼 안달이 난 쪽은 러시아다. 정부 간 거래로 발전하려면 우리측에서는 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연해주나, 중국의 동북3성에서 우리가 절박하게 구할 것은 별로 없고 판매할 시장도 작다고 보는 것이 정답이다.

잘 알지 못하는 공산당들과 사업(심지어 합작도 대단히 위험)은 너무도 막연하다. 시간 낭비 말고 과감히 버리는 것이 좋다. 이 일이 진척이 없는 것은 그들 어느 누구도 권한을 가진 자가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빅딜을 시작하면 물량이 커질 것인데 그 때는 자연히 공산당 수뇌부한테까지 연결되니, 상업성이 정치성을 띄며 변질되면 소국이 손해 보기 마련이다. 지하자원 소유권이 정부에 있으니까. 그리고 그들 약속이 지켜지는지를 아무도 경험한 자가 없다. 지난 사할린 연안 석유시추 할당 계약도 우리 기업에 해놓고 모두 철회하고, 막강한 영국의 BP조차 계약을 해놓고 쩔쩔매다 포기하고 나오는 곳이 러시아다.

그들의 상업상 패턴과 기질을 잘 모르는데다 익숙하지도 않다. 그들은 돈을 받는 것은 민감해도 줄줄은 모르는 집단들이라 결국 협상을 하다보면 수장과 결판을 내어야만 한다. 서로 만나 정치적으로, 국가적으로 긴밀히 손잡아 협상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방식이 다른 것이다. 강국 수장과 정략적으로 틀어지면 그들이 가만있겠는가? 후환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상호 비밀도, 이권도 같이 가는 빅딜의 현장이니 우리 개인 소기업(단독투자 제외)이 그들과 제조업을 합작하는 것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 특히 수산물 가공 등에서 뭔가 개운치 못한 행태가 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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