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일본 통해 자본주의 이식된 한국…저신뢰 '나선형 사회'는 극복 과제"

입력 2017-01-05 17:31  

한국경제사 1·2
이영훈 지음 / 일조각 / 720·660쪽 / 각권 4만5000원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3000년 한국경제사 조명
고대-중세-근대 구분은 잘못…조직·공동체 변화 따라 시대 나눠
"서구근대문명 일본 통해 이식…현대 한국사회 형성돼"



두 권을 합하면 1390쪽에 달하는 대작이다.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65·사진)의 한국경제사 1·2는 누구보다 다산(多産)적인 저자의 연구 인생을 총결산하면서 현 단계 한국 경제사 연구의 축적을 과시하는 역작이다. 1권은 선사시대부터 19세기까지, 2권은 20세기부터 21세기 현재까지를 다루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시작하지만 강렬한 현재적 문제의식의 소산으로서 타성에 젖은 통념과 상식을 강타한다.

현대 한국인이 살고 있는 이 사회, 고도로 산업화된 시장경제는 어떻게 성립하게 된 것인가. 한국인은 언제 사적 자치의 주체로서 자유로운 개인으로 바뀌었는가. 저자는 한국의 역사학과 사회과학이 이런 존재론적 질문을 아예 하지 않거나 잘못 답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국사를 지배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일원론적 역사법칙과 고대·중세·근대의 3분법적인 시대 구분은 ‘잘못된 잣대’여서 한국사의 실상과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특히 조선 후기에 근대가 자생했다는 자본주의 맹아론과 내재적 발전론의 역사학은 자신의 삶을 가능케 하는 사회에 도덕적 비난만을 일삼는 국민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역사를 계급 간 갈등과 생산 양식 교체로 설명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과 달리 이 책은 구성원의 협력이 이뤄지는 조직과 단체 및 공동체의 변화에 주목해 새로운 시대 구분을 시도했다. 한국사를 선사시대의 원초적인 공동체로부터 세대가 분출하기 시작해 20세기 이후 개인이 성립하기까지 네 개의 시대로 구분했다. 제1시대는 기원전 3세기~기원후 7세기 취락의 시대, 제2시대는 8~14세기 정(丁)의 시대, 제3시대는 15~19세기 호(戶)의 시대다. 20세기부터 개인의 시대인 제4시대가 시작된다.

장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생산과 국가의 수취를 위한 조직의 구성이 변화하고 규모가 줄어들었다. 15세기 이후 조선시대에 진행된 ‘유교적 전환’ 과정에서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개별 인신을 차별적으로 지배하는 신분제 사회가 성립했다. 수도에 집주한 지배 공동체가 지방을 군사적으로 지배하는 제2시대의 공동체 사회가 해체됐으며 이 과정에서 노비가 인구의 40%까지 급증했다. 노비를 이용한 농장 경영이 번성했지만 17세기 이후에는 가족 노동을 이용한 소농 경영의 자립성이 강화돼 소농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성립했다. 18세기에 균안(均安)의 유교적 이상에 어울리는 안정을 누렸지만 19세기 이후 인구와 자원 간 균형이 깨져 위기를 맞이했다.

이 책의 핵심적 주장은 이런 전통문명에 서구에서 발원한 근대문명이 20세기 일본의 지배를 통해 이식됨으로써 현대 한국 사회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논점은 이런 ‘문명사의 대전환’은 외래 문명의 이식 과정이었지만 한국 고유의 전통문명이 ‘재편성’되고 ‘완성’되는 과정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부풀려진 역사’와 일반의 상식은 이 전환을 ‘노예 상태로의 전락’으로만 기억하려고 하지만, 민법에 의해 개인이 사권(私權)의 주체로 성립하고 토지에 대한 재산권이 보장되는 등 시장경제의 발달을 위한 제도가 갖춰졌던 시기였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급속한 공업화와 경제 성장이 이뤄진 근대적 전환의 시기였다.

일본이 주도한 변화였지만 소농사회로까지 발전한 전통문명의 기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변화였으며 한국인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지위 상승을 위해 무한경쟁하는 저(低)신뢰의 ‘나선형 사회’다. 조직이나 단체의 유대관계가 안정적이지 못해 가족과 친족에 의지할 뿐 고독하게 생활하는 개인들이 중앙집권적인 국가와 대면하는 사회의 유형이다. 신뢰가 낮기 때문에 이해당사자 간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국가에 의존하는 사회다.

이 책은 이런 한국 사회와 ‘한국형 시장경제’의 국가주의적인 특질이 역사적으로 매우 깊은 뿌리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조선왕조 국가의 차별적인 인신 지배가 촌락 내부에까지 깊숙이 미침에 따라 농촌사회는 분열과 갈등으로 협력하지 못했다. 강력한 역사적 경로의 의존성을 주장하는 이 책에 부제를 붙인다면 ‘한국 경제의 제도적 특질의 역사적 기원’이나 ‘한국형 시장경제의 역사적 기원’이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은 한국 경제의 각종 구성요소의 유래를 밝히는 ‘한국 경제의 계보학’이다.

3000년을 오르내린 시간여행을 마치면서 저자는 한국 경제사 공부가 왜 필요한지 말한다. “위기감이 깊을수록 차분히 지난 세월에 무슨 일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살펴야 한다. 역사로부터 한 시대를 이끌거나 망쳐버린 지혜와 어리석음을 배워야 한다.” 이 위기의 시기에 꼭 필요한 책이 때맞춰 나왔다.

김재호 <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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