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라이프]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 전설의 해운 영업맨…"회사 체질 바꿔 반드시 재도약"

입력 2017-01-10 20:05  

CEO 오피스

문전박대에도 끈질기게 설득, 삼성전자와 거래 '물꼬'

해운 현장 30년 베테랑
1983년 현대종합상사 입사 후 글로벌 상사맨 꿈꿨지만
해운업 관심 커져 현대상선 지원
1994년부터 해외 현장 챙겨
'끈끈한 해운 네트워크' 자산

다시 현대상선 구원투수 등판
취임하자마자 부산항 방문
현장 직원들 독려하며 "장기적 경쟁력에 집중" 주문
"전력투구해 어떻게든 이번엔 세계적 해운사로 키워낼 것"



[ 정지은 기자 ] 지난해 10월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현대상선 미주지역 전략회의에서는 ‘인내’가 화두로 떠올랐다. 한 직원이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에게 “사장님이 4년 전 한 말씀이 큰 동력이 됐다”며 이야기를 꺼낸 게 발단이 됐다. 당시 유 사장은 고꾸라진 회사 실적에 주눅 든 직원들에게 “인내를 갖고 기다려라. 반드시 기회는 온다. 다만 손 놓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다음을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나아갈 목표를 세워 준비하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게 유 사장의 지론이다. 그는 지난해 9월 현대상선 사장으로 복귀가 결정됐을 때도 이 말을 스스로 되새겼다.


상사맨·건설맨에서 해운 전문가로

유 사장은 해운업계에서 내로라하는 현장 전문가로 꼽힌다. 현대상선 해외영업부터 컨테이너사업까지 현장에서만 30여년을 몸담았다. 유 사장은 “처음부터 해운업계에서 일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해보니 가장 신나서 오래 한 일이 해운업”이라고 말했다.

유 사장은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78년 현대종합상사에 입사하면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의 학창시절 꿈은 국제무역전문가였다. 해외에서 국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상사맨이 됐다. 처음 5년여간은 특수섬유 영업을 담당하는 상사맨으로 살았다.

그가 해운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3년 현대건설로 자리를 옮겨 해상 수송분야를 맡으면서다. 유 사장은 “당시 자연스럽게 다른 화주나 선사들과 만나며 해운업계 지식을 쌓았다”며 “화주 입장이 돼본 게 훗날 해운업계에 와서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해운업에 관심이 커진 그는 1986년 현대상선으로의 이동을 자원했다. 이후 1994년부터 6년간 홍콩법인에서 근무하며 해외 현장에서 영업을 챙겼다. 학창시절부터 영어 실력이 특출났던 유 사장에겐 실력을 발휘할 기회였다. 현장 경험에 준비된 영어 실력이 더해지면서 그에 대한 대내외 신뢰도는 점차 커졌다. 유 사장이 직원에게 틈날 때마다 현장 경험과 미래 준비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해외영업 귀재로 활약

직원들은 유 사장의 강점으로 해외영업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꼽는다. 유 사장은 홍콩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4년간 영업을 도맡았다. 해외 영업경험이 많다 보니 지역별, 화주별 공략 포인트를 빠르게 찾아내는 노하우가 생겼다. 유 사장은 “당장 눈앞에 닥친 계약을 따내는 데만 급급해 하지 않고 화주들과 장기적인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공들였다”고 회상했다. 화주의 영업 환경과 발전 방향을 함께 고민하면서 ‘해결사’로도 통했다.

현대상선이 2002년 삼성전자와의 거래에 물꼬를 튼 데는 유 사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는 한국에서 슬로바키아 갈란타 지역 TV 공장으로 부품을 옮길 때 세계 1위 해운선사인 머스크(덴마크)를 주로 이용했다. 구주(유럽)본부장이던 유 사장은 거래를 제안하기 위해 삼성전자를 찾았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고민했다. 고민 끝에 삼성전자 측의 가장 골칫거리였던 정확한 수송과 비용 절감을 이룰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 계약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 일은 요즘도 직원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영업 성공 사례’로 회자된다.

쏟아지는 우려에 부담감도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좌절의 순간도 있었다. 현대상선 컨테이너사업부문장(전무)으로 활약하던 2009년 부산에 둔 자회사인 해영선박으로 발령이 난 게 첫 고비였다.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직급 자체는 승진했지만 주변에선 ‘잘나가던 유 전무가 좌천된 거 아니냐’는 시선이 많았다. 그는 “처음에는 이런 날벼락이 있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해영선박에서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시 1주일에 한두 번 부산항의 선기장(선장·기장)들과 만나 소줏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러면서 선기장의 애로사항이나 고민, 업계 돌아가는 얘기를 들었다. 유 사장은 “세계 해운사의 어떤 사장보다도 선기장들과 유대관계가 깊다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그가 어떤 경험이든 허투루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이런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다.

2012년 현대상선 사장이 됐을 때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그 해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고유가, 운임 회복 지연 등으로 세계 해운시장은 최악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현대상선의 영업손실 규모는 2012년 5096억원, 2013년 3626억원에 달했다. 유 사장은 외부 환경 변화에 따른 것이지만 실적 악화에 책임을 지고 2014년 3월 물러났다. 이 때문에 2014년 민간기업 출신으로는 처음 인천항만공사 사장을 지내고 지난해 다시 현대상선 사장이 됐을 때 그의 감회는 남달랐다. 유 사장은 “전력투구해서 이번에는 어떻게든 현대상선의 재도약을 이끌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쟁력 키우기에 올인

요즘 그의 최대 관심사는 현대상선을 세계적인 해운사로 키우는 일이다. 한진해운이 청산 수순에 들어가면서 유 사장은 현대상선을 국내 대표 해운사로 키워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유 사장은 취임 직후 임원을 불러 모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던 시절을 뒤로하고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에 집중하자”며 손을 잡았다. 취임 후 첫 공식일정으로 부산항을 방문해 현장 직원의 얘기를 들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영업조직을 전면 개편하는 등 회사 체질을 바꾸는 데도 집중하고 있다.

유 사장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한국 해운업의 성장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해운업계에서 쌓은 경험을 후배 직원들과 공유하며 ‘더 나은 한국 해운업’을 만들고 싶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 사장은 “목표 달성을 위해 열심히 발로 뛰겠다”고 강조했다. 올해 회사 슬로건 역시 현장을 열심히 챙기자는 취지에서 ‘발로 뛰자’로 정했다. 직원들 사이에선 “현장 전문가다운 발상”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유 사장은 최근 직원들과 일명 ‘소통 간담회’를 열고 이런 비전을 공유했다. 계속된 위기에 지친 직원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이런 소통의 기회를 자주 마련해 ‘직원과 소통하는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게 그의 또 다른 꿈이다.

■ 유창근 사장 프로필

△1953년 경북 경주 출생

△1976년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1978년 현대종합상사 입사

△1986년 현대상선 총무부서장(차장)

△1994년 현대상선 홍콩법인 상무

△2000년 현대상선 해외영업관리담당 상무

△2002년 현대상선 구주본부장(전무)

△2006년 현대상선 컨테이너사업부문장(전무)

△2009년 해영선박 대표이사 부사장

△2012년 현대상선 대표이사 사장

△2014년 인천항만공사 사장

△2016년 현대상선 대표이사 사장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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