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늘어나는 임금체불, 형사처벌 위주보다 관행 개선 선행돼야

입력 2017-01-17 17:36  

후진적 임금 체불, 해법은?

매년 1조원 넘는 체불임금…제도 비슷한 일본에 비해 10배
84%가 30인 미만 사업장…근로조건 해석차도 분쟁 증가 사유
노동개혁·근로기준법 개정·현장 관행 등 총체적 개혁 절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3일 임금 체불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지난해 임금 체불액은 1조4000억원대로 사상 최고치, 피해 근로자는 32만5000명을 웃돌았다. 정부 조치의 주요 내용은 근로감독을 철저히 하고 체불 사업주의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는 새로운 게 아니다. 추석이나 설을 앞두고 매년 되풀이된다. 계속되는 조치에도 임금 체불은 개선될 조짐이 없다. 2009년 금융위기 여파로 체불 임금액이 1조원을 넘어선 이후 매년 1조원 이상 생긴다. 우리와 제도가 비슷한 일본과 비교해도 10배가량 높다.

일본의 경제 규모나 경제활동인구 등을 감안하면 심각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일한 근로자에게 당연히 지급해야 할 임금을 주지 않는 후진국형 행태인 임금 체불은 왜 이렇게 증가하는지, 해법은 무엇인지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경영 여건이 악화되면 임금부터 체불하는 사업주를 엄하게 처벌해 예방 효과까지 거두자는 것이 기존의 정부 접근 방식이다. 근로기준법은 임금 체불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벌금이나 징역형 등 형사처벌을 받는 사업주는 10~20% 미만으로 알려져 있으나 구속자 수는 최근 3년간 연 20~30명 선에 이른다.

형사처벌로도 임금 체불이 줄어들지 않자 지연이자제 도입(2005년), 체불 사업주 명단 공개·신용 제재(2012년) 등의 제도가 도입됐다. 올해는 지난 4일부터 고용부 홈페이지와 지방노동청 게시판에 임금 체불 사업주 239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명단 공개자를 포함한 383명을 한국신용정보원에 통보했다. 이들은 은행 등의 신규 대출을 제한받는 등 신용 제재를 7년간 받을 수 있다. 신용 제재는 1년간 2000만원 이상 체불한 사업주로 범위가 명단 공개보다 더 넓다. 사업주를 심리적으로 압박해 체불 임금을 조기에 청산하도록 유도하거나 임금 체불 자체를 예방하자는 게 도입 취지다. 체불 기간에는 지연이자를 연 20% 물도록 하고 있다. 체불 사업주가 조기에 청산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도 있다. 체불 사업주가 안 준 임금을 주고, 해당 근로자가 사업주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형사처벌을 면해주는 ‘반의사불벌죄’ 규정이 2005년 도입됐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는 현장

각종 대책에도 임금 체불이 줄어들지 않자 노동계 등에선 다양한 해법을 내놓고 있다. 현재 1200여명인 근로감독관 수를 획기적으로 늘려 현장감독을 강화하고 적발된 사업주는 강력히 처벌하자는 것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매년 나오는 정부 대책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처벌 강화만이 능사가 아님은 각종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먼저 산업현장에서는 기본적인 서면 근로계약 관행조차 정착되지 않고 있다. 임금이나 근로시간, 휴가 등의 근로조건은 반드시 서면으로 계약서를 쓰도록 근로기준법은 규정하고 있다. 위반 시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영세 사업장뿐만 아니라 상당수 사업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런 탓에 시간당 통상임금이나 체불 액수를 정확히 계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난해 하반기 고용부가 4500개 사업장을 점검한 결과 무려 2717개소(67.8%)가 근로조건 서면 명시 의무를 위반했다. 백화점·아울렛 등 대형 유통 업종이나 커피전문점 같은 프랜차이즈 업종 등 취약한 업체에 대한 점검이라지만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근로계약이 명확하지 않은데도 통상임금 등 임금 기준은 매우 복잡하다. 근로기준법이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은 탓이다. 대법원이 2013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도록 판결한 이후 임금에 대한 해석 기준은 더욱 혼란스럽지만 아직 근로기준법은 개정되지 않고 있다. 노동개혁을 둘러싼 논란과 노동계 등의 반발을 의식한 나머지 국회가 여전히 방치하고 있는 탓이다. 그러다 보니 임금 체불을 둘러싼 노사 갈등은 더욱 증폭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2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체불 사유의 상당수는 경영난 외에도 ‘약정 근로조건에 대한 근로자의 해석 차이’로 나타났다. ‘떼어먹으려고 한다’고 근로자가 의심하는 상황에선 갈등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임금 체불은 대부분 영세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고용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임금 체불 사업장의 84%가량이 30인 미만 사업장이었다. 제조업·건설업 외에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등 저소득 근로자가 많은 곳에서 빈번하다. 건설업은 전체 종사자의 7%가 임금 체불을 겪었는데 이는 전체 업종 평균 1.9%의 세 배에 달한다.

도소매·음식숙박업에 체불 심해

외국은 관행이나 법제에서 우리와 차이가 크다. 일반적으로 임금 체불에 대해서는 벌금 등 경제적 제재를 가한다. 우리처럼 구속 수사나 징역형에 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본은 노동기준법(우리의 근로기준법에 해당)상 체불 사업주에게 30만엔 이하의 벌금을 매긴다. ‘사업주가 밀린 임금을 주기 위해 뛰어다니게 해야 함에도 구치소에 가둬두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근로감독관이 임금 체불을 진정이나 고소, 또는 인지사건으로 수사해 사업주를 처벌하더라도 체불 임금을 받으려면 민사소송을 거쳐야 한다. 체불 임금을 강제로 집행하려면 소액사건심판(올해부터 3000만원 이하로 증액)이라도 거쳐야 한다. 도산이나 폐업으로 임금을 못 받았다면 아무리 처벌해도 사업주의 잔여재산이 없을 경우 실효성이 없다. 임금채권보장기금을 통해 체불된 임금의 일부를 대신 받거나 생계비 대출을 받아도 체불 임금 전액을 보호받는 데는 한계가 있다.

노사·국민의식부터 바뀌어야

결국 임금 체불 문제를 해결하려면 처벌 강화라는 ‘전가의 보도’보다 원인을 감안한 근본 처방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체불 임금이 궁극적으로 지급됨으로써 근로자의 임금청구권을 보장하고 생활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의로 재산을 감추고 임금을 체불하거나, 악의적으로 임금을 상습 체불하는 사업주에 대해서는 엄정한 처벌이 필요하다. 하지만 근로계약서 작성 등 현장의 관행을 바꾸고 이에 대한 노사와 국민 의식도 개선돼야 한다. 체불 근로자에게 생계비를 지원하는 것과 함께 영세 사업주에게도 금융 지원 등의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

최종석 노동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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