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꿈꾸듯 아련하게 키스하듯 강렬한 크로아티아

입력 2017-01-22 17:16   수정 2017-01-22 17:18

크로아티아 100배 즐기기

유럽인도 가고 싶어 하는 크로아티아서 꼭 해야할 일

매콤한 쿨렌 맛보기…행운 부르는 동상 엄지발가락 만지기
유럽 최초의 시민공원 막시미르 산책하기

로마 황제가 노년을 보낸 스플리트는
느긋한 여행자들의 천국

스플리트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황궁이 있다.
그는 고향인 스플리트에 바다를
향한 궁전을 짓고, 거기서 아픈 무릎을
치료하며 노년을 보내는 소박한 꿈을 꾸었다.




크로아티아를 처음 찾았을 때 자그레브 공항에서 내려 시내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고 십여분이 채 지나지 않아 왜 유럽인들이 크로아티아를 그렇게 여행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래된 골목을 따라 늘어서 있는 붉은 지붕, 그리고 지붕들 위로 쏟아져 내리는 눈부신 햇살. 사람들은 온화한 표정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고 건물마다 자리한 고풍스러운 카페에서는 수많은 여행자가 느린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는 많은 사람이 두브로브니크로 향한다. 하지만 수도 자그레브와 제2의 도시 스플리트 역시 두브로브니크 못지않은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간직하고 있다. 달콤한 크로아티아 와인을 즐기며 이들 두 도시를 느긋하게 즐겨보자.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간 낭만도시 자그레브

크로아티아는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와 마주하고 있다. 북쪽으로 헝가리, 동쪽으로 세르비아, 서쪽으로 슬로베니아 그리고 남쪽으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국경을 접한다. 유럽인들에게는 평생 한번은 꼭 가고 싶은 곳으로 꼽히는데,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같은 부호들, 톰 크루즈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찾는 휴가지이기도 하다.

크로아티아의 수도인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 여행의 출발점이다. 크로아티아를 찾은 여행자들은 자그레브를 지나쳐 곧장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는 두브로브니크로 향하지만 크로아티아 인구의 4분의 1이 모여 사는 자그레브는 꼭 한 번 들러봄 직한 도시다.

자그레브가 유럽의 지도에 처음 등장한 때는 1094년. 주교구가 되면서부터다. 이후 13세기 중엽에 몽골제국의 침입을 대대적으로 받는데 이때 도시 대부분이 요새화된다. 지금도 자그레브에는 당시 몽골제국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성벽과 탑이 다수 남아 있다. 이후에도 자그레브는 오스만튀르크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침략을 받았지만 함락되지 않았다.

자그레브를 가장 효율적으로 여행하는 방법은 걷는 것이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반 요셉 옐라치치 광장을 중심으로 볼거리가 집중돼 있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현지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트램을 타고 도시를 훑어보는 경험도 색다르다.

중세도시 분위기를 풍기는 올드타운

자그레브는 구시가지에 해당하는 올드타운과 상업지구인 로워타운,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선 신도시로 나뉘는데, 여행자들이 주로 머물고 돌아보는 곳은 중세도시 분위기를 풍기는 올드타운이다. 옐라치치 광장을 비롯해 성 슈테판 성당과 로트르차크 탑 등이 주요 관광명소다.

중앙광장이라고 불리는 옐라치치 광장은 이곳에 자리한 분수의 이름을 딴 만두세바크로 시작해 여러 차례 바뀌어 왔다. 1848년에는 당시 통치자인 옐라치치 광장으로 불렸지만 2차 대전 이후에는 공화국 광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반 요셉 옐라치치의 동상을 제거하기도 했다. 반 옐라치치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침략을 물리친 크로아티아의 국민영웅이다. 광장은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으로부터 독립해 사회주의 체제를 포기한 이후 예전 이름을 되찾아 지금처럼 불리고 있다.

여느 유럽의 도시가 그러하듯, 광장 주변은 평화롭고 여유로우며 낭만이 넘친다. 광장 앞으로 덜컹거리는 트램이 지나가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페달을 밟으며 유유히 지나쳐간다. 광장 주변으로는 오스트리아의 그라츠처럼 고풍스러운 건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건물마다 카페와 레스토랑 꽃집, 서점들이 들어서 있다. 사람들은

스한 햇볕 아래서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고 있다. 이른 오후부터 와인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누는 풍경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각별한 와인 사랑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카페에서 커피만큼이나 즐겨 마시는 것이 와인이다. 크로아티아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유럽에선 꽤 유명한 와인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크로아티아에는 다양한 종류의 와인이 생산된다. 내륙에서는 그라슈비나와 북서부의 이스트라 지역에서 다양한 와인이 생산되는데 특히 1710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트라미나츠 와인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대관식에 올려질 정도로 그 품질을 인정받는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카페에 앉아 크로아티아 와인을 맛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듯.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와인을 마실 때 쿨렌이라는 소시지를 곁들인다. 흑돈의 살을 다져 파프리카와 마늘을 버무려 염장한 뒤 수개월간 건조해 만든 것인데, 약간 매운맛이 있어 우리 입에도 잘 맞는다.

와인 한 잔으로 목을 축였다면 본격적으로 자그레브 여행에 나서 보자. 중앙광장에서 야트막한 언덕길을 따라가면 고르니그라드에 닿는다. S자 모양의 길 양편으로는 중세의 기품을 느낄 수 있는 건축물들이 서 있다. 길이 끝날 즈음 고개를 돌리면 높다란 두 개의 첨탑이 눈에 들어온다. 일명 ‘자그레브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성 슈테판 성당이다. 구시가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성 슈테판 성당은 자그레브 시민들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가톨릭 신앙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원래의 성당은 13세기 타르타르족이 침입했을 때 파괴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3세기 후반에 지어진 뒤 수많은 개보수 공사를 거친 것이다. 성당 앞에는 금빛 찬란한 성모 마리아상이 서 있는데 수십미터는 족히 되는 기둥 위에 금색으로 칠해진 마리아상은 유럽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대성당에는 보물급 유물이 10개 이상 있어 ‘크로아티아의 보물’이라고도 불린다.

성당 입구로 들어서면 무려 1000년 전 성당을 지을 당시의 상황을 기록해둔 크로아티아의 고대 언어가 아직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성당의 긴 역사를 말해준다. 제단 앞바닥에는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스테피낙 대주교의 시신이 안치돼 있다. 성당 뒤편은 전통시장이다. 이곳 역시 자그레브를 대표하는 관광명소기도 한데 오전에만 열린다는 것을 알아두자.

푸른 바다를 낀 항구도시 스플리트

아주 이색적인 교회 지붕으로 유명한 성 마가 교회도 자그레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크로아티아와 달마티아, 사보니아, 자그레브 시의 문장이 그려진 지붕 타일이 독특하다.

이 지붕은 1800년대 후반에 제작됐다. 성 마가교회는 1200년대에 이미 문헌에 언급돼 있을 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데, 교회는 수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로마네스크식 창문과 이반 파를러가 디자인한 고딕식 출입구만은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정문에 있는 벽감들에는 예수, 마리아, 성 마가를 비롯한 열두 제자의 조각상이 들어 있다. 내부에는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조각가 이반 메스트로비치가 제작한 동상들이 서 있다. 요조 클리야고비치의 프레스코화도 남아 있다.

막시미르 공원에도 꼭 들러보는 게 좋다. 1794년 자그레브 주교가 당시 산림지이면서 사냥터로 쓰던 떡갈나무 숲을 공원으로 바꿔 조성할 것을 결정한 이후 시민에게 전면 개방했다. 유럽 최초의 시민 공원이기도 하다.

자그레브 남쪽에 자리한 스플리트는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다. 아드리아의 푸른 바다를 낀 항구도시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는 옛 달마티아의 땅으로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상당수 건물이 1700년 이상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살아남은 유적들이다.

거대한 황궁은 마을로 변해

스플리트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황궁이 있다. 이 황궁은 4세기의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10년 넘게 은거한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스플리트 근처에서 천민으로 태어나 로마 황제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황제가 난립하던 시기에 20년간(서기 284~305) 로마제국을 안정적으로 통치한 그는 스스로 제위에서 물러나 은퇴한 최초의 로마 황제기도 했다. 그는 고향인 스플리트에 바다를 향한 궁전을 짓고, 거기서 아픈 무릎을 치료하며 노년을 보내는 소박한 꿈을 꾸었다.

궁은 13만2231㎡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 궁 주변의 산책로를 따라 거닐다 보면 바다를 향해 있는 ‘마리팀(바다)’이란 문이 하나 보이는데, 이곳을 통해 궁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마리팀은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로 늘 북적이는데 상인들과 흥정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궁으로 들어갈수록 음식 냄새가 짙어진다는 점. 이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황궁이 실제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과거 황제의 거처였던 궁은 현재 3000여명의 주민이 살아가는 마을로 변했다. 궁전의 창문에는 누군가 살고 있는 것인지 작은 나무창이 열려 있고, 티셔츠와 수건들이 널려 있기도 하다. 황궁 내부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곳곳에 작은 골목길이 만들어지고, 궁전을 중심으로 스플리트의 중심 시가가 발전한 터라 외곽 부분에는 궁전과 외부의 경계가 모호하다. 아담한 레스토랑과 분위기 좋은 바, 명품숍과 약국까지 궁전 내부에 있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외부 광장으로 연결되고, 바다로 이어진다.

유적지로 유명한 명승지 트로기르

금문이라 불리는 북문으로 나가면 10세기 크로아티아의 그레고리 닌 주교가 성경을 들고 있는 어마어마한 동상이 서 있다. 그는 로마 교황에게 크로아티아어로 미사와 설교를 해달라고 설득한 사람이었다. 그의 오른발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전설이 있다는데, 그래서 주교의 엄지발가락은 금빛으로 반질반질하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궁을 나와 스플리트 바닷가로 향한다. 바닷가에는 근사한 카페들이 많다. 스플리트로 여행을 온 대부분의 여행자는 이곳에서 느긋한 시간을 즐긴다. 모래사장에서 비치타월을 갈고 태닝을 즐기는 이들도 있고 푸른 물빛 속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도 많다.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와인잔을 기울이며 느긋한 시간을 즐기고 있는 여행자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생에 뭐 대수로울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플리트에서 가까운 트로기르는 크로아티아의 역사 유적지로 중세 건물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13세기에 유행했던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을 감상할 수 있다. 1240년 지어진 성 로렌스 성당은 로마 양식의 완결편이라고까지 불린다. 유네스코가 1997년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킨 것도 당연한 일. 그래서 트로기르를 ‘달마티아의 작은 보석’이라 부르기도 한다. 트로기르는 해안가의 산책로도 멋진 곳이다.

스플리트의 동북쪽에 있는 살로나 유적지는 휴식을 취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고대 유적지가 삼엄한 경계로 출입이 종종 통제되는 데 비해 이곳은 주민과 함께한다. 유적지 바로 옆에서 농민들이 재배하는 감자밭과 포도밭을 발견할 수 있다. 유적지가 주민의 일상에 녹아 있는 것이다.

두브로브니크(크로아티아)=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

여행 정보

스플리트 가기 전에 플리트비체 들러보세요

인천국제공항에서 크로아티아로 바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프랑크루프트로 간 뒤 자그레브로 가야 한다. 루프트한자항공(lufthansa.com)을 이용하면 편하다. 크로아티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크로아티아 관광청(croatia.hr)을 참조하자. 크로아티아는 지중해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번갈아 나타나 여름에는 덥고 건조하며 겨울에는 따뜻한 편. 스플리트로 가기 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은 꼭 방문해보길 권한다. 깊은 골짜기를 따라 16개의 호수가 계단식으로 자리하는데 호수와 호수가 폭포로 연결돼 있다. 크로아티아는 물론 유럽에서도 그 명성이 알려져 1979년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나무로 만들어진 산책로는 호수를 빙 돌아가거나, 가로지르거나, 폭포 아래를 지나거나 시냇물 위를 건넌다. 산책로를 따르다 보면 물속에 고사목과 이름 모를 들꽃, 잔잔한 물살을 일으키며 유유히 헤엄치는 청둥오리 등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호수의 물은 투명하면서도 초록과 푸른빛이 도는데 호수 바닥에 쌓인 탄산석회 때문이라고 한다. 프리트비체의 신비로운 물빛을 보고 있노라면 유럽인이 플리트비체를 요정이 사는 곳이라고 믿었던 이유가 짐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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