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버스 대표, '버스기사 車할부금' 30억원 들고 잠적

입력 2017-01-24 17:37   수정 2017-01-24 17:57

운수업체 명의로 버스 구입하는 지입차 관행 악용
버스기사 30여명 "매달 냈던 할부금 전액 날려"



서울의 한 전세버스 운영업체 대표가 30억원가량을 들고 잠적했다. 소속 버스기사들이 매달 내는 전세버스 할부금을 중간에서 가로챈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버스 업계의 오랜 지입차(持入車, 운수 회사 명의로 등록된 개인 소유의 차량) 관행의 허점을 악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달 버스 할부금 모두 날릴 판”

24일 전세버스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강동구의 한 전세버스 업체 H대표는 관광버스 기사들이 매달 내는 버스 할부금을 들고 지난 11일 사라졌다. 피해자는 30명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전해졌다. H대표는 ‘죽을 죄를 지었다’ ‘회사 관계자들이 협의해서 처리해달라’는 메모만 남겼다.

그는 지입차 관행의 허점을 활용해 작정하고 사기를 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는 ‘명의이용 금지’ 조항이 있어 대형버스는 법인 명의로만 등록할 수 있다. 이 같은 규정을 비껴가기 위해 업계에서는 버스기사가 차량을 구매한 뒤 업체에 등록하는 편법을 썼다. 회사가 산 차량의 할부금을 법인통장을 통해 버스기사가 대신 납입하도록 하는 관행도 불법적으로 이뤄져왔다. 버스 기사는 회사에 지입료를 내는 대신 운행 실적에 따라 수익금을 가져간다.

H대표는 운전기사가 납부하는 할부금을 중간에서 빼돌리는 데 그치지 않았다. 매달 할부금 넣고 6개월분 정도 남았을 때 일괄납부한 뒤 버스를 담보로 억대 대출을 받았다. 리스차량에 회사 번호판을 부착해 버스기사들을 속이기도 했다.

버스기사들은 이제껏 차곡차곡 냈던 할부금을 모두 날리게 될 처지에 놓였다. 기름값조차 없어 관광버스들은 차고지에 그대로 방치돼있다. 당장 일거리는 커녕 버스 소유권도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버스 기사들이 계약할 때 할부금 다 내면 버스기사 소유가 된다고 적어놨더라도 지입차 계약 자체가 불법이라서 구제받기 힘들다”고 전했다.

◆“지입버스 사고 가능성도 높아”

지입 전세버스는 1993년 전세버스 등록방식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면서 큰 폭으로 늘어났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세버스는 1993년 말 7481대(305개 사업체)에서 2014년 말 4만4452대(1757개 업체)로 급증했다. 이중 전세버스 중 지입차량은 2만4503대(55%)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세버스 업체가 난립하면서 영세 업체가 늘어났고 버스기사에게 지입차를 요구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지입차는 사고에도 취약하다. 서류상으로만 업체에 소속돼 있다 보니 운전자 관리나 차량 점검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국토부 국정감사에 따르면 1대당 안전관련 지출이 직영업체는 8만원대인데 비해 지입업체는 5만원대에 불과했다. 중대형 사고건수를 비교하면 직영업체는 2012년 20건에서 2013년 11건으로 감소했지만 지입업체는 2012년 69건에서 2013년 71건으로 증가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강원도의 한 조각공원휴게소에서 45인승 관광버스 운전자 서모씨(57)는 무면허로 운전하다 경찰의 행락철 특별 단속에 적발되기도 했다. 조사 결과 서씨는 그해 3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으나 행락철 관광 수요로 버스가 모자라자 지입 차 운행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부는 이 같은 지입차 운행을 막기 위해 2014년 전세버스총량제를 도입하고 버스 공급·등록을 제한하고 있다. 지입 차 적발시 사업자 취소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적발은 쉽지 않다. 국토부 관계자는 “업체나 버스기사들이 지입 차 운행을 숨기고 있다”며 “일회성 계약도 많다 보니 전체 지입 차 규모를 파악하는 것조차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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