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고독한 미식가

입력 2017-02-12 17:36   수정 2017-02-13 11:17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혼자 먹는 밥(혼밥)’ 열풍을 몰고온 일본 만화 《고독한 미식가》. 주인공인 잡화수입상 이노가시라 고로는 도쿄의 오래된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혼밥을 즐긴다.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며 결혼도 하지 않고 매장도 운영하지 않는 그에게 가장 특별한 즐거움은 ‘먹는 것’이다. 그렇다고 고급 레스토랑이나 소문난 식당을 찾아다니는 건 아니다. 아담하고 정겨운 집에서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혼자만의 행복에 젖어든다.

음식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대부분 요리사나 레시피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 작품은 먹는 사람의 관점과 미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메뉴도 특별하지 않다. 야근 중에 사먹는 편의점 도시락, 입원해서 먹는 병원밥까지 포함된다. 맛있다는 표현을 할 때도 밍밍할 정도로 담백하다. 눈이 휘둥그레진다든지 하는 오버 액션이 전혀 없다.

드라마로 인기를 끈 요인도 다르지 않다. 그냥 일 끝나고 배가 고파서 식당을 찾아 들어가 주문하고 맛있게 먹은 다음, 나오면서 ‘아재(아저씨) 유머’ 같은 말 몇 마디를 남기고 떠나는 게 전부다. 셰프의 기상천외한 요리비법이나 식당 주인의 눈물겨운 사연을 곁들일 법도 하지만 그건 관심 밖이다. 이 단조로운 스토리가 한·중·일 시청자들을 끌어당긴 인기 비결이다. 과잉 이미지와 과장된 화법 대신 절제된 미식의 아름다움이 돋보인 것이다.

이 작품을 그린 만화거장 다니구치 지로(谷口 ジロ-)가 그저께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고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 데뷔한 그는 작품 주인공처럼 혼밥을 즐기기도 했지만 남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일본 문호 나쓰메 소세키 얘기를 그린 《도련님의 시대》로 일본 최고 문화상을 받은 데 이어 프랑스 정부의 슈발리에 훈장까지 받았다. 천국에서 ‘먹는 사람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음식을 즐길 수 없다면 최고의 요리라 한들 무슨 소용이오’라고 읊조릴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도 혼밥이 흔해졌다. 혼술(혼자 마시는 술)에 혼여(혼자 하는 여행)까지 즐기는 ‘혼족(나홀로족)’ 시대가 됐다. 이들을 위한 개별 테이블과 1인용 식당도 늘고 있다. 아직은 햄버거나 분식, 중식이 대부분이지만 메뉴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곧 스테이크와 직화구이 고기가 1인 메뉴로 등장할 모양이다. 일본에선 이미 일상화된 모습이다. 혼자이지만 편하고 여유있게 즐기는 음식. 이제 혼밥은 더 이상 ‘쓸쓸하고 목이 메는’ 밥이 아니요, 옛날처럼 ‘먹어도 우울하고 배 고픈’ 밥이 아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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