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 조진웅 "평범한 사람의 잔혹 본능, 죽을 각오로 연기"

입력 2017-03-02 17:44   수정 2017-03-03 06:41

영화 '해빙'서 불안에 떠는 의사역 배우 조진웅

살인에 대한 의심·공포 다뤄
"윤세아와 격렬한 러브 신, 제게도 멜로 DNA 있더군요"



[ 유재혁 기자 ] 지난해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 정의로운 형사 역으로 스타가 된 조진웅(41)은 선 굵은 남자 역으로 각인된 연기자다. 그가 지난 1일 개봉한 스릴러 ‘해빙’에서 한 노인의 살인 고백을 듣고 불안에 떠는 의사 역을 연기했다. ‘해빙’은 첫날 38만6000여명을 동원해 흥행 1위에 올랐다.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해빙’은 관점과 시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내용이 완전히 달라지니까요. 해석하는 재미가 있어요. 연기의 핵심은 평범한 사람이 자신도 몰랐던 잔혹한 본능과 마주치는 순간을 보여주는 거였어요. 장면에 따라 계산된 연기를 해보니 밋밋해지더군요(이성적이니까). 그래서 계산하지 않고 제 자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는 극한 체험을 했습니다.”

극 중 주요 인물들의 내면에는 저마다 짐승이 들어 있다. 정육점 주인 부자(父子)는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고, 의사 자신도 스스로를 잘 모른다. 모든 의문은 마지막 장면에서야 풀린다.

“내면 속으로 푹 빠져 보니 의도하지 못한 즉흥성이 나왔어요. 살인공포에 짓눌린 장면에서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어요. 이런 식의 작업은 연극 무대 이후 참 오랜만에 해봤습니다. 배우로서는 신명나는 경험이었죠.”

그는 살인공포에 떠는 의사 역을 위해 평소 95㎏인 몸무게를 78㎏까지 뺐다가 지금은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 모든 노력은 오로지 진정성 있는 연기를 위해서였다. 이는 ‘시그널’에서 이재한 형사 역으로 찬사를 받은 비결이기도 했다. 이재한 형사는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갑니다”라는 대사로 시청자들을 울렸다.

“실제 미제 사건을 다룬 ‘시그널’이 방영되는 도중에 유가족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자기 동생의 실화를 드라마화해 처음에는 불쾌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사건을 진심으로 다루니까 유가족 입장에서 힘이 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편지가 소개된 뒤 현장에서는 5분간 정적이 흘렀어요. 제대로 연기해야 할 이유가 생긴 거지요. 진심은 누구에게나 통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전처 역 윤세아와 멜로 연기를 펼쳤다. 키스 신의 강도가 제법 높다고 하자 그의 얼굴이 빨개졌다.

“저도 영화를 보고 나서 ‘저렇게까지 격렬했었나’ 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촬영 때는 상황에 몰입하다 보니 윤세아 씨나 저나 편안하게 연기했거든요. 저한테는 ‘멜로 DNA’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연기로 도전 과제가 생겼어요. 제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가 될 수는 없겠지만 ‘오셀로’ 역할은 하고 싶거든요, 하하.”

연극 무대에서 기량을 닦은 그는 2004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로 데뷔한 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의 조연으로 충무로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후 ‘명량’(2014)의 왜장, ‘끝까지 간다’(2014)의 악질 형사, ‘아가씨’(2016)의 변태 후견인 등 다양한 배역으로 입지를 넓혀 오다 상업영화 ‘사냥’(2016)에서 단독 주연으로 성장했다.

“저는 작업이 잘 안 풀리면 ‘오늘 여기서 죽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합니다. 잘할 때까지 하지 않는다면 연기를 그만둬야죠. 저는 장면마다 제 생애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합니다. 그런 자세 없이 관객을 만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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