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시제도, 없앨 때 됐다

입력 2017-03-14 17:37  

"다양성 결여된 공무원 채용제도
기수문화로 묶여 규제특권 강화
공무원 고용에 탄력성 부여해야"

하태형 <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



우리말 가운데 영어로 번역이 불가능한 단어들이 꽤 있다. 흔히 쓰는 말 가운데 ‘선배’ 또는 ‘후배’란 단어 또한 정확히 그 의미를 영어로 전달하기는 불가능한 단어에 속한다. 영어로 굳이 표현하자면 ‘시니어(senior)’ 또는 ‘주니어(junior)’ 정도일 텐데 그 또한 ‘선배’ 또는 ‘후배’가 주는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 정착된 중요한 문화 가운데 하나인 소위 ‘기수문화(期數文化)’가 미국에는 없기 때문이다.

어느 문화든 전통이 가미돼 있으며 그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듯이 우리 기수문화도 나름의 장점이 많이 있다. 예컨대 기수로 뭉쳐진 조직은 주어진 목표를 위해 움직일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조직 내부 갈등 또한 선임자의 말 한마디, 이어지는 회식에서의 술 한잔이면 깨끗하게 봉합돼 버린다. 그러나 장점만 있을까.

화제를 잠시 돌려보자. 차기 정부의 당면과제가 경제활성화란 것은 어느 대선 캠프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번 대통령 탄핵사태 및 매주 이어지는 촛불시위의 근원에는 악화돼가는 경제상황에 대한 일반국민의 불만이 깔려 있다는 점을 직시하면 더욱 그렇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을까. 그 방법 중 하나가, 모든 사람이 지적하지만 또한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규제 완화’란 지난(至難)한 명제다.

그러면 규제완화는 왜 그토록 어려울까. 규제를 풀어야 할 주체인 공무원으로서는 규제를 완화함에 따른 책임만 있지 보상이 없다는 것이요, 두 번째는 공무원 조직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기수문화로 묶여져서 5년마다 한시적으로 들어서는 정부에 겉으로만 고개를 숙일 뿐 자신들의 가장 큰 무기인 규제란 특권을 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를 어떻게 개혁해야 할까. 필자의 의견으로는 공무원 채용을 행정고시니 외무고시니 하는 기수문화로 묶는 제도를 없애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먼저 생각할 점은 행정고시나 외무고시가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전문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나 하는 점이다. 최근 한국 최고 대기업인 삼성그룹은 그룹 자체를 해체하겠다는 충격적 발표를 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내년부터는 개별 계열사별로 필요한 인재들은 각사의 인사정책에 따라 채용하게 된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인사정책 또한 이렇게 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다. 예컨대 행정자치부 공무원과 기획재정부 공무원이 왜 같은 시험, 같은 잣대로 선발돼야 하는가. 선진국인 미국에는 우리나라 인사혁신처에 해당하는 인사관리처(OPM)가 있지만 이 조직은 각 부처가 시행할 채용시험 및 채용에 관한 기준만 제시할 뿐 인재채용은 부처별로 독자적 재량을 가지고 뽑는다. 뽑은 인력들의 승진 및 급여 또한 인사관리처가 기준만 제시할 뿐 각 부처가 완전한 독자적 권한을 가지고 집행한다.

영국은 어떤가. 영국은 한술 더 떠서 인력 채용 또한 획일적이지 않고 부처별로 공개채용 외 시간제 채용, 임시채용, 한시채용 및 수시반복채용 등 필요에 따라 신축적으로 채용한다. 공채시험 또한 에이전시가 대행하는 전문적 시험에 따라 인력을 선발한다. 혹시 부처 간 인력 교환이 필요해지면 어떻게 할까. 부처별로 자발적 지원을 받아서 전보, 겸임, 파견 등 다양한 제도를 통해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생각해 보자. 예컨대 고용노동부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 노동시장 경직성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정부 스스로 뽑는 공무원 고용시장에는 왜 그런 탄력성을 부여하지 못하는가. 중앙집권식 고용시장도 이제는 해체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다.

하태형 <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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