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다뉴브강의 선물' 부다페스트…전통과 열정, 두 색깔의 어울림

입력 2017-03-26 17:37   수정 2017-03-26 17:39

동유럽의 낭만 헝가리 부다페스트

'귀족·부호의 도시'부다
세체니 다리 지키는 사자상엔 혀가 없다? 교회인 듯 이슬람사원인 듯 '마차시 사원'

'상업·예술의 도시' 페스트
지하 1000m 온천물에 몸 담그니 피로 싹~ 루인 펍서 한잔 하고 팬케이크로 '입가심'




체코 프라하역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헝가리 부다페스트 중앙역에 닿은 시간은 아침 8시.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역사 밖으로 나오니 이방인을 제일 먼저 반기는 건 역시나 잿빛 하늘이었다. ‘동유럽표 하늘’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의 우중충한 하늘. 어디에선가 잔뜩 몰려온 두터운 먹구름이 부다페스트 시내를 뒤덮고 있었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 도시

무거운 트렁크를 끌며 반질거리는 돌바닥 길을 가는 동안 귓전에는 내내 ‘글루미 선데이’의 아련한 선율이 맴돌았다. 부다페스트 하면 반사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음악. 1935년 헝가리의 무명 작곡가 레조 세레스는 연인 헬렌에게 실연당한 아픔을 담아 ‘글루미 선데이’라는 곡을 썼다. 그런 사연이 있어서일까? 음반이 출시된 지 8주 만에 헝가리에서만 187명의 자살자가 나오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젊은이가 이 노래를 들으며 목숨을 끊었다. 레조 세레스 역시 자기 노래 때문에 사람들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자살했다고 한다.

롤프 슈벨 감독은 이 믿기지 않는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만들었다. 영화는 자보와 일로나, 그리고 안드라스라는 두 남자와 한 여자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미로처럼 좁은 골목을 걸어가는 동안,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던 일로나의 모습과 그녀를 바라보던 안드라스의 강렬한 눈빛, 그리고 영화 내내 흐르던 치명적인 피아노 멜로디가 머릿속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당신을 잃느니 당신의 반쪽이라도 갖겠소”라고 말하던 자보의 안개 같은 목소리도 골목 저편 어디선가 들리는 듯했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처음 찾은 곳은 ‘세체니 다리’다.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밤에 불을 밝히는 전구가 멀리서 보면 사슬처럼 보인다고 해서 세체니(사슬)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다뉴브 강을 연결하는 8개의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세체니 다리 양 끝에는 커다란 사자상이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사자는 혀를 갖고 있지 않다. 별명이 ‘혀 없는 사자상’인 것도 이 때문이다. ‘조각가가 깜박 잊고 혀를 만들지 않았다’ ‘더 이상 싸우지 말라는 의미로 일부러 안 만들었다’는 등 의견 분분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혀가 없으니 울지 못한다. 그래서 헝가리 사람들은 ‘가능성 없는 일’을 이야기할 때 종종 ‘사자가 울면…’이란 문구를 인용한다고 한다.

부다와 페스트, 서로 다른 풍경

부다페스트는 원래 하나의 도시가 아니었다. 다뉴브(도나우) 강을 사이에 두고 각각 발전하던 부다와 페스트가 합쳐져 만들어진 도시다. 인구는 약 200만으로 중동부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 가운데 하나다. 부다는 귀족과 부호의 영역, 페스트는 상인의 활동 무대였다. 고대 로마의 군사기지로 개발되기 시작해 1361년 헝가리의 수도가 됐다. 13세기 이후 헝가리 왕들이 거주한 왕궁을 비롯해 역사적 유물과 건축물이 산재해 있다.

페스트가 도시로 형성된 것 역시 13세기 무렵, 상업과 예술의 중심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두 도시는 16~17세기엔 터키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 지배하에 있었으나 1872년 합병해 하나의 도시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주변의 작은 도시들까지 합쳐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이 때문인지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은 각기 서로 다른 매력을 드러낸다. 왕이 살았던 부다 지역은 어딘가 중후한 분위기를 풍긴다. 왕궁과 성당 등 역사적 건축물이 즐비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했으리라. 부다 지역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야트막한 부다 언덕에 다 모여 있는데 부다 성과 마차시 사원, 어부의 성채 등이 반드시 찾아야 할 곳이다.

부다, 헝가리의 위엄을 만나다

부다 성은 13세기에 지어졌다. 전성기 시절, 빈과 함께 합스부르크 제국의 공동 수도였던 부다페스트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만신창이가 된다. 전후 50년 동안 지속된 공산주의 통치 시절에도 건물 대부분을 파괴해버린다. 현재의 부다 성안에 있는 부다 왕궁은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2차 대전 때 파괴된 것을 복구한 것이다. 고풍스럽고 우아하던 실내 장식이 현대식으로 다 바뀌었다고 한다. 성은 역사박물관과 국립박물관, 국립도서관으로 쓰이고 있다.

왕궁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88m 높이의 첨탑이 있는 거대한 마차시 사원과 만난다. 1200년대 중반에 건축된 이 사원은 헝가리의 역사에 따라 한때는 교회로, 또 한때는 이슬람 사원으로 이용되기도 한 특별한 내력을 가지고 있다. 네오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있으며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외관이 돋보인다. 기하학적 무늬의 타일로 장식된 본당 지붕도 시선을 끈다. 이곳은 마차시 왕을 비롯해 역대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 장소로 이용되던 곳. 온통 황금으로 장식된 주 제단이나 대관식에 사용된 베일과 성물 등 전시물이 상당히 화려하다. 터키에 점령당했을 때는 이슬람 사원으로도 쓰였는데 지금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뾰족한 지붕을 가진 흰색 건물들이 회랑을 이루며 길게 늘어선 어부의 성채 또한 볼 만하다. 100여년 전 건축된 네오 로마네스크식 건물인데, 다뉴브 강 연안에 있는 요새 중에서는 가장 오래됐다고 한다. 과거 어부들이 이곳에서 파수를 맡아 적들을 방어했다고 해서 ‘어부의 성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적용된 반원형 아치와 고깔 모양의 탑들이 동양적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이곳에서는 강 건너편의 페스트 지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세체니교의 끝자락에 있는 아담 클락 광장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해 언덕 위로 쉽게 오를 수 있다.

부다 언덕에서 봤을 때 페스트 쪽 강변에 성처럼 솟아 있는 건물이 부다페스트가 자랑하는 국회의사당이다. 건국 1000년을 기념해 1904년에 완성한 것으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입법 건물 중 하나다. 그 위엄과 화려함을 지키기 위해 십수 년째 보수공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건물 일부만 사용하고 있으며 개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어서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야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영웅광장에 서면 36m의 중앙탑 위에 세워진 헝가리의 수호천사 가브리엘과 헝가리 독립을 위해 싸운 근대지도자와 왕들의 동상이 위엄 있게 여행자를 기다린다.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헝가리 역사를 빛낸 영웅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중앙 기둥의 대좌에는 9세기께 헝가리에 온 마자르족 수장들의 동상이 서 있다.

활기차고 역동적인 페스트 지역

부다 지역에 비해 페스트 지역은 젊음과 활기로 넘친다. 특히 다뉴브 강변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한 바치 거리는 보행자 전용거리로 우리나라 여행객들이 ‘부다페스트의 명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곳이다. 수많은 상점과 사무실, 은행, 레스토랑 등이 몰려 있는 페스트 지구 내에서도 가장 화려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노천카페와 고급호텔, 레스토랑, 기념품숍 등이 이어진다.

키라리 거리 역시 페스트 지역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다. 지하철 데악광장역(Deak Ferenc Ter)에서 내리면 된다. 현지인들이 즐겨가는 동네로 세련된 멋으로 가득하다. 작은 골목에는 루인 펍(Ruin Pub)이 들어서 있다. 루인 펍은 폐허로 남은 건물을 펍으로 개조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지구에는 빈 건물로 방치된 곳이 많았는데, 사회주의에서 막 탈피한 헝가리는 이 건물들을 처리할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이런 곳을 개조해 펍이나 클럽으로 만들면서 도시 전체에 활기가 돌게 된다.

바치 거리 끝에 자리한 중앙시장에도 들러보자. 헝가리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과일을 비롯한 농업 국가 헝가리를 대표하는 신선한 농수산물과 다양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와 다이애나 왕비가 다녀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트램은 다뉴브 강을 따라 달리고

부다페스트는 온천의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 전역에 약 100개의 온천이 있다. 2세기 무렵, 이곳까지 진출한 로마인들이 온천을 개발했고 16세기와 17세기에 터키 오스만튀르크족의 지배를 받으며 온천 문화가 발달했다. 터키 지배시대인 1669년 부다페스트를 방문한 영국인들은 이 당시 이미 10개의 온천장이 있다고 기록까지 남겼다. ‘세체니온천’(szechenyibaths.com)은 3개의 야외 온천장과 15개의 실내 온천장을 갖춘 유럽에서 가장 큰 온천 가운데 하나. 지하 1000m에서 뽑아올리는 온천수를 사용한다.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 온천과 물놀이를 즐기는 워터파크 개념이다. 1913년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 속에서 즐기는 물놀이가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부지런히 걸으며 부다페스트 시내를 여행하고 피로를 온천에서 푼다. 그리고 루인 펍에서 신나게 마시고 논 후 달달한 팬케이크로 마무리. 그것이 바로 부다페스트 여행의 정석이다.

부다페스트를 알차게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하철이다. 부다페스트의 지하철은 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됐다. 1896년 개통. 노란색의 M1 라인을 타면 당시에 지어진 지하철역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나무로 만든 역사와 기둥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지하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지하철로는 세계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고 한다. M1 라인은 오페라극장과 리스트기념관, 영웅광장 등 주요 명소를 연결한다. 빌라모시라고 부르는 노란색 트램은 부다페스트의 또 다른 명물. 이용 방법이 간단해 여유 있게 시내 경치를 감상하는 데 그만이다. 관광안내센터에 가면 트램 노선도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부다페스트=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

여행정보

부다페스트까지 가는 직항편은 없다. 체코 프라하까지 가서 야간열차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인천~프라하는 11시간 소요. 프라하~부다페스트는 8시간. 시차는 8시간 느리다. 전압은 220V. 음식은 여러모로 우리와 비슷하다. 요리할 때 마늘과 매운 파프리카 등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 헝가리 전통 수프인 굴라시는 고기와 채소를 썰어 넣고 끓여낸 것으로 먹다 보면 콧등에 땀이 송송 맺힐 정도로 맵다.

‘복 비스트로(Bock Bistro)’는 미슐랭 가이드에도 소개된 레스토랑이다. 헝가리 와인은 자국 소비가 대부분이라 해외에서는 맛보기가 쉽지 않은데, 이곳에서는 자체 와이너리에서 생산하는 복 와인도 함께 마실 수 있다. 영웅광장 가까이에 자리한 ‘군델 레스토랑(gundel.hu)’은 1910년 문을 열었다. 헝가리식 팬케이크인 초콜릿 팔라친타로 유명하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실제 촬영 장소이기도 했다. ‘심플러(szimpla.hu)’는 부다페스트의 루인 펍 중에서 최고로 치는 곳이다. 실내는 고물상에서 가져온 듯한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다. 구식 피아노와 오래된 그림이 놓여 있고 그라피티가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브로디 하우스’는 영국인 윌리엄 클로디어와 스웨덴 출신의 젊은 디자이너 피터 그룬드버그가 2009년 문을 연 호텔 겸 게스트하우스. 부다페스트에 반해 8년 동안이나 머물던 이들은 브로디 거리의 유서 깊은 건물 한 층을 구입했고, 그곳을 온갖 디자인 제품으로 가득 채웠다. 방뿐만 아니라 계단과 리셉션에도 작품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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