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서 평정심 찾아가는 이재용…"세상의 비판, 숙명으로 받아들여"

입력 2017-04-18 18:35   수정 2017-04-19 06:26

이재용 부회장 어떻게 지내나

하루에도 열두 번 무너져 내리지만…
하루 한시간 야외운동…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TV시청 거의 안하고 독서에만 집중
면회 온 가족·친지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 애써 웃기도

이재용 부회장 부재 두 달 넘었는데…
'최순실 게이트' 터진 이후 삼성 M&A 올스톱, 투자도 인사도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졸면 죽는다'는 비즈니스 전장서 삼성은 수면제 먹고 헤매는 꼴



[ 안재석 기자 ] 벌써 얼굴이 햇볕에 그을렸다. 한 시간씩 야외 운동을 하면서다. 서울구치소는 재소자들에게 작지만 독립된 운동공간을 제공한다. 입맛이 있을 리 없지만 배식 음식은 억지로라도 다 먹는다. 오후 6시 식사시간이 끝나면 취침 소등이 이뤄지는 9시까지 책을 읽는다. 구치소에서 선별적으로 틀어주는 TV 프로그램은 보지 않는다. 평소에도 TV는 별로 보지 않았다.

경영서적·소설 번갈아 읽어

하루 10분짜리 일반면회를 다녀온 사람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라고 전했다. 체중은 수감 전과 거의 같다. 수감 초의 충격을 어느 정도 가라앉히고 평정심을 되찾아가고 있단다. 가족과 친지들에겐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웃을 때도 있다. 일반면회가 금지되는 5월 초의 ‘황금연휴’가 두렵다는 농담도 건넨다. 원래 구치소 일반면회는 평일만 허용된다. 하지만 그를 만난 사람들은 웃을 수가 없다. 이 부회장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된 작년 11~12월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격렬한 심적 고통에 수면 리듬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밤 12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오랜 습관도 소용이 없었다. 희한하게도, 불면증은 구치소에서 덜해졌다. 엄청난 일들이 휩쓸고 지나간 뒤의 적막감과 허탈감이 오히려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준 것일까. 변호인들을 접견하는 특별면회에서도 표정에 큰 차이는 없다고 한다. 재판 일정과 대응 논리를 숙지하고 간간이 회사 업무보고도 전해 듣는다.

책은 구치소가 허용하는 한도인 30권을 꽉 채워놓고 있다. 하루에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새 책이 한 권씩 반입된다. 하루는 가벼운 책, 그다음 날은 무거운 책을 읽는 패턴이다. 영어로 된 경제·경영서적을 읽은 뒤에는 일본 소설을 읽는 식이다. 얼마 전엔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출간한 《결국 다시 경제민주화다》도 그의 책꽂이에 꽂혔다.

“거대한 오해의 성(城)에 갇혔다”

어느 정도 평정심을 찾았다고 해도 그는 결국 수인(囚人)이다. 좁은 골방, 찬 바닥에 누운 그의 심정을 헤아리긴 어렵지 않다. 억울함은 수인의 기본 감정이다. 대중의 질타는 그에게 오해로 해석될 것이다. 평소 그의 일상을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지금 이 부회장은 거대한 오해의 성(城)에 갇혀 있다.”

대중의 상상력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TV 드라마나 자신의 회사에서 만나는 ‘사장님’을 잣대로 이 부회장을 재단한다.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양질 전환’의 법칙이다. 조직과 리더십에도 적용된다. 삼성그룹은 60여개 계열사에 종업원만 30만명이 넘는다. TV 속 김 사장님처럼 일할 순 없다. 일상적 업무는 거의 대부분 위임한다. 그 흔한 ‘주간회의’도 없다. 삼성전자는 회사 인력을 관리하는 인사부서 직원만 1000명을 훌쩍 넘는다. 어지간한 중소기업 규모다. 대면 보고는 극히 예외적이다. 물리적으로 그리 할 수도 없다. “그룹 내 고위 임원이 이 부회장을 몇 달에 한 번 본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은 이렇게 현실과 괴리된다.

대신 이 부회장의 24시간은 ‘삼성의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채워진다. “외국 유명 정보기술(IT) 기업인 등을 만나 영감을 얻고, 이를 어떻게 삼성에 접목할 수 있을지 숙고하고, 삼성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면 어떤 기업과 제휴할지, 아니면 아예 인수합병(M&A)을 하는 게 나은지 등을 고민하는 게 이 부회장의 일상입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사석에서 이런 말을 하고 한숨을 쉬었다. 대중은 그만큼 불신의 벽을 높게 쌓았다. “한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그룹인데, 뭐 그리 호들갑이냐”는 반응도 예상 범위 내다. 노키아 소니 도시바 등의 몰락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에 9조9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반도체 호황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갓 나온 ‘갤럭시S8’까지 탄력을 받으면 올 한 해 삼성의 농사는 풍작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해와 불신의 딱지는 여기에도 들러붙는다. ‘가진 자’에 대한 조소는 양념이다. “이 부회장이 없으니까 더 잘되네, 뭘.”

웃고 넘기기엔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이 부회장은 3년 전 경영 전면에 나서자마자 대형 투자를 주도했다. 이런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M&A 소식이 줄을 이었다. 순식간에 10여개의 회사가 삼성의 새 식구가 됐다. 작년 11월 이뤄진 9조원짜리 ‘하만(미국 전장 전문기업) 인수’는 하이라이트였다. 하지만 거기까지. ‘최순실 게이트’는 이 부회장의 장기 구상을 온통 헝클어 놓았다. 출국 금지와 특검 조사에 이어 결국 수감. 삼성의 M&A는 이때부터 ‘올스톱’됐다.

“삼성 위기 이미 시작됐다”

이 부회장은 ‘대중의 분노’를 인지한다. 그리고 ‘숙명’이라 생각한다. 재판정에 나갈 때도 처음엔 수의를 고집했다고 한다. “수의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을 것 아니에요.” 양복을 권유하느라 진땀을 뺀 삼성 관계자의 전언이다.

누구나 안다. ‘억울함’이 사람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내는지를. 여기에 중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는 공포까지 더해졌다. 그의 심리 상태는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다. 하루에도 열두 번 무너졌다 추스르길 반복할 것이다.

이 부회장의 부재는 두 달을 넘기고 있다. ‘졸면 죽는다’는 전장(戰場)에서 삼성은 대놓고 수면제를 먹은 꼴이다. 투자도 인사도 정상적으로 이뤄지긴 어렵다. 삼성 내부인력들은 위기를 피부로 느낀다. 이번 혼란을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을 것이라는 삼성의 공식 입장은 그래서 안쓰럽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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