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지속가능하지 않은 소득주도 성장

입력 2017-06-08 18:04  

소득주도 성장은 사막서 신기루 쫓는 것
기업활동 왕성해져야 소득이 늘어나는 법
규제 완화·감세 등 기업 환경 개선해야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



새 정부 경제정책의 근간은 소득주도 성장이다. 가계 소득을 늘려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것이다. 가계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가 증가해 경제가 성장한다는 논리다. 매우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계 소득을 늘리는 방법이 임금을 인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득주도 성장은 사실상 임금주도 성장이다. 실제로도 소득주도 성장의 정확한 용어는 ‘임금주도 성장(wage-led growth)’이다. 임금은 가계에는 소득이지만 기업에는 비용이다. 소득주도 성장이란 기업을 희생시켜 가계를 돕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용어 대신 그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임금주도 성장’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옳다.

물론 임금을 올리면 가계의 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증가할 수 있다. 그러나 임금을 인상하면 기업의 비용이 증가해 기업 수익은 감소한다. 임금이 오른 만큼 소비가 늘어나고 늘어난 소비가 기업의 비용 증가로 인한 수익 감소를 상쇄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임금이 오른 만큼 소비는 결코 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임금이 10% 올랐을 때 소비가 10% 증가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임금이 증가했을 때 연금, 세금, 이자비용 등과 같은 소비와 무관한 지출 또한 증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 상승에 따른 기업의 비용 부담 증가분이 소비지출 증가로 인한 기업의 수입 증가분보다 언제나 크다. 임금을 올리면 기업의 수익이 줄어 규모를 줄이는 기업이 생기고 문을 닫는 기업도 나온다. 그러면 실업이 늘어나 고통받는 사람이 증가하며, 경제는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쇠퇴한다. 그래서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지속가능한 것이 아니다.

소득주도 성장의 주장을 보면 프레데릭 바스티아의 ‘깨진 유리창’이 떠오른다. 말썽꾸러기 아이가 돌멩이로 빵집 유리창을 깨면 유리업자는 돈을 벌겠지만 그 돈은 빵집 주인이 다른 곳에 쓸 돈에서 나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득주도 성장에서 등장하는 가계의 임금 인상분은 기업이 다른 곳에 써야 할 돈이다. 깨진 유리창은 부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부를 이전하며 오히려 부를 파괴하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도 그러하다.

기업이 임금을 올려주면 노동생산성이 증가해 기업의 비용 상승을 상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결정할 경우에 해당한다. 기업이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임금을 올리고 직원들이 애사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면 생산성이 증가해 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의 비용 상승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서로 이익이다. 그러나 소득주도 성장에서 말하는 임금 인상은 이런 성격의 임금 인상이 아니다. 제3자인 정부가 강제적으로 임금을 올리는 경우다. 정부의 강제적인 조치로 임금을 올리면 임금을 올려주는 주체가 기업이 아니라 정부로 생각해 노동자는 기업에 충실하지 않고 정치적인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면 생산성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한다.

단순히 소비를 장려하는 것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제 과제는 소비 욕망을 자극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소비 수단을 공급하는 데, 즉 소득 창출에 있기 때문이다. 소득 창출을 위해서는 기업 활동을 장려하는 수밖에 없다. 기업 활동이 왕성해지면 자연스럽게 소비에 쓸 수 있는 소득이 창출되고 임금이 오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소득주도 성장은 원인과 결과가 완전히 전도된 주장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업 활동을 장려해 생산을 촉진하는 일이다. 기업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 감세 등을 통해 기업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금까지 각국의 역사를 보면 생산을 촉진하려고 한 정부는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소비를 장려하려고 한 정부는 나쁜 결과를 낳았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것은 사막에서 신기루를 쫓는 것과 같다. 신기루를 계속 쫓아 가다간 지쳐 쓰러질 수밖에 없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jwan@kh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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