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운 좋은 당신만이 오를 수 있는 이곳…또 다른 아! 프리카 남아공 케이프타운

입력 2017-06-11 16:23   수정 2017-06-11 16:26

'신이 펼친 거대한 정원' 테이블마운틴… '아프리카의 랜드마크' 희망봉…
'신나고 맛있는 거리' 워터프런트 ...'향긋한 유혹' 4700개 와이너리

해발1086m·축구장 15배 크기, 커다란 책상 같은 테이블마운틴
정상에 서면 만델라가 수감됐던 로벤 아일랜드가 저 멀리 보이고…

400번의 굴곡 진 도로 따라 희망봉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 언덕엔 별장들이 쭉~ 볼더스 비치엔 펭귄들의 행진

밤엔 크루즈선 타고 바다로
남아공 와인 '피노타지' 마시며 황금빛 일몰에 취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는 길은 마치 세상의 끝으로 향하는 것처럼 멀고 험하다. 인천에서 홍콩까지 4시간, 홍콩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다시 13시간이 걸린다. 케이프타운까지 가려면 다시 국내선을 타고 2시간을 더 가야 한다. 고행과도 같은 일정이지만 케이프타운에 도착하면 마치 새로운 세상에 진입한 것처럼 눈부신 풍경이 눈을 황홀하게 한다. 눈부신 자연과 희귀한 동식물, 게다가 맛있는 와인까지 지천에 널려 있으니 이만하면 고행의 여정을 충분히 보상받을 만하다. 그래서 수많은 여행자가 케이프타운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도시이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았는지도 모른다.

케이프타운 여행은 운이 따라줘야 한다. 많은 여행이 그렇듯 케이프타운 여행의 가장 큰 변수는 날씨다. 케이프타운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테이블마운틴인데, 악천후가 잦은 탓에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날이 많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케이블카 운행이 바로 중단된다. 이곳을 찾은 60%의 여행자가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발걸음을 돌린다고 한다. 1주일간의 일정 동안 테이블마운틴 근처에조차 가지 못하는 여행객도 있다. 1년 중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날은 절반 정도다. 설사 정상에 오르더라도 갑자기 두터운 안개가 밀려와 안개만 보고 내려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 구름을 두고 현지인들은 ‘예수가 테이블 위에 식탁보를 펼쳤다’고 표현한다. 정상 주변에 12개 정도의 봉우리가 솟아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12명 제자를 상징하는 것이고 구름이 깔린 것을 이들이 만찬을 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테이블마운틴은 케이프타운을 찾은 여행객이 가장 먼저 해치워야 할 숙제다. 현지 가이드 윌리엄은 “평생에 한 번 올까말까한 먼 먼 남아공까지 와서 테이블마운틴을 못 보고 가는 여행객은 아무리 좋은 다른 일정으로 대체해도(물론 그보다 더 좋은 일정이 있겠느냐만) 컴플레인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날씨가 좋지 않으면 가이드는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고 했다.

그런데 아뿔싸, 케이프타운에 도착한 첫날부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CNN과 BBC, 뉴욕타임스 등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도시’ 등 온갖 찬사를 바친 도시, 여행잡지 <론리플래닛>이 ‘2017년 도시별 최고의 여행지 베스트 10’에서 2위로 선정한 도시 케이프타운. 하지만 폭우가 쏟아지는 케이프타운의 첫인상은 마냥 우울하기만 했다. 이런 불안과 실망의 기색을 눈치 챈 윌리엄이 어깨를 툭 툭 치며 말했다. “해가 뜨면 모든 게 달라질 겁니다. 내일은 날씨가 좋다고 하니까 걱정 말고 푹 주무세요.” 윌리엄은 이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넬슨 만델라, 테이블마운틴 보며 희망 꿈꿔

다음날 정말로 마법이 일어났다. 거짓말처럼 폭우가 그쳤고 쨍한 해가 떴다. 케이프타운은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바다는 황금빛으로 찬란했고 야자수는 기분좋게 잎사귀를 흔들어댔다. 해변은 조깅하는 사람들과 스케이트 보드를 탄 청년들로 넘쳐났다. 바다에는 서퍼들이 바글댔다.

“자, 얼른 숙제부터 해치우자고요.” 윌리엄이 이끈 첫 목적지는 당연 테이블마운틴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케이블카 승강장으로 향했다. 테이블마운틴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간다. 360도 회전하는 케이블카를 타면 5분이면 갈 수 있다.

테이블마운틴의 높이는 해발 1086m. 이름 그대로 커다란 책상처럼 생겼다. 정상 부분이 대패로 밀어낸 듯 평평하다. 길이가 동서로 3.2㎞에 달한다. 축구장 15배 크기. 8억5000만 년 전 바닷물에 잠겨 있던 모래땅이 용암의 분출력과 대륙판 이동에 따른 압력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 뒤 오랜 세월 침식 과정을 거치면서 정상부가 평지를 이루게 됐다. 비비, 케이프망구스, 사향고양이, 스팅복 등의 동물이 살고 있으며 실버트리, 킹 프로테아 등 1470여 종의 희귀식물이 서식한다. 과거에는 아프리카 대륙을 항해하는 선원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정상 곳곳에는 전망대가 마련돼 있는데 전망대에 서면 ‘아’ 하는 감탄사밖에 나오지 않는다. 키 작은 관목 사이로 어디가 끝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아프리카 대륙이 뻗어나간다. 발 아래로는 케이프타운 도심이 양탄자처럼 펼쳐진다. 햇빛을 받아 빛나는 대서양은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찬란하다. 도심 왼편으로는 사자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라이온스 헤드’, 매일 정오를 알리는 대포로 유명한 ‘시그널 힐’, 악마의 봉우리라는 뜻의 ‘데빌스 피크’ 등이 파노라마로 이어진다. 산 위에 쓰인 ‘어 기프트 투 더 어스(A gift to the Earth, 지구에 준 선물)’라는 문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에게도 테이블마운틴은 희망의 상징이었다. 정상에서는 만델라가 27년 수감생활 중 18년을 보낸 로벤 아일랜드가 어렴풋이 바라보인다. 만델라는 한 연설에서 “로벤 아일랜드에서 테이블마운틴의 매혹적인 실루엣을 바라보곤 했다. 테이블마운틴은 우리가 언젠가는 본토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상징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희귀 동식물로 가득찬 희망봉 … 야생타조와 눈인사

테이블마운틴을 내려와 가는 곳이 ‘희망봉’이다. 테이블마운틴이 케이프타운을 대표하는 명소라면 아프리카 최남단에 자리한 희망봉은 아프리카 대륙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케이프타운을 벗어나 희망봉까지 해안도로를 따라 달린다. 바닷가 굴곡을 따라 심전계 눈금처럼 요동치는 ‘채프먼스 피크’는 400여 번의 굴곡으로 유명한 도로다. 오른쪽 차창으로는 영화에서 본듯한 화려한 부촌이 잇따라 펼쳐진다. 지중해풍의 호화별장들이 언덕을 따라 늘어서 있다.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브루스 윌리스 등 할리우드 스타들도 이곳에 별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 도로 역시 날씨가 안 좋으면 통행을 아예 차단한다고 한다.

'신나고 맛있는 거리' 워터프런트 ...'향긋한 유혹' 4700개 와이너리

대부분 여행자들은 희망봉에 가기 전 볼더스 비치라는 곳에 잠깐 들른다. 약 3000마리의 펭귄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펭귄은 추운 남극에만 산다고 하는 편견이 이곳에서는 여지없이 깨진다. 이 펭귄들은 자카스 펭귄으로 10~20도의 따뜻한 바다에서 살며 30~40㎝까지 자란다. 바다 쪽으로 난 나무 데크를 따라가며 귀여운 모습의 펭귄들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볼더스 비치에서 한 시간 정도 더 가면 희망봉 자연보호구역에 들어선다. 원숭이와 타조 등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곳으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멀뚱멀뚱한 눈으로 차를 바라보는 야생 타조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1938년 자연보호지구로 지정됐고 1998년에는 케이프반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보호받고 있다.

보호구역을 지나면 드디어 희망봉이다. 아프리카 최남단에 있는 이곳은 15세기 유럽인들이 아시아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1488년 처음 이곳에 도착한 포르투갈의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험한 날씨와 폭풍 때문에 ‘폭풍의 곶’이라 이름 붙였다. 1497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가 이곳을 통과하면서 ‘희망의 곶’, 희망봉으로 이름을 바꿔 불렀다. 희망봉이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다고 믿은 유럽 선원들이 항해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이 봉우리를 보고 고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리학상 아프리카 대륙의 남쪽 극점은 아굴라스곶이다. 일부러 그곳까지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350년 역사 ‘와인 대국’

케이프타운에는 테이블마운틴과 희망봉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워터프런트에서 즐기는 신나는 저녁도 빼놓을 수 없다. 케이프타운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지구로 수십 개의 식당과 상점, 극장, 수족관, 박물관 등이 몰려 있다. 정식 명칭은 빅토리아&알프레드 워터프런트(the Victoria & Alfred Waterfront). 워터프런트는 유럽인들이 케이프타운에 가장 먼저 세운 항구로 쇼핑 지역으로 재개발되면서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았다.

바로 옆에 있는 항구에서 크루즈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일몰도 감상할 수 있다.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3만원 안팎. 1시간30분 정도 노을 지는 바닷가를 달리며 달콤한 와인을 맛본다. 연인과 함께라면 꼭 해보기를 권한다.

와인 애호가라면 와이너리 탐방도 지나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남아공은 4700개의 개인 소유 와인 농장이 존재하는 와인 대국 중 하나다. 와인 역사도 350년이나 됐다. 7세기 중반 유럽 상인들이 포도나무를 심으며 와인을 제조하기 시작해 인종차별 정책이 폐지되고 와인 사업이 국영에서 자유로워진 1994년부터 급격히 발전했다.

남아공에서 꼭 맛봐야 할 와인은 피노타지(Pinotage)다. 세계에서 오직 남아프리카에만 존재하는 품종으로 프랑스의 피노누아(Pinot Noir)와 에르미타주로 알려진 생소(Cinsault) 품종을 교접해 만들었다. 쉬라즈와 멜롯의 중간 정도 맛을 내며 진한 과일맛과 우아한 기품이 느껴진다.

케이프타운 여행 마지막 날 스텔렌보시 지역에 자리한 와이너리 ‘조단’(Jordan)에서 오래오래 와인을 즐겼다. 다양한 와인을 맛볼 수 있는 멋진 테이스팅룸, 맛있는 음식을 내는 레스토랑, 아름다운 자연경관까지 갖춘 완벽한 와이너리다. 남아공 와인 베스트 10을 꼽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와이너리다. 조단의 야외 테라스에서 와인을 마시다 보니 가이드가 “케이프타운에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고 했는데 그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햇살 가득한 테이블에 앉아 느긋하게 와인을 마시다 보면 인생에는 그다지 좋은 일도 없고 그렇게 나쁜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각자의 인생에는 각자에게 일어날 만한 일만 일어난다. 그러니까 조금만 애를 쓰면 그럭저럭 극복하며,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또 인생인 것이다. 지금까지 여행을 하며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 아닐까 하며 나는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와인을 입 속으로 털어넣었다. 테이블마운틴이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던 기분좋은 오후였다.

여행정보

한국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향하는 직항편은 없다. 홍콩을 거쳐 요하네스버그로 가야 한다. 아시아나항공과 남아공항공은 공동운항 협정을 맺었다. 인천~홍콩 3시간40분, 홍콩~요하네스버그 13시간, 요하네스버그~케이프타운 2시간10분 소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남반구에 위치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계절은 한국과 반대로 5월(가을철) 기온은 13~20도, 우리의 초가을처럼 선선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해가 진 뒤 혼자 다니지만 않으면 치안이 그렇게 안 좋은 편은 아니다. 남아공 화폐인 ‘랜드’ 환전은 호텔 등에서 하면 좋지만 미화 달러나 신용카드를 쓰는 게 편하다.

케이프타운=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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