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야후의 몰락

입력 2017-06-14 17:55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인터넷 검색의 개척자’ 야후(Yahoo)가 계속된 실적 부진 끝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94년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생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가 최초의 포털 사이트를 선보인 지 23년 만이다. 미국 최대 통신사 버라이즌은 13일(현지시간) 야후의 핵심 자산을 44억8000만달러(약 5조556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야후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 검색 엔진이었다. 야후라는 고유명사가 웹 서핑을 대표하는 보통명사로 자리잡을 정도였다. 1996년 주식시장에 상장했을 때 거래 첫날 주가가 154%나 폭등하기도 했다. 20개국 이상에서 해당 언어별 사이트로 사업을 펼쳤다. 우리나라에도 1997년 야후코리아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닷컴 버블 붕괴 직전 시가총액이 1250억달러(약 140조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새로운 검색 시장 강자인 구글이 등장하면서 야후의 시장점유율은 줄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후배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추격을 당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에 쫓기다가 2012년 12월 사업을 접었다.

야후는 고심 끝에 구글 부사장인 머리사 메이어를 2012년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해 재기에 나섰다. 실리콘밸리의 여성 트로이카로 불리던 메이어는 취임 이후 강력한 구조조정과 기업 인수, 새로운 비디오 콘텐츠 서비스 등으로 혁신을 모색했다. 회사 로고도 과감하게 바꿨다. 그런데도 소용이 없었다. 결정적인 패인은 모바일에서 뒤처진 것이었다. 애플과 구글이 모바일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페이스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자리 잡고 난 뒤였다.

경영진의 오판으로 시장 진입이 늦은 기업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정보기술 분야에서는 더 그렇다. 야후는 지난해 누적된 적자 때문에 인터넷사업부문을 팔 수도 있다며 매각설을 흘렸다. 이 과정에서 알리바바와 야후재팬의 주식소유분을 제외하면 ‘껍데기밖에 없는 회사’라는 게 드러났다. 결국 한창때 몸값(1250억달러)의 30분의 1(44억8000만달러)이라는 초라한 금액에 ‘포털의 원조’를 넘기게 됐다.

야후라는 이름은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덜떨어진 인간’을 말한다. 설립 당시 스스로를 낮춰 부르며 ‘세계 무료 서비스’의 꿈을 꿨던 창립자들의 자유로운 사고가 반영돼 있다. 그러나 급변하는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면 누구라도 금세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야후 사태는 확인시켜 주고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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