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우리 극장 구경 갈까?"

입력 2017-07-06 18:06  

이젠 사라진 '나만의 영화관'에 대한 추억
영화 '옥자'가 불러낸 그 정겨운 이름들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



“우리 극장 구경 갈까?”란 말을 쓰던 때가 있었다. 명절이면 가족끼리 성룡 영화를 보러 가던 어린 시절에도, 기말고사가 끝난 기념으로 친구들과 영화 한 편 보러 가던 시절에도 그렇게 물었다. 시대가 달라져서일까, 공간이 달라져서일까. 이젠 “영화 볼래?”라고는 하는데, “극장 구경 갈까?”하지는 않는다.

한국에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이 도입된 것은 1998년 문을 연 ‘CGV 강변 11’이 그 시초다. 요새 관객들에게 영화관이란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같은 멀티플렉스를 뜻하겠지만, 사실 한국의 멀티플렉스 문화가 시작된 것은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전 사람들은 자기가 살던 동네의 가장 가까운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 아마도 1980~1990년대 영화를 열심히 관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만의 영화관’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필자가 애용했던 동네 극장은 지금은 사라진 씨네하우스다. 서울 논현동 도산대로에 있던 씨네하우스에서 나는 영화의 꿈을 키웠다. 대로변의 메인 극장 씨네하우스에서는 친구들과 히트작을 보고, 그 뒷골목 서브극장 ‘씨네하우스 예술관’에서는 세계 유명 감독들의 걸작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언젠가 어른이 되면 영화 일을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이다. 지금이야 훌륭한 아카이브가 많아 세계 어떤 영화든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경로가 존재하지만, 그 시절엔 영화관이 상영해주지 않으면 좋은 영화를 보는 게 불가능했다. 매일 텅텅 비어 있던 씨네하우스 예술관을 없애지 않고 오랫동안 운영해주신 사장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의 영화적 소양을 갖추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학동사거리의 후발주자 키노극장에도 감사한 게 많다.

2001년 처음 영화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멀티플렉스 비중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영화계 거점은 여전히 종로의 극장가였다. 신작이 개봉하는 토요일에는 종로3가 극장 앞으로 출근하는 것이 영화계 관례였다. 극장 옆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흥행을 예측하기도 하고, 영화계 현안을 토론하기도 했다. 목청 높여 “곧 매진!”을 외치는 매표창구 앞 입회직원에게 음료수를 건네며 티켓 현황을 체크하는 것도 주요 업무였다. 극장 앞줄이 어디까지 서는지를 보고는 점심 무렵엔 뒷골목 중국집이나 설렁탕집에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각자의 사무실로 복귀하곤 했다. 줄이 길게 늘어선 어느 날 해당 영화 사장님이 한턱 쏘는 점심을 얻어먹는 소소한 기쁨이 있었고, 내 영화의 줄이 지하철 역까지 늘어선 것을 쫓아가며 느끼는 뒤통수의 짜릿함이 서려 있던 곳이다.

2017년 6월,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가 5000만달러를 투자했고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옥자’라는 영화를 마케팅하고 있다. ‘옥자’는 특별한 영화다. 모바일을 통해서도 볼 수 있고 극장에서도 볼 수 있다.

하나 더 특별한 것은 엔터테인먼트산업의 가장 최첨단에 서 있는 영화 ‘옥자’가 상영되는 극장의 명단이다. 불러본 지 오래된 정겨운 이름, 추억의 명단이 준비돼 있다. ‘서울극장’ ‘대한극장’ ‘애관극장(인천)’ ‘만경관(대구)’…. 이렇게 부르다 보니 지난 추억들이 떠오른다.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 극장 구경 갈까? 오랜만에 종로 뒷골목 중국집에서 짜장면도 한 그릇 하고.”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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