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진 저널] '쇼생크 탈출' 같았던 삼성의 호실적

입력 2017-07-11 18:46  

"앞선 투자로 일군 '세계 반도체 1위'
경제영토 넓혀 긍지 높이는 기업인
그들이 야성을 펼치게 뒷받침해야"

양봉진 < 세종대 석좌교수 >



더불어민주당도 박수를 쳤다는 삼성전자의 2분기 호(好)실적 발표는 지독했던 가뭄 뒤에 내린 단비 같았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탄핵정국 이후 기업들의 속앓이는 남다른 것이었다. 그룹 총수들이 검찰수사에 불려다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비정규직 제로화,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생산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게 뻔한 탈(脫)원전에 더해 법인세율 인상 검토에다 민노총의 파업까지, 쉴 새 없이 쏟아진 새 정책과 이에 따라 바뀌는 주변 여건은 기업을 질식상태로 내몰 수 있는 것이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로 불리던 삼성이 14조원에 이르는 경이로운 2분기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스마트폰의 ‘선점자(first mover)’ 애플(약 12조2000억원 예상)을 누르고 세계시장에서 새로운 위상을 확립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더욱이 이번 성적은 이재용 부회장이 뇌물공여 혐의로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발표되면서 이를 영화 ‘쇼생크 탈출’로 빗대어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삼성의 성적표 중 반도체 부문 약진은 더 극적이다. 반도체산업은 대표적 ‘사르트르 나비’ 산업으로 불리며 웬만한 자신감 아니면 쉽게 달려들 수 없는 업종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삼성이니까 가능했다는 얘기다. ‘사르트르 나비’ 산업이란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인간을 ‘망망대해의 나비’에 비유한 데서 비롯됐다. 나비는 날갯짓을 그만두는 순간 그 운명을 다한다. 반도체업체도 살아남기 위해선 끊임없이 차세대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1000바이트(1KB)에서 시작한 반도체는 메가(MB)와 기가바이트(GB) 세대를 이미 지나 테라바이트(TB), 그리고 영(零)이 12개나 붙는 페타바이트(PB)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차세대 제품 개발은 피를 말리는 전쟁이다. ‘한계개발비용’은 엄청나게 증가하고, ‘진부화’가 빨라지며 ‘제품수명주기’가 단축되는 가운데, 경쟁심화에 따른 가격 하락까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반도체업계의 경험이자 그간 흐름이었다. 이런 삼중고(三重苦) 구조는 잘 바뀔 것 같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었지만, 삼성은 인공지능(AI)시대 도래에 따른 반도체의 폭발적 수요 증가를 확신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 평택단지에 수십조원에 이르는 투자를 타이밍 좋게 집행했고,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온 수요 폭증과 이에 따른 반도체 가격 폭등에 따라 지난 24년간 이 부문 1위를 지켜온 인텔마저 제치고 업계 왕좌에 오른 것이다.

삼성의 경이로운 성적표를 받아 든 것을 계기로 이제 우리 사회의 재벌에 대한 시각과 평가를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해외에 나가보면 한국인의 자존심과 긍지를 심어주고 있는 건 이들 재벌기업이다. 어디를 가든 눈에 띄는 현대자동차, 누구나 들고 다니는 삼성 휴대폰, 건물벽에 붙어 있는 LG 에어컨 실외기, 그리고 이들 제품의 선전 포스터와 광고탑들이야말로 한국인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원천이다. 파산한 지게차 업체 클라크를 인수해 살려낸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은 “이제 영토를 총칼로 빼앗을 수는 없지만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곧 영토 확장”이라고 말했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미국의 자존심’ 클라크까지 사들여 부활시킨 게 바로 우리 기업인이다.

국내에선 개혁대상으로 몰려 있는 재벌이지만 이들 없이 ‘해외영토확장’은 효율적일 수 없다. 세계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는 더없이 중요하다. 우리의 몸집은 바깥세상 기업들에 비해 아직도 작다. 더 커져야 한다. 세계시장 공략을 위해 모자란 부문을 제때에 메우고 보완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인수합병(M&A)도 결국은 재벌들의 몫이다. 기업가의 통찰, 과단성, 예지, 타이밍 등이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여건조성 또한 필요하다. 자유를 향한 그리고 새로운 경제영토 확장을 위한 ‘쇼생크 탈출’ 행진은 삼성에서 끝나지 않아야 한다.

양봉진 < 세종대 석좌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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