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덩케르크의 모기함대

입력 2017-07-24 17:46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2차 세계대전 때인 1940년 5월, 독일군이 프랑스와 벨기에 국경을 뚫었다. 구데리안과 롬멜의 기갑사단이 프랑스 요새 마지노선(Maginot line)을 우회해 아르덴 삼림지역을 기습한 것이다. 배후가 뚫린 연합군은 둘로 갈라졌고, 영국군과 프랑스군 40만 명이 포위됐다.

이들이 고립된 지역은 프랑스 북부 해안 ?케르크(Dunkerque). 영어로는 던커크(Dunkirk)이지만 최근 개봉된 영화 제목처럼 양국 발음을 섞은 ‘덩케르크’로 더 알려진 곳이다.

이들을 구출하는 작전은 당시로선 사상 최대 규모였다. 영국군 사령부가 있던 도버성의 지휘소 방 이름을 따서 ‘다이나모 작전’이라고 불렀다. 영국군은 흩어진 전투함들을 급히 모았으나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민간 선박들이 몰려왔다. 화물선부터 유람선, 고깃배까지 달려왔다. 상류층은 레저용 호화 요트를 몰고 합류했다. 청소년들마저 학교 실습용 보트를 끌고 오는 바람에 돌려보내느라 애를 먹을 정도였다.

이렇게 모인 배 700여 척으로 민간함대가 구성됐다. 선체의 크기는 보잘것없지만 정신은 스페인 무적함대와 같다고 해서 ‘모기함대(mosquito armada)’라고 불렸다. 모기함대 중 가장 작은 배의 길이는 고작 4.5m였다. 이들과 함께 대형 구축함을 포함한 철수선단 900여 척이 도버 해협을 건넜다.

현장 상황은 최악이었다. 파도가 높고 모래가 많아서 큰 배는 접근하기 어려웠다. 처음에는 작은 구명정으로 병사들을 태워 날랐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때부터 모기함대의 활약이 시작됐다. 한 보트는 정원의 30배를 태우고 아슬아슬하게 영국에 도착했다. 해안에 너무 가까이 접근하다 모래톱에 좌초되자 그걸 역이용해 다른 선박을 접안시키고 임시 부두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해협을 7번 왕복하며 7000여 명을 구한 유람선도 있었다.

9일간 계속된 이 작전으로 구출한 병사는 모두 33만8226명. 모기함대가 구한 인원만 6만7000여 명으로 전체의 20%였다. 이 ‘작은 배들의 기적’을 본 영국 국민의 사기는 충천했다. 이로써 군대를 재건할 수 있었다. 영국인은 지금도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불굴의 ‘덩케르크 정신’으로 뭉친다. 그날을 기려 5년마다 모기함대가 해군 호위를 받으며 기념항해까지 한다.

6·25 때 약 20만 명을 구한 ‘흥남철수’에도 민간 상선과 어선 200여 척이 합세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승리 뒤에도 수많은 포작선(匏作船, 고기잡이배)의 활약이 있었다. 이들의 용기와 희생정신 위로 영화 ‘덩케르크’의 한 장면이 겹쳐진다. 수평선 위에 나타나는 배들을 보고 대령이 “뭐가 보입니까?”라고 묻자 제독이 이렇게 말한다. “조국이 보이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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