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갈등만 키우는 학폭위… 징계 대신 '양자대화'가 대안 될까

입력 2017-08-04 18:51  

'밀실재판'…되레 축소·은폐
학폭위 구성은 학교장 재량, 학부모·학교 관계자가 대부분
경찰 등 외부인 참여 사실상 배제

가해·피해학생 대화로 해결?
좋은교사운동, 학생·교사 설문…학생 95% "대화로 학폭 해결"
대화 중재할 전문가 부족 한계도

연수 통해 전문교사 역량 강화…지역단체와 연계 통한 협력 필요



[ 이현진 기자 ] 서울 A중학교에 다니는 김모군(15)은 단체 대화방(카톡방)을 만들면서 같은 반 친구인 이모군(15)을 초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장난이었다. 그러나 이군은 자연스럽게 교실에서도 소외되기 시작했다. 둘 사이는 점차 멀어졌다. 어느 날 컴퓨터 게임을 하다 사소한 시비로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그날 저녁 김군은 이군에게 전화를 걸어 “앞으로 우리는 너 신경 안 쓴다”고 선언했다. 가뜩이나 소외감을 느꼈던 이군은 밤새 끙끙 앓다가 부모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격분한 이군 부모는 다음날 담임 교사를 찾아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어줄 것을 요구했다. 이 사실을 안 김군 부모도 펄쩍 뛰었다. “오히려 이군이 우리 아이를 괴롭혔다. 맞고소하겠다”고 나섰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

2004년 도입된 학폭위는 학교폭력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2012년 의무 시행됐다. 학교폭력이 피해자·가해자 사이의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것을 줄이고 학교 내에서 해결해보자는 취지였다. 교육부는 경미한 사안이라도 신고가 들어오면 반드시 학폭위를 열도록 했고, 이를 학교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2014년 1만9521건이던 학폭위 심의 건수가 지난해 2만3673건으로 급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학폭위가 이 같은 도입 취지와 달리 피해자 및 가해자 학부모 간 불신과 갈등만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학폭위에서 사안에 따라 서면사과(1호)~퇴학(9호) 등 징계를 받으면 학생생활기록부에 기재된다. 이는 입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김군 부모가 거세게 반발한 것도 “특수목적고(특목고)에 보낼 아이의 미래를 이런 일로 망치려는 것이냐”는 이유에서다.

학폭위 구성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학폭위는 학교장의 재량 아래 5~10명으로 꾸릴 수 있다. 원활한 의결을 위해 보통 5·7·9명 등 홀수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같은 학부모 중에서 뽑아야 한다. 여기에다 생활지도교사 및 담임교사, 교감·교장 등 필수 관계자들이 나머지 자리를 채우고 나면 경찰 변호사 심리전문가 등 외부인의 참여가 사실상 배제된다. 최근 논란이 된 서울 숭의초등학교 ‘야구방망이 폭행 사건’에서 보듯 학폭위가 오히려 문제를 축소·은폐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처럼 ‘내부자들의 밀실 재판’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일부 학교에선 학부모 위원 몫을 놓고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기도 한다. “저 사람은 가해학생 이웃이다”, “이 사람은 피해학생 가족과 절친하다”며 제척·회피 신청이 난무한다. 부산의 한 초등교사는 “학폭위를 열기도 전에 감정의 밑바닥을 드러내니 결과가 나와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학폭위 재심청구는 2012년 572건에서 지난해 1229건으로 폭증했다. 학교가 쟁송의 장으로 전락한 셈이다.

피해·가해학생 감정 살폈더니…

이 과정에서 누구보다 상처받는 것은 당사자인 아이들이다. 가해학생에게 징계를 내리기 위한 현행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폭법)로는 피해학생의 치유나 폭력행위의 재발을 막기 어렵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달 학폭위에서 징계받은 A양(17)은 피해학생을 찾아가 “묻어버리겠다”고 협박했다. 피해학생의 신고로 “한 번 더 이러면 소년원에 보낼 것”이라는 경찰의 경고를 듣자 분노가 폭발한 것. 학폭법에 따라 가해학생의 처벌이 이뤄졌는데도 B양은 여전히 공포에 떤다.

이 때문에 서울·경기지역 일부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을 해결할 대안으로 ‘회복적 대화’ 도입을 논의 중이다. 피해를 회복하고 깨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인천 신흥중학교는 2013년 이 제도를 시범 도입해 운용해왔다. 김은영 신흥중 생활지도부장은 “학교폭력 사건이 접수되면 학폭위와 별개로 ‘회복적 서클’이 가동된다”며 “피해·가해학생이 서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대화를 중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복적 서클은 △사전서클 △본서클 △사후서클 등 세 단계로 진행된다. 피해학생이 가해학생과 대화를 원하면 쌍방 의사를 확인한 뒤 20~30분가량 가벼운 첫 미팅이 이뤄진다. 이 자리에선 대체로 말이 없거나 감정이 격해지는 경우가 많다. 가해학생이 중재자로 참석한 교사나 피해학생에게 욕을 하거나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등 딴짓을 하기도 한다. 깊이 있는 대화는 1~3시간씩 열리는 본서클에서 나온다.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의 이유와 당시 상대에게 느꼈던 감정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도록 한다. 이때 자신이 상대방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고 있다는 뜻에서 ‘섀도잉’을 하는 게 핵심이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그때 너무 힘들었어”라고 말하면 가해자가 “그때 너무 힘들었구나”라고 응답하는 식이다.

당사자 간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서로 소원을 주고받는다. 경기 고양시의 한 중학교에서 이뤄진 한 왕따 사건에서 피해학생은 △비속어 쓰지 않기 △뒷담화를 하지 않되 꼭 하고 싶다면 절친 한 명에게만 하기 등을 요구했다. 그러자 가해학생은 스스로 “다른 친구들이 피해학생을 괴롭힌다면 자신이 나서서 해결한다”고 약속했다. 본서클을 통해 피해학생의 아픔에 충분히 공감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제안이라는 게 학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본서클로부터 3주~한 달 뒤 ‘사후서클’을 열어 이 같은 약속이 잘 지켜지는지 확인한다.

경험자 96% “회복적 대화 좋아요”

교원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이 지난해 6월 회복적 대화를 경험한 학생 70명과 교사 12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학생 응답자 95.7%가 “다음에도 회복적 대화 과정을 통해 학교폭력을 해결하겠다”고 응답했다. 회복적 대화 이후 심경 변화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오해가 풀렸고 상대방과 더욱 친밀해졌다(51.4%) △문제가 잘 해결됐고, 친해지진 않지만 마음은 편하다(45.7%) 등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처럼 효과가 검증되면서 회복적 대화를 학폭법에 추가하는 내용의 법 개정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일부 여당 의원들이 개정안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복적 대화의 가장 큰 한계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여러 차례 만나 섬세한 대화를 나눠야 하기 때문에 단시간에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대화를 이끌 중재자도 필요한데 자격을 갖춘 교사나 학내 상담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박숙영 좋은교사운동 회복적생활센터 대표는 “지역상담센터 혹은 지역단체를 학교와 연결하는 등 외부 자원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현진 기자 ap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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