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교육보험의 추억

입력 2017-08-15 17:30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보험에 ‘교육’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목한 사람은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였다. 그는 “전쟁의 폐허에서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길은 교육에 있다”며 1958년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설립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58달러. 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들을 위한 것이 최초의 학자금 마련용 저축성 보험인 ‘진학보험’이었다.

문제는 판로 개척이었다. 고심하던 그는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찾아가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보험에 가입하면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설득했다. 동료들도 길거리로 나서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서라도 자식들 교육은 제대로 시켜야 하지 않겠느냐”며 거들었다. 여성 설계사들은 골목길을 돌며 빨랫줄에 기저귀가 널려 있는 집만 보면 문을 두드렸다. 처음엔 손사래를 치던 사람들이 하나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출발한 교육보험은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타고 1970~1980년대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개인보험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였다. 보험왕에 뽑힌 설계사 대부분이 “교육보험으로 승부를 걸었다”고 했다. 6대 생보사 중 막내로 출발한 대한교육보험은 창립 5년 만에 보유계약 56억원으로 업계 3위에 올랐다. 1964년엔 100억원을 돌파하며 2위로 뛰었고, 설립 9년 만인 1967년 정상을 차지했다. 보험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 기록이었다.

그 시절 부모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다달이 늘어가는 교육보험 통장을 보며 희망을 키웠다. 전셋돈이 모자라도 교육보험만은 헐지 않았다. 그 덕분에 수많은 아이들이 배움의 기회를 얻었고, 경제 발전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결혼하고 학부모가 된 1990년대 이후엔 상황이 변했다. 경제성장으로 가구 소득이 늘어나고 의무교육이 확대되는 등 시장 변화에 따라 교육보험 수요가 줄기 시작했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저축성 보험의 장점도 퇴색했다.

교육보험 인기가 시들해지자 판매를 중단하는 보험사가 늘었다. 3대 생명보험사 중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이미 상품을 없앴고 중견 보험사들도 잇달아 절판했다. 교육보험의 효시인 교보생명만 월 100건 정도 판매하고 있다. 자녀 보험이 저축성에서 보장성 위주로 재편된 뒤로는 시장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교보생명은 내년 창립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교육보험을 선보일 것이라고 한다. 서울 종로1가 1번지 금싸라기 땅에 ‘돈 안 되는’ 교보문고를 세운 신용호의 창립 정신 덕분일까. 어릴 때 가난과 병으로 학교도 못 가고, 배움의 갈증을 ‘천일독서’로 혼자 풀며, 무일푼으로 ‘교육보국’의 새 영역을 개척한 그의 일념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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