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 실험 30년…"풍경이 견뎌낸 시간까지 포착"

입력 2017-08-15 18:13   수정 2017-08-16 11:11

중견화가 유근택 교수, 17일부터 갤러리 현대서 개인전

현대인 평범한 일상·사물 접목
전통한지와 먹의 운치 살린 '방' '도서관' 연작 등 30점 선봬



[ 김경갑 기자 ] 중견 한국화가 유근택 성신여대 교수(52·사진)는 기존 관념적 한국화에 ‘일상’이라는 파격을 끌어들인다. 춘하추동 자연 풍광을 그리기보다는 평범한 일상의 사물을 보거나 현상을 경험했을 때 연상되는 우연한 느낌과 당시의 시공간적 상황을 덩어리로 만들어 색채와 형태로 풀어놓는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은 종종 추상화처럼 보인다. 한지의 거친 표면에 흐릿하게 그린 모기장 그림이나 서가를 배경으로 잡힐 듯 말 듯 겹쳐 그린 도서관 모습까지 그의 풍경화는 중첩된 감성으로 풍요롭다. 30년 넘게 집념과 끈기로 일궈낸 ‘유근택판 풍경화’가 조선시대 겸재(謙齋) 정선이 구현한 진경산수의 현대판처럼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7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시작하는 ‘유근택-어떤 산책’전은 먹번짐과 발림의 탁월한 기교와 탄탄한 붓질로 한국화 실험에 매진해온 작가의 삶이 얼마나 치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전시장을 채운 30여 점의 대형 풍경화는 2015년 이후 한국화의 새로운 진화를 보여주는 근작들이다.


유 교수는 전시장 1층에 걸린 최근작 ‘방’시리즈를 가리키며 “작년 여름 서울 성북동 자택에 머물렀을 때 눈에 문득 들어온 모기장을 그린 것”이라며 “천장과 연결된 끈을 끊게 되면 ‘툭’ 하고 떨어지면서 그 형태를 잃어버리는 모습에서 마치 영혼이 툭 떨어지는 모습을 본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고 말했다.

2015년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크로이츠베르크 도서관의 실내 풍경을 잡아낸 작품도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산수화에서 벗어나 손에 잡힐 만큼 가까운 일상을 보여준다. 회백색 화폭이 거의 꽉 차게 그린 도서관에는 빨래, 옷걸이, 풍선, 사다리, 욕조와 같이 서로 아무런 연관성 없는 물건들이 희미하게 떠다닌다. 피상적으로 보면 단조롭고 심심할 수 있지만 주변 풍경에 무뎌지기 전, 그것을 처음 접했을 때 섬광처럼 스쳐지나가는 사물에 대한 느낌을 잡아냈다는 게 유 교수의 설명이다.

그동안의 작업이 공간 자체에 주목했다면 이번 작업은 시간의 흐름을 전면에 배치했다. 하나의 풍경이 시간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하고 순환하는지, 일상의 사물들이 시간이 지나며 그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면서 어떤 에너지를 지니게 되는지를 산책하듯 캔버스에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분수’와 ‘산책’시리즈는 눈에 보이는 한순간이 아니라 대상에 누적돼 내재된 시간성을 담으려고 하는 작가의 의도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만약 화면이 한 그루 나무가 서 있는 어느 날의 풍경을 담고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그날 그 순간의 풍경이 아니라 그 나무가 견뎌낸 시간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최근 전통 한국화가 지닌 장르적 혁신 외에 재료의 특성을 성찰하는 새로운 작업 방식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장지를 여섯 번 배접한 뒤 물을 흠뻑 적셔 종이를 불린 다음 철솔로 마구 긁어서 한지를 일으켜 세우고, 조개껍데기 가루인 호분이나 불투명한 수채물감인 과슈와 템페라(기름과 아교질로 된 유제) 등 이색적인 재료를 섞어 채색하는 식이다. 전통 한지와 재료를 사용한 한국화임에도 서양화에서 유화 물감이 두껍게 쌓일 때 만들어지는 마티에르(질감)가 느껴지는 까닭이다. 가까이서 뜯어봐야 한지 위에 먹과 물감 등으로 그린 작품임을 알게 된다. 마티에르처럼 보이는 붓의 흔적 아래에는 한지의 거친 섬유질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전시는 다음달 17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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