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100일 잔치, 100일 기도

입력 2017-08-17 18:40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예부터 생후 100일이 되면 아기가 어려운 고비를 잘 넘겼다는 뜻에서 잔치를 열었다. 잔칫상에는 백설기와 인절미, 송편을 올렸다. 백설기의 ‘백(白)’은 100(百)세까지 장수하라는 뜻, 인절미는 속이 단단하라는 의미다. 송편은 속이 꽉 차라는 뜻에서 속을 가득 넣은 것과 마음이 넓으라고 속을 비운 걸 함께 올렸다.

100은 큰 수, 완전수, 성숙을 상징한다. 석 달 열흘이면 환절기를 넘어야 하므로 면역력이 약한 아이에겐 중요한 시기다. 1925~1930년만 해도 1세 미만 영아사망률이 평균 73%(조선총독부 자료)나 됐다. 그러니 아이의 무탈을 축복하고 건강을 기원하는 의례(儀禮)가 특별할 만했다. 100일 잔치는 아이가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출발점이자, 하객들이 아이를 사회적으로 공인하는 의식이기도 했다.

단군신화에서 곰은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고 사람 몸을 얻는다. 이때 100일은 오랜 인내의 시간이자 간절한 염원의 시간이다. 어떤 일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기원(祈願)이나 절대자를 향한 기도(祈禱)는 우리 의지의 표상이다. 대학입학 시험을 잘보게 해 달라는 ‘수능 100일 기도’, 심신의 치유를 비는 ‘신유 100일 기도’도 그렇다. 모두가 앞날의 행복을 기원한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이다.

정부나 기업, 사회단체들도 출범 초기에 ‘100일 계획’을 세우고, 100일이 지나면 특별 이벤트를 갖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취임 100일 회견에서 “이제 물길을 돌렸을 뿐, 구체적인 성과를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더 많은 과제와 어려움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적폐 청산’ 등 개혁 드라이브를 더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같은 날 발표된 리얼미터 주중집계에 따르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긍정평가가 71.2%로 취임 후 최하를 기록했다. 부정평가는 22.1%로 최고점이었다. 취임 3주차 84.1%까지 올랐던 지지율이 국회 인사청문회 이후 줄곧 하향세다.

물론 전임자들도 초반엔 인사 문제 등으로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와 81만 개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 16.4% 인상’ ‘화력발전소 폐쇄’ ‘원자력발전소 중단’ 등 메가톤급 정책을 한꺼번에 쏟아낸 게 지지율 하락을 부른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 등 안보·외교 점수가 가장 낮은 이유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남은 1725일이다. 정권 초기 의욕만 앞섰던 정책이 있다면 전후좌우를 살펴 면밀하게 조율할 때가 됐다. 괜한 ‘편가르기 오해’도 살 필요가 없다. 100의 순우리말이 ‘온’ 아닌가. 온국민의 힘을 모아 온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국가 최고경영자로서 역사에 길이 빛날 지혜를 발휘하길 기원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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