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도시 전체가 아틀리에…오 ! 베를린

입력 2017-09-10 13:06   수정 2017-09-10 13:18

슬렁슬렁 독일 여행 <1> 베를린

잿빛 장벽 수놓은 그래피티
예술가·스타트업 몰리는 '세계서 가장 섹시한 도시'

통일후 도시 공동화
버려진 공간을 예술가들에게 제공
갤러리 600여개 '핫한 도시'로 변신

유럽의 실리콘밸리
아트붐이 벤처붐으로
창업가 비자 늘리고 대대적 투자
다국적 창업도시로




독일과의 첫만남을 기억한다.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아일랜드로 어학연수를 떠났을 때였다. 3개월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됐는데 그 사이 1주일간 방학이 있었다. 그때마다 저비용 항공 또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처음 만난 도시는 쾰른이었다. 벨기에에서 뮌헨으로 향하던 중 야간 기차를 갈아타기 위해 들른 것이었는데, 사실 그땐 쾰른이 독일의 도시인지도 몰랐다. 독일 내 아는 지명이라곤 직항이 뜨는 프랑크푸르트와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가 열리는 뮌헨, 월트디즈니 로고의 모델로 알려진 노이슈반스타인 성이 있는 퓌센뿐이었다. 이들 또한 일부러 찾기보단 독일의 관문이기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나 체코 프라하로 가는 길에 있어 ‘덤’으로 끼워 넣는 코스다. 아직도 대다수 여행자들이 이렇게 독일을 찾는다. 서유럽에서 동유럽으로, 북유럽에서 남유럽으로 이동하는 중에 들르는 나라다.

하지만 지도를 조금만 찬찬히 훑어보면 독일이 얼마나 매력적인 여행지인지 가늠할 수 있다. 유럽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독일은 네덜란드와 프랑스, 스위스, 체코, 덴마크 등 총 9개 나라와 국경을 마주한다. 독일의 각 지방은 서로 다른 자연환경과 문화, 건축 양식 등을 지닌다. 게다가 독일은 관광 강국이다. 총면적 35만7000㎢, 한반도의 약 1.5배의 국토를 비행기와 기차, 버스, 지하철, 유람선 등이 촘촘히 연결한다. 독일이 여행지로서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 예술 도시로 도약


독일 여행을 할 때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단연 베를린이다. 많은 이들이 베를린은 여행지로서 선뜻 와 닿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소개한 베를린의 이야기가 상당히 무겁기 때문일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본부, 독일 분단은 물론 동서 냉전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한 시멘트 장벽, 그 위를 뒤덮은 험상궂은 그라피티와 스킨헤드족에 대한 소문, 최근 불거지고 있는 난민 문제까지 여행자들이 기대하는 유럽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실제로 만난 베를린은 비운의 잿빛 도시가 아니다. 우리에겐 여전히 낯설지만 꽤 오래전부터 베를린은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로 손꼽혔다. 통일 후 베를린이 새롭게 도약하게 된 것은 ‘예술’을 통해서였다. 2000년 초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이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면서부터다. 통일 후 베를린에는 주인 없이 버려진 공간이 많았다. 베를린시는 이를 아티스트들에게 제공했다. 뉴욕, 파리, 런던의 높은 물가를 견디지 못한 아티스트들은 드넓은 공간, 대도시로서 상상할 수 없는 저렴한 물가에 반해 베를린으로 몰려왔다. 머지않아 베를린에는 600여 개에 이르는 갤러리와 프로젝트 공간이 들어섰고 1만여 명의 예술가들이 베를린에 아틀리에를 꾸렸다. 이는 당시 뉴욕보다도 더 많은 수였다.


그렇게 시작한 베를린 아트 붐은 지금도 여전하다. 예술 도시로서 베를린의 진가를 확인하고 싶다면 매년 봄에 열리는 ‘갤러리 위크앤드’에 가보면 된다. 갤러리 위크앤드는 베를린의 주요 갤러리들이 합심해 전 세계 예술가들과 컬렉터를 초청하는 아트 페어다. 일반적인 아트 페어와 다른 점은 박람회장 같은 특정한 장소가 아닌 도시에 흩어져있는 갤러리에서 직접 열리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미술관과 갤러리는 40여 곳 정도지만, 브로슈어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올리지 않은 갤러리, 프로젝트 공간들도 각각 전시며 이벤트를 연다. 미술 관련 공간뿐인가. 상점, 레스토랑, 클럽 등 아티스트와 컬렉터, 미술 팬들의 취향에 맞춘 특별 행사를 준비한다. 그러다 보니 미테의 아우구스트 거리나 리니언 거리, 서쪽의 포츠다머 거리와 같은 갤러리 밀집 구역은 거리 전체가 축제장이 된다. 갤러리 위크앤드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갤러리 앞마당에선 우아한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컬렉터와 펑크족 차림의 미술 학도가 함께 바비큐와 맥주를 즐기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베를린에 훌륭한 미술관과 갤러리가 많지만 그중에서 꼭 찾아야 할 곳이 있다. 웬만한 국립 미술관 못지않은 컬렉션을 가지고 있다는 잠룽 보로스(Sammlung Boros)다. 요셉 보이스를 비롯해 볼프강 필만, 올라퍼 엘리아슨 등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걸출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잠룽 보로스는 히틀러의 벙커를 개조해 만든 갤러리이자 베를린의 현대사를 아우르는 독특한 사연을 품고 있다. 잠룽 보로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4000여 명을 수용하는 방공호로 지어졌다. 분단 시절 동독군의 군사 감옥으로 쓰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에는 베를린 최고의 하드코어 클럽으로 변신했다. 1시간 반짜리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미술 작품은 물론 벙커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스타트업의 도시

“베를린은 여전히 섹시하지만 ‘가난한’ 도시는 아니에요. 새로운 슬로건이 필요하죠.” 베를린 관광청의 홍보 담당자가 말했다. 한 나라의 수도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과거 베를린의 재정 상황은 독일 16개 주 중 바닥에 머물렀다. 하지만 최근 리서치 결과에 따르면 중위권으로 진입했다. 이 놀라운 변화는 유럽의 중심으로 떠오른 베를린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신 때문이다. 베를린은 ‘유럽의 실리콘 밸리’라는 타이틀을 노리며 전 세계의 젊은 창업가, 투자가들을 베를린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본래 유럽의 스타트업 허브로 불리는 곳은 런던이었지만, 브렉시트 이후 베를린이 차세대 스타트업의 메카가 될 거라는 전망이 솔솔 흘러나온다. 현재 베를린에는 1800~2400개의 스타트업이 활동 중으로, 전문가들은 5년 후 베를린의 스타트업 수가 런던을 제칠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핀테크(금융기술) 분야에 집중괘 있는 런던과는 달리 정보기술(IT)은 물론 패션, 음악, 음식, 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로 개발되고 있어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에 맞춰 베를린시와 독일 연방 정부는 대대적인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또 창업가 중 외국인 비율이 43%에 달하는 만큼 외국인 창업가를 유치하기 위한 비자 및 지원 혜택도 늘리고 있다.

전쟁의 상흔에 절로 숙연해지는 베르나우어 거리. 베를린 장벽의 역사와 희생자들이 사진이 늘어서 있는 이곳에서 스타트업의 뜨거운 현장을 맞닥뜨린다. 방공호로 쓰였던 폐공장이 창업자들의 아지트로 변신한 ‘팩토리 베를린’에서다.

팩토리 베를린은 2011년 오픈한 벤처 창업 단지다. 이곳에 트위터를 비롯해 온라인 음악 유통 플랫폼인 사운드 클라우드,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업체인 로켓 인터넷 등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이름난 기업만 들어선 것이 아니다. 1, 2층에 마련된 코워킹 스페이스에는 사업 구상에 한창인 창업가들과 프리랜서들이 어우러져 서로의 아이디어를 주고받는다. 팩토리 베를린은 멤버십을 통해 수준 높은 강의, 설명회 등의 모임도 제공한다. 독일 최고의 ‘스타트업 캠퍼스’라는 타이틀을 달만 하다.

베를린에 스타트업이 몰려들면서 격동의 변화를 맞이한 곳이 있다. 베를린의 ‘중심’을 뜻하는 미테(Mitte)지구, 그중에서도 지상철 하케쉐 마르크트역에서 지하철 로젠탈러 플라츠에 이르는 지역이다. 이곳은 구동독 지역으로, 오래된 건물과 음침한 동독식 아파트가 뒤섞여 있던 한적한 주택가였다. 통일 후엔 값싼 렌트비 덕에 젊은 디자이너의 개성이 담긴 부티크, 갤러리, 예술 서점, 소담한 식당과 카페가 문을 열었다. 베를린이 ‘제2의 뉴욕’으로, 또 스타트업의 중심으로 거듭나면서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전형적인 수순을 밟았다. 비상업적인 공간이나 독립적인 로컬 상점들은 사라지고 고급 부티크, 대형 브랜드숍이 들어섰다. 그렇다고 이태원이나 가로수길과 같은 수준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달라진 거리 또한 호응을 얻고 있다. 베를린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브랜드인 라라 베를린, 네덜란드의 아이웨어 브랜드인 에이스&테이트, 프랑스의 캐주얼 브랜드인 아페세, 명품의 빈티지 라인을 선보이는 가르멘츠 빈티지, 스페셜티 커피 스토어인 파이브 엘레펀트 등 특색 있는 매장들이 조화롭게 포진하고 있다.

다국적 문화가 담긴 식탁


전 세계 예술가, 창업가들이 베를린에 몰려들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바로 식문화다. 베를린에는 190여 개 국적의 외국인들이 산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이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매개체는 음식이다. 글로벌한 환경만큼 다채로운 음식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를 한 번에 둘러보기 위해 시장으로 향한다. 크로이츠베르트에 위치한 마르크트할레노인은 베를린의 식문화 변화를 이끈 주역이다. 고풍스러운 외관이 돋보이는 시장 내부에 들어서면 깜짝 놀라게 된다. 1981년에 지은 시장의 기본 구조는 그대로 간직하되 판매 부스, 메뉴를 현대적으로 꾸린 것이 인상적이다. 마르크트할레노인은 목요일 저녁에 찾아야 한다. 그래야 ‘스트리트 푸드 서스테이’라는 테마로 선보이는 다국적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두툼한 포크밸리를 얹은 베트남식 바오 버거, 미국식 비비큐(BBQ) 샌드위치, 이탈리안 홈메이드 파스타, 지중해 및 중동식 애피타이저인 메체 모둠 등 현재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푸드트럭의 메뉴들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다. 독일 및 유럽의 선별된 와인과 베를린의 크래프트 비어 또한 찾을 수 있다.

수준 높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도 증가하고 있다. 현재 베를린에는 미슐랭 1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 11곳, 베를린 2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 7곳에 이른다. 넷플릭스의 다큐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했던 팀 라우에는 베를린 출신이다. 그는 독일의 마스터 셰프를 선발하는 TV프로그램 ‘마이스터코흐(Meisterkoch)’에서 우승하며 독일 스타 셰프로 거듭났다. 팀 라우에는 아시아에서 영감을 받은 현대적인 유럽식 요리법을 선보인다. 그의 요리는 맛은 물론이고 예술적인 플레이팅으로 유명하다. 이와 함께 베를린을 찾는 미식가들에게 큰 호평을 받는 곳이 있다. 디저트만으로 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코다 디저트 바다. 오너 셰프인 레네 프랑크는 독일 북서부에 있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라비의 헤드 파티시에 출신이다. 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레시피로 만든 4~6가지 디저트를 내는데, 가볍고 로맨틱한 식사 메뉴로 즐기는 이들도 많다. 이 외에도 아인운터눌, 호바트 등의 레스토랑이 예상치 못한 미식의 세계를 선사한다.

베를린=글·사진 서다희 여행작가 mynextcity@naver.com

여행정보

베를린까지 직항편은 없다. 루프트한자 독일항공은 서울과 베를린을 잇는 가장 다양한 비행 스케줄을 제공한다. 프랑크푸르트 혹은 뮌헨을 경유하는데 노선에 따라 다른 항공기가 운행되는 것을 참고할 것. 좀 더 넓고 쾌적한 공간을 원한다면 세계 최대 규모의 항공기인 A380을 운행하는 프랑크푸르트 경유편을 선택한다. 일반 이코노미 좌석에 비해 50% 넓고 등받이가 130도까지 넘어가는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을 이용하면 더욱 편안한 비행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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