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채무 회피 위한 법인은 껍데기"… 지배주주 책임 명확히 해

입력 2017-09-15 19:36   수정 2017-10-27 17:05

<20> 회사의 법인격부인과 채권자 보호
대법원 2001년 1월19일 선고 97다21604 판결
대법원 2004년 11월12일 선고 2002다66892 판결

'법인격부인' 적용되는 두 경우
외형만 법인, 실제론 개인기업
파산 후 동일한 기업 세웠을 때

대법원의 판결
"지배주주 책임 회피 수단일 땐 신의칙 위반하는 법인격의 남용"

생각해 볼 점
회사에 독립된 법인격 부여는 법률관계 해결·투자 유인 목적
회사제 장점 악용 땐 제한해야

심영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회사는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은 회사 중 주식회사가 약 95%에 달한다. 주식회사는 법인으로서 독립적인 법인격을 가지고 주주는 유한책임을 진다. 그러나 이 원칙을 그대로 따르면 회사의 지배주주가 회사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사적으로 이용하면서 모든 책임을 회사에 미루는 경우 회사 채권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문제점이 생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판례가 인정하는 제도가 ‘법인격부인론(法人格否認論)’이다.

법인격부인을 주장하는 유형으로는 △회사 채권자가 회사의 배후자(지배주주)에게 회사 채무를 이행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 △도산한 기존 회사의 사업주가 다른 회사를 설립해 동일한 사업을 계속할 때 기존 회사의 채권자가 신설회사에 채무 이행을 요구하는 경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법인격부인을 이용해 돈을 갚을 자력이 있는 지배주주에게 책임을 지도록 함으로써 피해자를 구제한 것이 대법원이 2001년에 선고한 ‘97다21604 판결’이다.

대표를 피고로 한 채권 소송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들여다보자. 원고는 A주식회사로부터 오피스텔을 분양받고 계약금과 1, 2차 중도금을 지급했다. A회사 대표이사는 B였다. A회사는 분양대금을 받아 오피스텔 공사대금을 지급할 예정이었으나 분양이 저조해 공사가 중단됐다. 원고는 분양 계약을 해제하고 A회사에 자기가 지급한 계약금과 중도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A회사는 사실상 파산 상태였기 때문에 원고에게 분양대금을 돌려줄 형편이 아니었다. 원고는 A회사와 계약한 것이어서 법적으로 B가 반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A회사의 사실상 1인 주주인 B는 분양대금을 돌려줄 재산이 있었다. 그래서 원고는 A회사와 B를 피고로 해 소송을 제기했다.

B는 A회사뿐만 아니라 여러 회사를 설립해 이들 회사의 명의와 자신 개인 명의로 빌딩 또는 오피스텔 분양사업을 했다. A회사가 오피스텔을 신축 분양할 때 받은 분양대금의 거의 절반은 B 명의로 오피스텔 부지를 매입하는 데 들어갔고, 회사 채권자의 강제 집행에 대비해 이를 제3자 명의로 가등기했다.

‘법인격의 형해화(形骸化)’ 가 중요한 판단 근거

대법원은 “회사가 외형상으로는 법인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이는 법인 형태를 빌리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고, 실제로는 완전히 그 법인격의 배후에 있는 타인의 개인 기업에 불과하거나, 그것이 배후자가 법률 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함부로 쓰여지는 경우에는 비록 외견상으로는 회사의 행위라 할지라도 회사와 그 배후자가 별개의 인격체임을 내세워 회사에만 그로 인한 법적 효과가 귀속됨을 주장하면서 배후자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는 법인격의 남용으로써 심히 정의와 형평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 할 것”이라고 판결했다. 이어 “따라서 회사는 물론 그 배후자인 타인에 대해서도 회사의 행위에 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법인격을 부인해 회사의 배후에 있는 지배주주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회사가 지배주주의 개인 기업에 불과해야 한다. 이를 법인격의 형해화(形骸化)라고 한다. 형해화가 인정되려면 주주가 회사를 완전히 지배하고, 회사의 업무·재산과 지배주주 개인의 업무·재산이 구분되지 않아야 한다.

위 사건에서 대법원은 B가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A회사 주식을 소유하고 있고, A회사 재산을 가지고 B 명의로 토지를 매입한 것과 같이 A회사의 재산과 B의 개인 재산이 구분되지 않았으며, 주주총회나 이사회와 같은 법적 절차 없이 B가 개인적으로 회사 일을 결정한 것으로 볼 때 회사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형식상으로는 A회사의 책임인 분양대금 반환 의무가 B에게도 있다고 본 것이다.

채무면탈 목적 동일 신설회사도 책임

법인격부인을 인정하는 두 번째 유형은 회사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기 위해 기업 형태와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경우다. 대법원이 2004년 선고한 ‘2002다66892’ 판결이 전형적인 예다. 이 사건에서는 (주)이란 회사(기존 회사)가 채무를 갚지 않을 목적으로 새로 설립된 (주)토탈미디어이란 회사(신설회사)에 영업을 양도했다.

법원은 기존 회사와 신설회사 사이에 상호·상징·영업목적·주소·해외제휴 업체가 같거나 비슷하고, 주요 이사진과 주주 대부분이 기존 회사의 지배주주인 대표이사의 친인척이거나 기존 회사의 직원이었고, 신설회사는 대외적으로 기존 회사와 동일한 회사라고 홍보했고, 회장과 대표이사가 기존 회사와 신설회사에서 동일했으며, 신설회사가 기존 회사와 동일한 회사로 인식된 채 공사를 수주했다는 점을 들어 기존 회사가 채무면탈을 목적으로 기업 형태와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신설회사를 설립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기존 회사의 채권자가 신설회사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채무면탈 목적과 두 회사 사이의 실질적 동일성이 필요하다. 채무면탈 목적이 있었는지는 기존 회사의 폐업 당시 경영 상태나 자산 상황, 신설회사 설립 시점, 기존 회사에서 신설회사로 유용된 자산의 유무와 그 정도, 기존 회사에서 신설회사로 이전한 자산이 있는 경우 그 정당한 대가가 지급됐는지 여부와 같은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 법원은 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기업 형태와 내용이 실질적으로 동일한, 이미 설립돼 있는 다른 회사를 이용한 경우에도 적용해 회사 채권자를 보호한다. 한 사람이 여러 개(X, Y, Z)의 건설회사를 소유하면서 X회사의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X회사 자산과 사업권을 Y회사로, Y회사가 다시 Z회사로 차례로 양도한 경우에도 X회사의 채권자는 Z회사에도 채무 이행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법규정은 정의를 실현할 수 있어야

회사에 독립된 법인격을 주는 이유는 회사가 권리능력을 가지고 회사를 둘러싼 법률관계를 쉽게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독립된 법인격을 가진 회사는 구성원(투자자, 주식회사의 경우는 주주)과 분리돼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주식회사 구성원에게는 회사 업무로 인해 발생한 채무가 자신의 채무가 되지 않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주식회사 구성원의 책임을 자신의 투자금액 한도로 제한한다면 위험 부담을 가지는 모험사업의 투자를 유인해 거액의 투자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이런 장점이 있는 주식회사 제도를 이용해 경제활동이 활발히 이뤄진다. 그러나 법령의 규정이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해당 법규를 개정하거나 재해석할 필요가 있고, 법인격부인과 같은 법원칙을 만들 필요가 있다.

■ 권리능력 가진 법인, 자연인처럼 권리·의무의 주체로

권리능력이란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법률상 자격(지위)을 말한다. 법인은 자연인이 아니지만 법률에 따라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법인격을 부여받는다.

법인에는 사람의 집합체인 사단법인과 재산의 집합체인 재단법인이 있다. 회사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단법인이다. 회사의 구성원을 사원(社員)이라고 하며, 주식회사의 사원을 주주라고 부른다.

동업과 같은 공동 목적을 위한 사람의 결합체에는 조합이 있다. 조합은 구성원(조합원) 간의 계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구성원의 개성이 뚜렷이 나타나고 구성원의 합의와 관련 계약법(예: 민법 조항)에 의해 규율된다. 이에 비해 사단법인인 회사는 단체성이 강조되고 구성원들로부터의 독립성이 인정된다.

회사는 조직원리를 가지고 규정한 상법의 회사편에 따라 규율된다. 상법 회사편의 규정은 다양하고 많은 구성원을 가지는 회사를 대상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당사자의 의사 여부와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적용되는 강행법규성을 갖는다.

심영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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