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공연에 만연한 외모 등 비하 표현…"대중에 맞게 각색해야" vs "표현의 자유 보장해야"

입력 2017-10-04 16:06  



(양병훈 문화부 기자) #1. 뮤지컬 ‘벤허’(8월24일~10월29일, 충무아트홀 대극장)에는 귀족 빌라도가 남자 무용수들의 춤 공연을 보다가 그 가운데 한 명을 “잘 생겼다”며 가까이로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빌라도는 그에게 “몇살이냐”고 묻고 그 무용수는 “42살”이라고 대답합니다. 빌라도는 무용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꺼져!”하고 소리를 칩니다. 무용수는울상을 지으며 퇴장합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나이 비하라고 생각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장면은 극의 줄거리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2.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4월15일~6월18일)에는 여주인공 프란체스카가 남주인공 로버트에게 자신의 언니 키아라 얘기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프란체스카는 자신의 언니가 “남자들과 쉽게 잠자리를 하는 쉬운 여자였다”는 의미에서 “춤 추는 것 만큼 쉽게 다리를 벌려준 언니”라는 가사의 넘버(뮤지컬에 삽입된 노래)를 부릅니다. 이 작품의 제작팀은 “원작의 표현을 충실히 살린 것이며 각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무대공연에는 오늘날 TV나 영화에서 보기 힘든 비속어나 특정 나이·성별·인종을 비하하는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TV나 영화는 대중성이 강하기 때문에 표현에 대한 규제가 강하고 그런 표현이 나왔을 경우 여론의 역풍도 심하게 불지요. 하지만 무대 공연은 비교적 덜 대중적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아직(?) 과격한 표현이 나올 때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원작에 이런 표현이 있으면 각색하고 무대에 올리기도 합니다만 여전히 눈에 많이 띄는 게 사실입니다.

다른 예를 더 들어볼까요. 뮤지컬 ‘시라노’(7월7일~10월8일)에는 남주인공 시라노가 자신이 짝사랑하는 록산과 단 둘이 있기 위해 록산의 하녀를 집 밖으로 내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록산의 하녀는 누가 봐도 단번에 ‘뚱뚱하다’고 생각할 만한 체격의 인물이죠. 시라노가 하녀에게 “밖에 나가서 먹으라”며 음식을 쥐어줍니다. 하녀가 “배부르다”고 말하자 시라노는 “당신은 더 먹을 수 있어요”라고 말하며 하녀의 뚱뚱한 외모를 희화화합니다.

뮤지컬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해에는 국립발레단이 ‘라바야데르’ 공연을 하며 ‘블랙페이스’를 한 아랍계 아동을 무대에 등장시켰습니다. 블랙페이스는 얼굴을 시커멓게 칠하고 입술 부분은 밝은색으로 과장해 화장을 한 것으로 ‘블래킹 업(blacking up)’이라고도 불립니다. 블랙페이스는 19세기 백인 배우가 흑인을 표현하기 위해 쓴 무대 화장법으로 인종차별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검은 피부에 두꺼운 입술’이라는 고정관념을 그로테스크하게 과장했기 때문이죠.

이런 표현을 각색할 필요가 있을까요. 최근 공연계에서는 ‘고칠 수 있는 부분은 고치자’는 분위기가 일고 있습니다. 이유리 서울예술대 예술경영전공 교수의 말입니다. “극의 줄거리와 관련이 있고 등장인물의 특징을 설명하는 장면이라면 그런 표현이 나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장면에서 단지 자극적인 장면을 만들기 위해 이런 표현을 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벤허의 해당 장면은 부적절합니다.”

반론도 있습니다. 무대공연에서는 창작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부 교수의 말입니다. “무대공연에 TV나 영화와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습니다. 그보다 더 느슨한 잣대를 적용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런 걸 문제 삼기 시작하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기 때문이지요. 너무 적극적인 개입은 냉각효과를 가져와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습니다.”(끝)/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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