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재건축 시공사 선정 매표(買票)행위, '고무신 선거'와 뭐가 다른가

입력 2017-10-12 19:21   수정 2017-10-13 11:12

“선거판에서도 사라진 매표(買票)행위가 강남 재개발·재건축 부재자 투표에서 횡행한다니 시대를 역행하는 거 아닙니까”

평소 알고 지내는 부동산학과 교수가 최근 만난 사석에서 혀를 찼다. 그러면서 ‘고무신·막걸리 선거’ 얘기를 꺼냈다. 장터에서 누가 막걸리 한 되 받아주고 헤어질 때는 고무신 한 켤레 얹어주면서 한 표 부탁하던….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대 상황을 끄집어냈다.

깨끗하고 투명해진 사회라고 하지만 고무신과 막걸리 유전자(DNA)는 여전히 남아 있는 걸까. 서울 강남에서 재개발·재건축 수주전이 격화되면서 고무신과 막걸리는 오히려 애교로 보일 정도로 막대한 규모의 금품수수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표 한 장에 200만~300만에서 수천만원까지 쥐어준다는 제보도 있다.

금품수수의 온상은 부재자 투표다. 불가피하게 시공사 선정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조합원을 배려하기 위한 제도가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부재자 투표율이 80~90%에 달할 정도로 비정상적이다. 시공사를 뽑는 정식절차인 조합원 총회가 부재자 투표에 밀려 요식행위로 전락해버린 분위기다.

실제로 조합원 총회 현장투표에서 압승한 건설사가 부재자 투표에서 밀려 수주해 실패하는 기형적 구조가 현실화 됐다.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교통회관에서 열린 미성 크로바 아파트 재건축 총회의 경우 현장 투표 결과는 202표 대 118표로 GS건설이 앞섰다.

하지만 부재자 투표를 개표하자 결과는 완전히 뒤집혔다. 부재자 투표에서 618대 404로 크게 밀렸다. 모든 부재자 투표가 금품수수와 연결됐다고 단정 짓기는 무리다.

다만 건설사가 현장홍보요원을 동원해 처음에는 선물공세를 펼치다가 부재자 투표기간에 금품수수가 정형화되는 게 문제다. 돈을 안 쓰는 회사는 수주에 실패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금풍제공은 조합원들에게 정신적인 후유증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재자 투표지에 인증샷을 요구하고 확인되면 현금을 주거나 ”돈을 받고 안 찍으면 받은 사람도 처벌대상“이라며 은근히 협박하는 사례는 분명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금품제공을 근절하기 위해 행정 당국의 강력한 법 집행이나 건설회사의 자정노력이 물론 필요하지만 소비자(조합원)도 곰곰 따져 볼 게 있다. 조합원 입장에서 재개발이나 재건축사업은 내 집을 새로 지어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내 집을 지어줄 시공회사의 선택기준이 현금수수라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선거판에서 고무신과 막걸리가 사라진 건 나중에 “아차, 잘못 판단했구나”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일 것이다. 내 집을 지어야 하는 소비자의 행동도 고무신·막걸리 선거를 반면교사(反面敎師)삼아야 할 것 같다.

“고무신과 막걸리를 받으면 정치부패를 걱정해야 하듯이 시공사 선정과정에서 부재자 투표 대가로 돈을 받으면 나중에 내 집이 제대로 지어질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는 그 교수의 목소리는 아주 냉소적이었다.

김호영 한경닷컴 기자 en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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