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문재인 정부 가두는 우상들

입력 2017-10-26 18:08  

"베이컨이 말한 우상이 살아난듯
과학 버리고 도그마된 탈원전
허구와 편견에 '국가실패' 우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객관적인 눈으로, 관찰을 통해서, 내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지식으로 향하는 하나의 길이다.” 근대철학의 선두에 서서 과학시대를 이끈 프랜시스 베이컨이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한다(조대호 외, 《위대한 유산》).

베이컨이 1620년에 출판한 《신기관(Novum Organum)》에서 진리를 왜곡한다고 했던 네 가지 우상은 지금도 뜨끔하게 와닿는다. 인간이 집단으로 만들어낸 허구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편견 등을 가리키는 ‘종족의 우상’, 자신의 편협한 잣대로 세상을 보는 ‘동굴의 우상’, 의도적인 언어 왜곡이나 잘못된 언어 사용을 지적한 ‘시장의 우상’, 종교 등 믿음체계가 진리를 가리는 ‘극장의 우상’ 등이 그것이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선입견’ ‘편견’ 등이 곧 우상이라는 얘기는 다를 바 없다. 약 4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한국 사회는 이런 우상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문재인 정부가 속도전을 벌이듯 탈원전 로드맵을 밀어붙이고 있다. 탈원전이 이미 우상 반열로 올라선 분위기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대신 정치적 힘으로 탈원전을 몰고 가는 게 단적인 증거다.

시작부터 그랬다. 정부가 탈원전 공약을 떠나 에너지를 정권이 아니라 국가문제로 인식해 공론화를 하고자 했다면, 그 대상은 건설 중이던 신고리 5·6호기가 아니라 탈원전 그 자체여야 했다. 그것도 과학적이고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 정부 내내 공론화를 해도 감수하겠다고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정부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탈원전의 첫걸음이라던 신고리 5·6호기 중단을 둘러싼 공론화 결과가 나왔을 때 가졌던 일말의 기대도 빗나갔다. 건설 재개 결정이 났으면 정부는 그 자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함에도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탈원전은 대선 승리로 이미 국민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궁색한 주장까지 내놨다.

과학을 짓누르기는 탈원전 로드맵도 마찬가지다. 법에 따라 안전에 대한 과학적 기준으로 판단할 일임에도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 월성1호기 조기 폐쇄, 설계수명 연장 금지 등을 쏟아냈다. 과학과 합리성으로 중립을 지켜야 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아무 말이 없다.

우상은 적을 명확히 함으로써 에너지를 얻는다. 여기서도 예외가 없다. 원전이 죽어야 신재생에너지가 된다는, ‘반(反)원전·친(親)신재생에너지’라는 이분법이 그것이다. 이쯤 되면 탈원전이 우상이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한국 사회를 배회하는 우상은 탈원전만이 아니다. ‘가해자·피해자 프레임’이 있는 곳엔 꼭 우상이 존재한다.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 다 죽는다’는 전혀 검증된 바 없는 가설만 해도 그렇다. 중소기업의 낮은 생산성이나 글로벌 경쟁력, 보호와 지원 위주 중기정책의 실패 등 과학적 분석 따위는 설 땅이 없다. “노동소득 하락은 자본소득이 다 앗아간 탓”이라며 ‘친(親)노동’으로 질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성장잠재력 고갈, 혁신 부족, 산업구조 변화 등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시장이 실패하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가설도 우상이 된 지 오래다. 정부가 시장보다 더 잘할 수 없으면 ‘시장실패’보다 더 큰 ‘정부실패’를 낳는다는 사례연구가 아무리 쌓여도 소용이 없다. 통신시장이 대표적 케이스다. 문재인 정부는 한술 더 뜬다. 사업자와 소비자 간 대립구도를 만들어 ‘보편요금제’와 시민단체를 끌어들인 ‘통신요금 사회적 논의기구’까지 들고나왔다. 정치지형이 불리하다고 국회 대신 시민사회를 등에 업는다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일부 시민단체는 “촛불의 힘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명령을 따르라”고 주장한다. ‘정부실패’ ‘정치실패’에 ‘시민실패’까지 더해지면 ‘국가실패’로 가지 않는다는 법도 없다. 죽은 베이컨이 살아나 한국에 오면 촛불만이 진리라는 ‘시민의 우상’을 추가할지도 모르겠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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