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10배 징벌적 배상, 과잉입법이다

입력 2017-11-28 18:10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공정거래 법집행체계 개선 태스크포스 중간보고서’는 고(高)강도 기업 규제 방안을 담고 있다. 불법행위에 대한 과태료 2배 인상, 불공정 거래 형사처벌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 인상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가장 큰 논란거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액(현행법상 피해액의 3배)을 최고 10배로 올리겠다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가해자가 고의적·악의적·반사회적 의도로 불법행위를 한 경우 실제 피해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다.

공정위는 “현행 법체계로는 불공정행위 근절에 한계가 있다”고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 인상 검토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과잉 처벌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10배 손해배상’은 세계적으로도 흔하지 않아서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판례 중심인 영국과 미국, 캐나다 등 영미권 국가에서 주로 도입하고 있다. 생명과 신체에 큰 위협을 준 환경·식품·의료 분야에서 제한적으로 3배 이상 배상책임을 묻는다.

영미권에서도 손배 한도 제한

소송 남발 등의 부작용 탓에 ‘소송 천국’이라는 미국도 배상액 한도를 줄이는 추세다. 플로리다 등 15개 주는 징벌적 손해배상액 상한을 5배 이하로 제한한다. 루이지애나 등 5개 주는 원칙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배상 상한선을 명시적으로 두지 않는 주들은 통상 실(實)손해 2~4배에서 액수를 정한다. 영국도 과다한 배상에 제동을 걸고 있다. 상급 법원에 손해배상액을 무효로 하고 금액을 새로 산정할 권한을 주고 있다.

“대륙법 체계 국가에서도 확산되는 등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 등 많은 국가가 따르는 성문법 중심 대륙법 체계에선 한국과 대만 등을 제외하곤 사실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한 곳이 없다. 대만은 공평교역법(공정거래법)과 소비자보호법 등에 2~3배 배상제를 두고 있다. 공산주의를 경험해 정부 입김이 센 러시아와 중국이 일부 법에 2~3배 배상 조항을 두고 있을 뿐이다.

2000년대 초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논의했던 일본 독일 프랑스 등은 법제화를 중단한 상태다. 실손해 배상과 명확한 손해 산정 기준 등을 규정하는 대륙법 체계와 맞지 않아서다. 게다가 대륙법은 민사 책임과 형사 책임을 엄격히 분리하고 있다. 형사소송에서 가중 처벌을 했다고 해도 민사소송에 징벌적 처벌(손해배상)을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는 게 법리다. 이중·과잉 처벌이라는 것이다.

한국 처벌 수준은 세계 최고

유사 범죄를 막을 수 있다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예방 기능’을 크게 기대할 수도 없다. 소송 주 대상인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소송으로 인한 이미지 타격이지 손배액은 부차적이라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두고 있는 영국과 미국 기업들이 이를 도입하지 않은 프랑스와 독일 기업보다 소비자 권리를 더 옹호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우리나라에선 8개 법률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돼 있다. 하도급법, 대리점법, 가맹사업법, 제조물책임법,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이용·보호법, 기간제·단시간 근로자 보호법, 정보통신망법 등이다. 정부는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대규모 유통업법에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대륙법 체계 국가에선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처벌 강도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징벌적 손해배상 외에도 형사 처벌에다 과태료까지 부과한다. 우리나라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법률 체계와 법리를 따져 나왔다기보다 특정 정치·사회적 목적 달성을 위해 탄생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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