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표현이사, 등기이사와 같은 책임"… 중간관리자도 무한책임?

입력 2017-12-01 18:49  

<29> 사실상 이사의 책임
(대법원 2009년 11월26일 선고 2009다39240 판결)

사건의 개요
상부 지시로 허위 재무제표 작성
회사채 매입한 원고에 손해 끼친
회계부문 임원인 비등기 이사 A
"권한 없는 하급관리자…책임 없어"

대법원 판결
"직명 자체에 업무집행권 있어…'표현이사' A도 똑같이 책임져야"

생각해 볼 점
회사에 대한 영향력 작은데도
직책만 이사인 중간관리자에게
법정이사 수준 책임 물을 수 있나

심영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주식회사 경영의 중심에는 이사가 있다. 이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임한다. 이사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는 회사등기부에 등기된다. 이렇게 상법 규정에 따라 주주총회에서 선임한 이사를 ‘등기이사’라고 한다. 이에 비해 상법상 이사는 아니지만 단지 회사가 이사라는 직함을 준 사람을 ‘비등기 이사’라고 부른다.

이사는 이사회 구성원으로, 이사회의 업무 집행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또 회사는 이사 중에서 대표이사를 선임해 회사 업무를 집행하면서 대외적으로 회사를 대표하도록 한다. 상법은 이사에게 회사 경영에 관한 광범위한 권한과 재량을 주면서 그에 따른 의무를 지운다. 이사가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매우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된다. 이사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법령이나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그 임무를 게을리한 때는 제3자(회사 채권자 등)에게 연대해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런 엄격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실상 이사처럼 업무 집행을 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이사가 아닌 사람이 생겨나게 됐다. 예를 들면, 회사의 지배주주가 자신을 이사로 선임해 회사 경영을 담당하게 하면 이사로서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배후에서 회사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해 업무를 집행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에 지배주주는 법률상 이사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상법이 정한 엄격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상법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법률상 이사는 아니지만 ‘사실상 이사’에 해당하는 사람을 규정, 법률상 이사와 같은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첫 번째 유형은 회사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이사에게 업무 집행을 지시한 사람이다(업무집행 지시자). 대표적인 예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지배주주다.

두 번째 유형은 이사의 이름으로 직접 업무를 지시한 사람이다(무권대행자·無權代行者). 이 규정에는 ‘회사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라는 표현은 없다. 보통은 이사의 직인을 가지고 이사의 이름으로 업무를 집행하는 것이므로, 영향력 없이 이렇게 업무 지시를 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첫 번째 유형과 마찬가지로 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 유형은 이사가 아니면서 명예회장·회장·사장·부사장·전무·상무·이사 등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해 회사 업무를 집행한 사람이다(표현이사). 이 유형에서는 회사에 대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포함된다. 하지만 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도 포함돼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문제다. 이에 대해 답을 준 것이 ‘대법원 2009년 11월26일 선고 2009다39240 판결’이다.

등기이사 지시로 분식 결산

이 사건의 사실관계를 살펴보자. 피고 A는 X주식회사에 1981년 입사해 순차적으로 승진한 결과 1999년 1월 임원인 건설회계부문 이사(비등기)로 승진해 근무했다. X주식회사는 자체 결산 결과 1997 회계연도에 이어 1998 회계연도에도 계속해 재무구조와 경영 성과가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 회장 B와 대표이사 C는 회계본부장인 전무이사 D에게 “부채비율을 500% 미만으로 조작하고 배당률을 2%로 맞춰 결산하라”고 지시했다. D는 A에게 건설부문에서 최대한 재무제표를 조작해 위 지시에 맞추도록 지시했다. A는 국내건설 회계팀장과 해외건설 회계팀장에게 지시해 분식 결산에 의한 재무제표를 작성하도록 했다.

그 결과 다른 부문의 분식 결산과 합해 실제로는 X주식회사의 자산이 25조9595억원이고 부채가 36조2669억원이어서 자본이 10조3074억원 잠식됐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산이 26조7345억원, 부채가 22조8433억원, 자본이 3조8912억원으로 부채비율이 587%(당초 500%로 맞추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자 최소한 1998년 11월 말 금융감독원 제출 시의 부채비율 588%로 맞추라는 대표이사 C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인 것처럼 1998 회계연도 재무제표를 허위로 작성했다.

투자신탁회사인 원고는 X주식회사가 1999년에 발행한 회사채 약 3500억원어치를 매입했다. 그런데 X주식회사는 외환위기 과정에서 자금사정이 급속히 나빠졌다. 원고는 A가 지시한 분식회계에 따라 작성된 허위의 재무제표를 진정한 것으로 믿고 회사채를 매입했으며, 만약 분식회계가 없었다면 X주식회사는 회사채 발행이 불가능했고 원고가 이를 매입할 가능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원고는 분식회계로 발생한 회사채 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해를 A에게 청구했다.

A는 자신이 상부의 지시를 받은 하급 책임자에 불과하고 상법이 규정하고 있는 사실상의 이사는 대주주나 그룹 기획조정실장 등 법률상 이사가 아니지만 회사의 주요 업무 집행에 관해 법률상 이사 이상의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자를 의미하므로, 자신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아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표현이사도 권한 여부 관계없이 ‘책임’

그러나 대법원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유형은 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가진 자를 전제로 하고 있으나, 세 번째 유형은 직명 자체에 업무집행권이 나타나 있기 때문에 그에 더해 회사에 대한 영향력을 가진 자일 것까지 요건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 판결 이후 하급심 법원에서는 표현이사에 해당하는 사람은 실제 이사와 동등한 권한이 있었는지에 관계없이 책임이 있다고 했다.

사실상 업무를 행한 자의 책임 강화

상법의 입법 취지는 회사의 법률상 이사가 아니면서 법률상 이사에게 지시하거나, 법률상 이사의 이름으로 또는 이사 등 회사 업무를 집행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인정될 만한 명칭을 사용해 사실상 회사 업무를 집행한 자의 책임을 강화하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회사에 대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회사에서 일정한 조직을 관리하면서 업무를 집행하는 사람(보통은 비등기 이사가 여기에 포함된다)은 직접 법률상 업무집행담당 이사에 해당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한 사실상 이사에 해당해 매우 엄격한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에 대한 영향력도 없고 이사와 동등한 권한을 갖지 않은 중간관리자에게도 이사와 같은 엄격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이사에겐 '선관주의의무'와 '충실의무' 있어

이사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가지고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 즉 ‘선관주의의무(善管注意義務)’라 한다. 또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이것을 ‘충실의무’라 부른다.

대법원이 2009년 11월26일 선고한 ‘2009다39240’ 사건에서 그룹 회장 B는 업무집행 지시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사와 동일한 책임을 진다. 대표이사 C는 법률상 이사로서 회사와 제3자에게 책임을 진다.

회계본부장 전무이사 D는 법률상 이사라면 이사로서의 책임을 지고 법률상 이사가 아니면 A와 마찬가지로 표현이사로서 이사와 같은 책임을 진다. A, B, C, D는 동일한 분식회계에 대해 책임이 있으므로 함께 연대책임을 진다.

심영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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