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 "6년간 맘껏 연구하라"… 한국, 논문 써대느라 허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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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12-05 19:50   수정 2017-12-06 09:53

미국 대학 "6년간 맘껏 연구하라"… 한국, 논문 써대느라 허덕

논쟁 사라진 한국 경제학계
(3)·끝 - 단기 성과 급급한 한국 경제학계

미국, 젊은 교수들에게 무한자유
첫 1~2년 고민이 연구성과 좌우…수업부담 없고 논문 안 써도 돼
맨큐·크루그먼·피케티 등 석학 20대부터 한 주제 천착 성과 내

한국, 20~30대 논문 쓰다 '훅'
논문 실적 없인 교수임용 꿈 못꿔…"케인스도 젊어선 한국교수 못 될것"
테뉴어까지 9년간 3번 심사…노벨상급 논문써도 양 부족땐 탈락



[ 황정환 기자 ]
대런 애스모글루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경제학과 교수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와 2012년 펴낸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15년간의 공동연구 산물이다. 애스모글루 교수는 MIT 조교수가 된 지 4년 후인 30세 때부터 이 주제를 파고들었다. 그는 이 기간 정치 경제 역사를 넘나들었다. 이렇게 해서 그가 내린 결론이 ‘국가의 흥망은 제도가 결정한다’이다.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를 가진 나라는 흥했고,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를 가진 나라는 쇠퇴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대히트를 쳤고 ‘신(新)국부론’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 가능할까.


미국 대학, 채용 후에도 ‘장기 연구’ 보장

애스모글루는 터키 출신이다.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26세에 MIT 조교수 자리를 얻었다. 이후 국가의 흥망성쇠를 다루는 장기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학계에선 “한국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라고 했다.

한국과 미국은 교수 채용과 인사 시스템이 다르다. 미국에서 매년 1월 미국경제학회 세미나가 있는데 이때 박사 과정 졸업생을 위한 채용 시장이 열린다. 박사 과정 졸업생들은 각 대학 교수와 면접을 보고 자신의 연구를 소개할 기회를 얻는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인터뷰와 세미나, 박사 과정 때의 잠재력을 보고 ‘참신한 박사’를 뽑는 것”이라고 했다.

폴 크루그먼 뉴욕 시립대 교수,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 등 경제학계 석학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20대 초중반부터 경제학자의 길을 걸었다.

채용 이후에도 미국 대학은 상당한 연구의 자유를 보장한다. 보통 박사 경력만으로 신규 채용된 교수에게는 정년보장(테뉴어) 심사 때까지 6년이 주어지는데, 첫 1~2년은 수업 부담도 주지 않고 논문을 써야 할 의무도 없다. 예컨대 미국 시카고대는 6년간 정량적인 연구 성과를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후 평가는 냉정하다. 시카고대에서 공부했던 한 교수는 “몇 년이 걸리든 최고의 논문을 내놓으라는 요구는 테뉴어 이후에도 계속된다”며 “정교수가 됐다고 적당히 지내는 건 미국에선 힘든 일”이라고 했다.

“좋은 논문 많이 쓰라”는 한국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한마디로 ‘좋은 논문을 많이 쓰라’는 게 한국 대학의 요구다. 국내 1위 서울대도 마찬가지다. 미국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A교수는 “(거시경제학의 창시자) 케인스가 다시 살아나도 젊어선 서울대 교수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임용 단계부터 평균 4~5편의 논문 실적을 요구하는 서울대에 갓 박사학위를 받은 젊은 경제학자는 서류조차 내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학부장도 “신인 연구자가 서울대 임용 기준을 넘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아이디어가 샘솟는 젊은 시절을 미국에서 다 보내고 마흔 언저리에 한국에 오면 미국처럼 20대부터 한 주제에 매달리는 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교수 채용 뒤에도 중장기 연구에 손을 대긴 쉽지 않다. 서울대는 보통 채용 이후 9년간 세 번 심사를 거친다. 채용 2년 만에 재임용 심사가 기다리고 있고 그로부터 2년 뒤 부교수 승진 심사, 이후 5년 뒤에 정년보장 심사가 이어진다. 학부 단계에선 연구의 질을 평가하지만 다음 단계에선 논문 양이 관건이다. 대략 9년간 학계에서 상위 20위권에 드는 유명 학술지에 3~4편의 논문을 실어야 기준을 맞출 수 있다. 양을 채우기 위해 속죄하듯 국내 학술지에 논문이나 정책연구결과를 올리는 교수도 많다. 설령 노벨상급 논문을 써도 양을 못 채우면 서울대에서 정년보장을 받기 힘들 정도다. 정년보장 이후에는 각종 제약이 사라지지만 이때부터 연구에 흥미를 잃는 교수가 많다. 연구 성과에 따른 보상 차이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대학 어디나 비슷하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달 국내 경제학자 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8%가 ‘논문 질보다 양을 중시하는 성과 평가 방식이 혁신적 연구와 중장기 연구를 가로막는다’고 답했다. 연구욕이 왕성한 교수 중에는 정년보장을 뿌리치고 미국 대학으로 옮겨 가기도 한다. 한 교수는 “논문 양을 따지는 정량평가라도 있어야 그나마 연구하는 학자도 있는 게 현실”이라면서도 “한국 경제학계가 한 단계 성장하려면 교수 평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절간' 같은 한국은행… 경력관리 '정거장' 된 KDI

제 목소리 못내는 경제 엘리트
통찰력 안 보이는 한은 보고서
정책 방향 다를 땐 공개 않기도

국가 미래전략 못 그리는 KDI
교수되려 잠시 머무는 곳 전락

한국은행은 스스로 국내 최고의 ‘경제학 두뇌 집단’이라고 자부한다. 2300여 명의 직원 중 경제학 박사만 170여 명(지난 9월 말 기준)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하지만 막상 경제 현안에는 제 목소리를 낼 때가 드물다. 폐쇄적이고 고립적인 한은의 모습이 ‘절간 같다’고 해서 ‘한은사(韓銀寺)’라고 불릴 정도다. 한은의 전직 고위간부는 “과거 한은이 ‘구조개혁이 시급하다’고 강하게 주장하니 정부에서 ‘중앙은행 업무나 잘하라’는 식으로 한소리 하더라”며 “그런 일이 쌓이다 보니 한은이 선뜻 목소리를 못 낸다”고 말했다.

한은이 발간하는 보고서도 두루뭉술하다는 평가가 많다. 한은은 2012년 ‘BOK 이슈 노트’라는 경제 현안 보고서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년 발표 횟수를 줄이더니 올해는 단 한 차례도 내지 않았다. 한은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경제학계 원로는 “한은이 내부적으로 연구하고 공개하지 않는 보고서도 꽤 있다”며 “정부 정책과 방향이 다르면 (보고서를)걸러내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현안 분석뿐 아니라 중장기 연구도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2014년 취임한 이주열 한은 총재가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 강화를 재차 강조하면서 올 들어 저출산·고령화 대응책 관련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뤄졌지만 인력 부족과 과도한 업무량 등을 이유로 중장기 연구는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한은 관계자도 “한국의 경제 규모에 비해 한은이 운영하는 경제연구원 규모가 너무 작다”며 “한은이 통찰력 있는 보고서를 내려면 지금보다 조사 기능과 연구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책 연구소 상황도 비슷하다. 한국의 간판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과거 국가 미래 전략을 그렸다. 지금은 아니다. 관(官)에서 시장으로 경제의 무게중심이 이동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연구의 호흡’이 짧아져서다.

KDI 출신 한 교수는 “예전처럼 KDI가 주도적으로 정책 제안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며 “정부 입맛에 맞는 맞춤형 보고서를 쓰다 보면 사명감이 떨어지기 마련”이라고 토로했다. 국립대의 한 경제학과 교수는 “KDI뿐 아니라 국책 연구소는 기본적으로 정부 용역기관”이라며 “발주기관의 요구에 따라 보통 2~3개월 안에 보고서를 써내야 하니 선행 연구와 외국 자료를 베껴넣은 보고서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건 물론이다.

국책 연구소가 세종시로 이전한 것도 연구 역량에 타격을 입힌 측면이 있다. ‘조직의 허리’이던 중견 연구자들이 세종시 이전 과정에서 대거 이탈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과거 국책연구소 중엔 서울대보다 대우가 좋은 곳도 있었지만 지금은 경력 관리를 위해 잠깐 머무는 ‘정거장’ 취급을 받는다”는 자조가 나온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피케티 열풍'의 힘은 300년 데이터… 한국엔 제대로 된 통계 없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2013년 펴낸 《21세기 자본》은 지금까지 세계 30개 언어로 번역돼 220만 권 이상 팔렸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r>g) 부의 불평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그의 주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평등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커진 상황과 맞물려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피케티 현상’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피케티 전에도 부의 불평등을 지적하는 이론은 많았다. 그런데도 그의 주장이 유독 세계적 반향을 일으킨 건 그가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 통계를 적극 활용한 덕분이다. 그는 현란한 수학적 기법을 쓰는 대신 영국 프랑스 등 20여 개국의 과거 300년간 세금 자료를 이용해 ‘r>g’라는 이론을 도출해냈다.

그렇다보니 이후 피케티 이론을 둘러싼 찬반 논쟁도 이론의 방향성보다 데이터의 정확성이 핵심 쟁점이 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피케티가 이용한 데이터가 부정확하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피케티는 이에 맞서 ‘분석을 위한 단순화 과정’이라고 반박했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한국은 기본적으로 미국이나 유럽 연구자들이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철학적, 역사적인 지적 자산이 부족한 데다 미국에 비해 아직 자료 양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국책 연구원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학계 관계자도 “한국은 데이터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기존에 취합된 데이터도 신빙성이 낮다”며 “연구에 필요하지만 돈이 안 되니까 민간에서 생산하기 힘든 데이터도 많다”고 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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