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 대신 머리카락으로 부대끼는 서민의 삶 재현

입력 2017-12-11 17:12  

사실주의 화가 황재형 씨 14일부터 가나아트센터 개인전


[ 양병훈 기자 ] 머리카락이 본드와 뒤엉켜 캔버스에 붙어 있다. 고된 노동과 피곤함에 덩어리진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보는 것 같다. 머리카락은 캔버스 위에서 이리저리 뻗으며 특정 형상을 재현했다. 주름살이 깊게 팬 나이든 여인의 얼굴을 그린 것(작품명 ‘드러난 얼굴’)도 있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생사를 모르는 자식의 소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새벽에 홀로 깨어Ⅱ-세월호 어머니)도 있다. 황재형 작가(65)가 실제 사람의 머리카락을 이용해 만든 작품들이다. 황 작가는 “머리카락은 특정 인물이 살아온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것이고 생명의 순환 과정 그 자체”라고 말했다.

황 작가 개인전 ‘십만 개의 머리카락’이 오는 14일부터 다음달 28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이번 개인전에서 황 작가는 작품 30여 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대부분이 머리카락을 캔버스에 붙여 만들었다. 작품이 재현한 대상은 노동운동을 하는 여공, 판자를 얼기설기 엮어 지은 허름한 공동주택,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새벽부터 인력시장에 나온 인부 등 서민의 생활 모습이다. ‘노동’ ‘가난’ ‘가족’ 등이 그의 작품을 읽는 키워드다.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붙어 있는 모습은 보는 사람에 따라 ‘징그럽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때문에 인간 삶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황 작가는 “머리카락으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지만 실행에 옮긴 건 2년 전부터”라고 말했다. 예술가가 머리카락으로 그림을 그린 것은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기 어렵다. 그는 이전에도 석탄이나 흙을 물에 개서 물감으로 쓰는 등 미술 재료 사용에서 남다른 시도를 많이 했다. 지금은 흔해졌지만 그가 처음 이런 작품을 내놓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거의 없던 방식이다. 황 작가는 “작품에 쓰인 머리카락은 대부분 주변 사람에게서 기증받았다”며 “작품을 작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이를 기증한 사람도 참여해 함께 만든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황 작가는 한국 민중미술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된다. 1981년 중앙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1982년 이종구, 송창 등과 함께 작가 모임 ‘임술년(壬戌年)’을 만들었다. 모순된 사회 현실에 저항하는 리얼리즘적 작품활동을 하자는 게 이 모임의 취지였다. 황 작가는 노동자 삶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1983년 강원 태백시의 탄광촌으로 들어갔으며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다. 가나아트센터 지원을 받으며 이 센터의 소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가나아트센터가 7년 만에 여는 개인전이다. 오는 23일 오후 3시에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마련돼 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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