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FCC "통신망은 공공재 아닌 상품… 시장원칙에 따라야"

입력 2017-12-15 17:34   수정 2018-03-15 11:10

미국 '인터넷 망중립성' 폐기

인터넷 세상 판이 바뀐다
버라이즌 등 통신사 영향력 커질 듯
구글·아마존 등 단기 충격 불가피
스타트업엔 신규 진입장벽 될 수도



[ 뉴욕=김현석 기자 ]
망중립성(net neutrality)을 고속도로에 비유하면 도로 관리주체가 차량 종류나 적재중량, 제한속도 등을 제한할 수 없게 하는 원칙이다. 미국은 망중립성을 폐지하면서 큰 트럭이나 버스, 무거운 짐을 실은 차량 등에 추가요금을 매기거나 속도제한 혹은 통행금지 조치까지 내릴 수 있게 됐다. 통신사 등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가 구글, 넷플릭스 등 인터넷·콘텐츠 기업을 대상으로 사용량, 속도 등에 따라 요금을 차별화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치열한 견제와 경쟁 사이

망중립성은 인터넷 기업인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등이 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주된 배경 중 하나다. 통신사업자가 구축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엄청난 트래픽을 유발하며 성장했지만 접속료 외의 추가비용은 내지 않아도 됐다. 구글, 아마존 등은 그동안 “망중립성이 없어지면 ISP들이 소비자에게 전달될 콘텐츠에 대한 게이트키핑 역할을 할 것”이라며 폐지에 반대해왔다.

통신사업자인 버라이즌 등 ISP들은 수익성이 떨어지자 구글, 넷플릭스 등이 많은 트래픽을 유발해 망 운영과 투자가 어려운 만큼 이들로부터 비용을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엄청난 데이터가 오가야 하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자동차, 스마트시티 등이 본격화하려면 5세대(5G) 네트워크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이들은 몇 년간 5G 네트워크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과실을 따먹은 구글 등이 돈을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지트 파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은 14일(현지시간) 망중립성 폐지 방안이 통과된 뒤 “네트워크를 공공재로 취급하는 규제가 광대역 투자를 침체시켰다”며 “5G 네트워크로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통신사 勝, 콘텐츠 기업 敗

망 중립성 폐지로 ISP들은 데이터 트래픽을 많이 발생시키는 인터넷·콘텐츠 기업에 추가 요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 컴캐스트는 NBC유니버설을, 버라이즌은 야후와 AOL을 합병해 소유하고 있다. AT&T도 타임워너와의 합병을 추진 중이다. ISP가 자신의 콘텐츠를 넷플릭스, 구글의 유튜브 등보다 우선해 차별적으로 서비스하면 판을 흔들 수도 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거대 인터넷 기업은 단기적으로 비용이 높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들은 충분히 비용을 감당할 수 있고, 그 비용을 소비자 등에 전가시킬 능력도 있다. 차별적 요금제가 시행되면 자금 여력이 없는 인터넷·콘텐츠 분야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은 구글 등과 경쟁하기 힘들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망중립성 폐지가 진입장벽 역할을 해 구글 등이 오히려 독과점을 강화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14년 망중립성 논란 때 찬성 선봉에 섰던 넷플릭스가 최근 급성장한 뒤 망중립성 폐지 반대에 적극 활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안젤로 지노 CFRA리서치 애널리스트는 “단기적으론 변화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일부 소비자는 빠른 광대역망을 쓰는 비용이 상승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공정거래 문제를 다루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등의 사후규제가 있기 때문에 당장 노골적인 이용자 차별이나 불공정거래 등이 일어날 개연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관측됐다.

◆다시 정책이 뒤집힐 수도

FCC가 통과시킨 방안은 연방관보에 게재된 지 60일이 지나 확정된다.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에릭 슈나이더만 뉴욕주 검찰총장은 FCC 표결 직후 성명을 내고 “FCC 표결은 뉴욕 소비자를 비롯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터넷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큰 타격”이라며 “망중립성 불법 폐기를 중단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 등은 의회에서 망중립성에 찬성하는 민주당 의원과 일부 공화당 의원을 움직여 FCC의 결정을 뒤집을 법안을 마련할 계획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우리는 압도적인 대중이 망중립성 정책을 누릴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며 “다른 크고 작은 망중립성 지지자들과 함께하면서 강력하고 강제할 수 있는 (망중립성) 보호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망중립성은 2008년부터 논란이 돼왔다. 2008년 컴캐스트가 많은 트래픽을 유발하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 비트토런트의 서비스를 차단시킨 게 시발이었다. FCC는 당시 망중립성 원칙에 따라 서비스 차단을 풀라는 명령을 내렸다. 2010년엔 ISP가 인터넷망을 모두에 공개하고 차별하면 안 된다는 ‘열린 인터넷’ 정책을 발표했다. ISP들은 FCC를 연방법원에 제소했고, FCC는 법적 공방 끝에 2015년 2월 망중립성 원칙을 도입했다.

공화당은 망중립성에 계속 반대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말 당선되자마자 망중립성 폐지를 주장해온 파이 위원장을 FCC에 앉혔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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