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하나 믿을 게 없었다"… 2017년 충격의 사건들

입력 2017-12-15 17:52  

경찰팀 리포트

'아니면 말고' 사람잡는 마녀사냥
추악한 민낯 드러낸 '어금니 아빠'
몰카가 된 IP카메라…집안도 해킹



[ 황정환/장현주/배태웅 기자 ] 올해 대한민국은 ‘신뢰의 위기’에 몸살을 앓았다.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의혹 제기로 무고한 시민이 하루아침에 ‘죽일 놈’이 되는 ‘마녀사냥’이 유독 기승을 부렸다. 희귀병을 앓는 딸을 꿋꿋이 길러낸 ‘천사아빠’는 아내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고 딸의 친구까지 무참히 살해한 ‘사이코패스’란 사실이 드러났다. 집을 지키기 위해 설치한 네트워크(IP) 카메라는 내 은밀한 사생활을 찍는 ‘몰래카메라’가 됐다. 한국경제신문은 올해 사회 이슈로 떠올랐던 주요 사건·사고를 통해 ‘불신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봤다.


반복되는 ‘인터넷 마녀사냥’

지난 9월 ‘240번 버스기사’ 사건은 ‘인터넷 마녀사냥’의 위험성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서울 광진구를 지나던 240번 버스기사가 “아이가 혼자 내렸다”며 차를 세워달라고 요구한 아이 엄마의 호소를 매몰차게 거절하고 욕설까지 했다는 인터넷 글에 여론은 들끓었다. 한 언론사가 사실관계 확인 없이 해당 글의 취지 그대로 보도하면서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버스기사 김모씨(60)는 인터넷상에서 ‘악마’가 됐다. 그러나 관계 당국의 조사 결과는 달랐다. 안전 문제 때문에 정류장이 아닌 곳에 버스를 세우긴 힘들었고 욕설을 하지도 않았다. 누명을 벗은 김씨는 “악플에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수 고(故) 김광석 씨 딸 타살 의혹 사건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김씨의 부인 서해순 씨가 2007년 친딸 서연양을 살해했다는 이상호 고발뉴스 대표의 의혹 제기에 서씨는 갑자기 ‘살인자’가 됐다. 이 대표는 나아가 1996년 자살한 김씨도 서씨에 의해 타살된 것이란 주장을 했다. 법의학자들은 김씨의 사인이 명백한 자살이란 의견을 냈지만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이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 결국 경찰이 정식 수사에 나섰고 그 결과 사실무근인 것으로 드러났다. 서씨는 매일 80㎞를 오가며 장애를 앓던 딸의 등하교 수발을 들었으며 사망 한 달 전 서연양은 서씨에게 “절 이렇게 키워줘 고마워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촉망받던 젊은 문학도였던 박진성 시인(39)은 지난해 10월 “미성년자인 나를 박씨가 성희롱했다”는 한 트위터 글에 성범죄자로 몰렸다. 시집 출판이 취소되는 등 사회적 매장을 당했다. 1년여에 걸친 법정싸움 끝에 내려진 결과는 무혐의. 그러나 삶은 회복되지 않았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던 그는 지난 2일 자살까지 시도했다.

국가 기관에 대한 불신이 이처럼 반복되는 마녀사냥의 근본 원인이란 지적이 나온다. 경찰 등 국가기관이 권력의 힘에 굴복해 진실을 숨겨왔다는 통념이 인터넷을 더 신뢰하는 ‘불신 사회’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9~10월 성인남녀 1100명을 대상으로 한 형사사법기관 신뢰도 설문조사에서 ‘경찰을 신뢰한다’는 시민은 23.1%에 그쳤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경찰 검찰 언론 등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한 가짜뉴스에 의한 인터넷 마녀사냥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시스템 부실 드러낸 ‘이영학 사건’

유전병인 거대 백악종을 앓는 딸을 꿋꿋이 길러 ‘어금니 아빠’로 대중에 알려진 이영학이 딸 친구인 여중생을 살해한 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의 시스템 부실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다.

먼저 이 사건에서 경찰의 실종신고 대응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 9월30일 경찰은 피해자 김양(14)의 어머니에게 “아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중랑서 112상황실은 신고를 접수하고 ‘코드1’로 분류했다. 코드1 지령이 내려지면 최소 두 명 이상의 경찰이 즉시 출동해야 하지만 아무도 대응하지 않았다. 경찰은 김양이 이영학의 집에 놀러갔다는 정황도 파악하지 않고 방관했다. 김양은 그로부터 13시간 뒤 살해됐다.

뿌리 깊은 경찰 조직 내 칸막이 문화도 비극을 낳는 데 일조했다. 중랑서 형사과는 이영학을 부인 최씨(32)의 투신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내사 중이었다. 실종수사팀은 이 사실을 사건 발생 사흘 후에야 알았다. 서장은 나흘 후인 10월4일 김양의 실종이 범죄와 연관돼 보인다는 보고를 받았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 사건은 한 ‘사이코패스’의 범죄만이 아니라 경찰의 실종자 수사 시스템의 실패가 낳은 것”이라며 “매뉴얼이 있었지만 아무도 따르지 않았고 경찰서 내 공조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생활이 없다”…커지는 해킹 공포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블록체인 등 기술 진보는 종전엔 접하지 못한 새로운 범죄를 탄생시켰다. 좀도둑을 막기 위해 집 안에 설치한 IP 카메라가 주인의 사생활을 찍는 몰래카메라가 됐다. 경찰은 11월 IP 카메라 1600여 대를 해킹해 12만7000여 차례 무단 접속해 사생활을 훔쳐본 29명을 검거했다. 평범한 가정집 거실에서 속옷만 입은 채 텔레비전을 보고,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여성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졌다. IP카메라에서 시작된 IoT 해킹은 앞으로 AI스피커, 드론(무인항공기), 스마트카 등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희조 고려대 정보통신대 교수는 “IoT 시대엔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정보, 입력하지 않은 정보의 유출이 발생한다”며 “사람의 신체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드론·스마트카로 해킹이 확산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터를 볼모로 몸값을 요구하는 ‘랜섬웨어’ 역시 더욱 지능화할 전망이다. 올해 나타난 변종만 9만6000여 개에 달했다. 문종현 이스트시큐리티 이사는 “보안 패치가 안 된 초기 소프트웨어에 대한 랜섬웨어 공격이 늘 것”이라며 “랜섬웨어로 위장한 치명적인 사이버테러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황정환/장현주/배태웅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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