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은모든 씨 "15년간 소설 20편 응모했지만 고배… 주(酒)여, 드디어 독자들과 건배하네요"

입력 2017-12-31 17:11   수정 2018-01-01 06:45

[ 심성미 기자 ] “소설을 써야겠다는 꿈 말고는 없었어요. 술도 잘 마시고,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해 글을 안 쓰고 살아도 그럭저럭 재밌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어요. 하지만 소설을 관두면 제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2018 한경 신춘문예에서 ‘애주가의 결심’으로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은모든 씨(37·본명 김혜선)는 2000년 동덕여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한 뒤 줄곧 소설을 쓰는 데만 집중했다. 중간에 잠깐 글을 놓았던 시간을 제하더라도 소설을 써온 시절만 15년이다.

“당선 소식이 아직도 얼떨떨하고 믿기지 않는다”는 은씨는 이유 없이 글 쓰는 일에 끌렸다.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엄마에게 동화책을 너무 많이 읽어달라고 해서 툭하면 목이 쉬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뛰어놀지도 않고 책 읽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카세트에 이야기를 녹음해놓고 틀어줬다고 해요.”

은씨는 그동안 하루 평균 5시간 이상 소설을 썼다. 매일 원고지 20장을 쓰지 않으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20편이 넘는 장·단편을 써왔지만 등단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글은 세상에 내보이기 위해서 쓰는 것인데, 그동안 주변 사람 외엔 독자들을 만날 일이 없으니 힘들었어요. 누군가 책으로 나온 내 이야기를 읽어줬으면 하는 욕망이 컸습니다.”

작가 지망생들은 대부분 출판사 편집자 등 직장생활과 병행해 글을 쓴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그러나 은씨는 “그동안 ‘이제 그만 취직해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어 번역이나 출판사 보도자료 작성 등 경제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노동’만 했어요. 만 37세가 될 때까지 이렇다 할 직업을 갖지 않고 하고 싶은 것만 해온 저를 누군가가 보면 ‘미쳤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30대 중반으로 접어들던 2년 전부터 글을 대하는 자세부터 문체까지 바꿨다. 주변 동료들이 하나둘씩 등단하던 때였다. “등단도 등단이지만 자칫하면 나락으로 떨어지겠다 싶어 ‘그저 행복하게 써야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문장의 정확성에 매달리던 20대의 강박도 버렸고요. 그러다보니 문장도 많이 가벼워졌죠.”

당선작 ‘애주가의 결심’은 자타공인 애주가들의 ‘본격 음주 힐링기’다. 나무 그늘 아래서 마시는 인디안 페일 에일 맥주(IPA), 멜론 위에 듬뿍 끼얹은 허니 위스키, 겨울바람에 얼어붙은 손끝을 녹이며 마시는 따끈한 청주 등 등장하는 술만 50여 가지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다양한 술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술친구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면 어느새 어수룩한 밤 망원동 한 선술집에 그들과 함께 앉아 청주에 젖어들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워낙 술을 좋아해서 제목에 ‘술’이 들어간 작품은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이었어요. 대부분 피폐해질 때까지 진탕 마시고 사고치는 내용이더라고요. 주인공들이 기분좋게 마시는, 다른 톤의 얘기를 한 번 써봐야겠다 싶었지요.”

은씨는 ‘역사’나 ‘진실’ 같은 거창한 키워드가 담긴 이야기보다 주변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미국 작가 레이먼드 카버를 ‘마음의 고향’이라고 칭하고, 슬픔과 기쁨, 낭만과 좌절을 한 작품에 모두 담는 데 탁월한 정세랑 작가를 존경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꿈이 좌절되며 한동안 힘든 시기를 지나왔는데, 갑자기 시간이 구부러졌다 펴지면서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입니다. 앞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줘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써내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열심히, 즐겁게 쓰겠습니다.”

● 소설 당선작 '애주가의 결심' 줄거리

‘술희’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자타공인의 애주가인 만 스물아홉 살의 신주희. 오너 셰프라는 최종 목적을 향한 중간 단계로 도전한 푸드 트럭 운영에 실패한 주희는 무일푼에 심신의 에너지까지 바닥난 채 연말을 맞이한다.

그러던 주희에게 대학 선배의 집에서 열린 송년회는 잠시나마 유쾌한 주당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리가 되어준다. 그곳에는 한참 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오랜만에 발견한 설레는 남자, 다양한 주종의 술이 넘칠 듯 구비돼 있었다. 그러나 여태껏 단 한 번도 필름이 끊겨 본 적 없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일이 무색하게 그날 밤 주희는 생애 처음으로 필름이 끊긴 채 녹다운되고 만다.

이튿날, 두 동강난 기억과 밀려드는 후회 속에 망연자실해 있는 주희. 그녀에게 또 한 명의 애주가이자 그녀와 한날한시에 음주 세계에 입문한 사촌 언니 신우경이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망원동의 복층 원룸에 거주하는 우경이 자신의 집 2층에 주희를 들이고 덤으로 싱크대 한 칸을 꽉 채운 술 창고도 내어주겠다고 호언한 것이다. 그러나 우경 자신은 모종의 이유로 당분간 술을 마실 수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다.

심기일전해 다시 뛰기는커녕 꼿꼿하게 서서 버틸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주희는 우경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간소한 살림을 챙겨 제대로 일어서기도 힘든 낮은 천장 아래의 2층으로 이사 온다. 그곳에서 주희는 새로 시작한 한해를 먹고, 마시고, 빈둥거리는 애주가로서 탕진하기로, 시한부 한량으로 살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 배우고 싶은 ‘손맛’을 가진 전통주점에서 주말 알바를 뛰며 최소한의 노동만을 하고, 한동네에 사는 술친구를 만들어 망원동 일대를 누비며 갖가지 술에 젖어 든다.

그러는 동안에도 우경은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고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분위기를 풍겨 주희의 걱정을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우경은 간절한 마음으로 금주를 ‘결심’하게 된 계기를 밝히며 자신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사라진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한경 신춘문예 당선 소설 ‘애주가의 결심’은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연재됩니다.

● 당선 통보를 받고

"빈 잔 속에 열정이 채워졌다…팔색조 같은 소설 선보일 것"

초심자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스노보드를 배우는 게 가능할까. 게다가 도전자가 60대라면. 가족은 입을 모아 만류했다. 심심치 않게 안전사고 소식이 들리는 스노보드는 60대에 시작할 만한 스포츠로는 보이지 않았고, 정 원한다면 기초부터 제대로 강습받아야 한다고 권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해냈다. 단 한 번의 강습도 없이 스노보드 중급 코스를 만끽하는 데는 한 시즌도 채 걸리지 않았다. 스노보드를 탈 수 없는 계절의 즐길 거리로는 산악자전거를 찾았고, 매해 여름휴가가 돌아올 때마다 국토 종주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시다.

설원을 가로지르는 쾌감! 폭염 속에서 며칠이고 페달을 밟는 열정! 그렇게 빛나는 스포츠 에너지!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 에너지를 한 톨도 물려받지 못했다. 대신이라고 말하긴 뭣하지만 어째서인지 술을 좋아하는 점만큼은 오롯이 아버지를 닮았다.

다시 찾아온 스노보드의 계절, 그리고 내게는 신춘문예의 계절. 아버지와 오랜만에 통화를 하는데 “너는 재미있게 살고 있고?”라는 질문을 받았다. “네. 올해도 열심히 신춘문예를 냈고요” 하고 우물쭈물 대답하자 아버지는 “아니,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재밌게 살고 있느냐고”라고 되물으셨다.

그날 밤 기분 좋게 빈 잔을 채우면서 바로 그 질문에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근거렸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래도록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은모든 씨는 △1981년 서울 출생 △2004년 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심사평 성석제(소설가) 정홍수(문학평론가) 김탁환(소설가) 전성태(소설가)

섬세하고 리드미컬한 문장
소통과 연대의 힘 알게 해

응모작들이 두루 안정된 문장력과 구성을 갖춘 가운데 죽음이나 자살을 앞둔 화자가 고단한 생을 반추하거나 추스르는 내용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 음울한 주조(主潮)는 시대상의 반영이기도 하겠으나 거창하고 비장한 서사를 구축해야 한다는 장편소설에 대한 강박도 느껴졌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서 주목한 작품은 ‘애주가의 결심’ ‘낯선 고기’ ‘타로 정원’ ‘나봄’ ‘건국의 변’ 등이었고 ‘건국의 변’과 ‘애주가의 결심’이 마지막까지 논의됐다. 20대 공시생을 화자로 내세운 ‘건국의 변’은 탄핵정국 이후까지 상황을 반영한 소설로 현실을 포획하려는 패기와 삶의 실상을 깊은 데까지 탐색하는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초반부에 인상적으로 펼쳐 놓은 관념의 설계가 제대로 수습되지 못한 점, 화자가 지나치게 순치된 목소리를 갖고 있는 점이 한계로 지적됐다. ‘애주가의 결심’은 젊은 여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경쾌하게 그려졌을 뿐 아니라 망원동 일대를 조감하는 스토리텔링이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소설에 결정적 한 방이 없고 얘기가 소박하다는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섬세하고 리드미컬한 문장으로 전하는 상실과 단절, 소통과 연대에 대한 공감력과 그 위무의 힘이 간단치 않았다. ‘애주가의 결심’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며 이 작가가 앞으로 펼칠 활동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함께 전한다. 축하드린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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