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파면" "국대 자격박탈"… '인민 재판장' 된 청와대 게시판

입력 2018-02-20 17:39  

순간적 분노가 떼법 청원으로

스피드스케이팅 김보름·박지우
자격박탈 청원 하루새 37만명↑

이재용 2심 판사 파면 요구
청와대 "불만내용 법원에 통보하겠다"
부적절 답변으로 우려 키워

청원 상당수 법적 근거 없고
청와대가 권한 행사할 수 없는 것
정치적 목적 가진 다수
여론몰이 등 간접효과 노리기도



[ 고윤상/황정환 기자 ] 청와대가 운영하고 있는 국민청원 제도가 쏟아지는 ‘인민재판식’ 요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을 담당한 판사를 파면해달라는 청구에 20만 명이 넘게 동의해 20일 청와대가 답변을 내놓았다. 같은 날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선수의 자격을 박탈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하루도 안 돼 청와대 답변 기준(20만 명 이상)을 돌파했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시작한 청원제도가 주관적이고 집단적인 불만을 표출하는 ‘여론 재판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파적인 편가르기가 횡행하고 민주체제의 기본인 삼권분립마저 위협하는 비상식적 요구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판결 마음에 안 든다고 파면 여론몰이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 비서관은 이날 청와대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김선 행정관과 함께 진행한 ‘청와대 소셜 라이브’ 동영상을 올렸다. 얼마 전 이 부회장의 뇌물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판사를 파면하거나 특별감사해 달라는 국민청원에 답하는 자리였다. 24만 명 이상이 제기한 이 청원에 대해 정 비서관은 “청와대가 그럴 권한은 없다”며 “파면이 가능하려면 직무집행에서 헌법이나 법률 위반사유가 있어야 하고, 사유가 인정돼도 국회로 넘어가 탄핵소추가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전체적으로 법관의 비위 사실이 있다면 징계는 가능하지만 이는 사법부의 권한이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정 비서관은 부적절한 사족을 달았다. “청원 내용에 대해서 청와대는 법원행정처에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할 예정”이라는 대목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법원에 인사조치를 요구하는 메시지로도 해석될 수 있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청와대가 관련 내용을 법원행정처에 전달하면 이는 ‘청와대 블랙리스트’를 지정하는 꼴”이라고 우려했다.


평창올림픽 ‘국가대표’ 박탈 청원도

평창올림픽 관련 이슈도 청원 게시판을 인민재판정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 19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김보름-노선영-박지우)의 경기 때문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0일 ‘김보름·박지우 선수의 자격 박탈과 적폐 빙상연맹의 엄중 처벌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노 선수가 경기 중 뒤처지자 다른 두 선수가 팀플레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 청원은 하루 만에 37만여 명이 참여해 최단 기록을 갈아치웠다. 비난 여론으로 김 선수를 후원하던 의류업체 네파가 오는 28일 이후 연장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며 인민재판의 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새다.

과도한 비판 여론이 일자 ‘무서워서 국대 하겠느냐’고 반대 의견을 밝힌 장수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도 타깃이 됐다. “국민이 무서워 국대 하겠냐는 장수지 선수의 소원을 들어달라”는 국가대표 자격 박탈 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바로 걸렸다.

“정치적 악용시 인민재판 전락” 우려

정치적인 악용 사례도 목격된다. 북한과의 단일팀 결성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전달한 나경원 의원(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의 위원 자격 박탈을 요구하는 청원이 그런 부류다. 위원직 박탈은 청와대의 권한 밖이다. 그럼에도 ‘불쾌했다’는 이유로 청원이 올라왔다. 단일팀 지지자들이 몰리면서 36만 명 이상이 동조했다.

청와대는 청원 제도를 ‘국민소통’의 홍보수단으로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여론 재판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만만찮다. 청와대는 20일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정형식 판사 파면 및 특별청원’을 크게 띄우고 동영상으로 설명까지 했다. 20만 명 기준을 넘은 청원 중 답변하지 않은 사례가 많은 상황에서 서둘러 답변한 것이 호응의 메시지로 읽힐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청원 제도는 국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선의(善意)’에 근거했을 뿐 법적 근거는 없다. 대부분 청원이 ‘불발’로 끝나는 이유다. 청와대가 선별적으로 과도하게 대응하는 행태를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고윤상/황정환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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